[인터뷰] 이솜 "나는 강백호·이주영은 서태웅·뮤즈는 엄마" '삼토반'의 솜테일
배우 이솜은 사실 인터뷰하기 쉽지 않은 배우였다. 과거형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만난 이솜은 다른 사람처럼 술술 말을 이어갔다. 그만큼의 고민이 있었고, 그만큼의 행동이 있었다. 노력했고, 할 만큼 했고, 그걸 다 담아내서 후회도 없다. 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 '유나'스러운 성장인가. 이솜과 인터뷰하는 시간이 즐거웠던 이유다.
이솜은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마케팅부서 유나 역을 맡았다. 아이디어 뱅크다. 다른 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부장님(배해선)에게 "어제의 너보다 오늘 더 성장했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유나는 8년째 고졸출신 말단직원일 뿐이다. 하지만, 토익점수에 따라 대리로 진급시켜준다는 회사의 말에 친구이자 동지인 자영(고아성), 보람(박혜수)과 함께 토익반으로 향한다. 강하게 표현하지만, 회사의 비리를 마주한 자영의 고민에 누구보다 힘을 실어주는 것도 유나다.
"사실 유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은 소녀라고 생각했어요. 탐정소설, 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하고, 그래서 많은 정보들을 짜 맞추는데 능한 거죠.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아는 척을 많이 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비서실에 있었을 때 박전무라는 사람 때문에 전체가 피해를 봤다고 생각했어요. 아마도 유나는 '나혼자 당하는 건 괜찮은데, 내 주변 사람들이 당하는 건 못 참아'라고 생각해서 들고 일어났을 거고요.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고민했던 전사는 또 있었다. 바로 인물들과의 관계였다. 유나와 자영과 보람이는 어떻게 친해졌을까. 전략기획실 사원 송소라(이주영)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영화 속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유나를 더욱 깊이 보여줄 수 있는 고민이었다.
"사실 유나, 자영, 보람이가 너무 다르게 생겼잖아요. 그런 고민에서 제가 말씀드려서 추가된 대사가 있었어요. 국수집에서 유나가 보람이에게 '증거만 있었어도'라고 울먹거리다가, 자영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전환되어야 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때 유나가 재빨리 '이자영한테는 얘기하지마'라고 하는 건 어떨까 말씀드렸어요. 그러고나니 분위기 전환도 되고, 관계도 형성이 되는 것 같아 좋더라고요."
"송소라와의 관계도 고민했었는데요. 그때 재미있게 봤던 만화책 '슬램덩크'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나는 강백호고, 송소라는 서태웅이다. 강백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서태웅은 못 이기잖아요. 만화적으로 재미있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아쉽기도 한데요. 그 고민 덕분에 유나의 정서적인 지점이 잘 담기게 된 것 같아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9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솜은 의상팀과 함께 동묘 시장에 가기도 했다. 의상팀과 배우가 함께 움직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솜은 그만큼 영화에 애정이 많았고 90년대에 관심도 많았다.
"정말 귀한 아이템들이 많더라고요. 요즘 다시 90년대 레트로가 인기라 그런지, 정말 많았어요. 이런 의상들이 영화 속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찾아보기도 했고, 제가 입어보기도 했고, 직접 구매도 했어요. 볼드한 액세서리 같은 것들이 많이 있어서 재미있더라고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 이솜의 뮤즈가 된 것은 '엄마' 였다. 95년도에 찍은 멋스러운 사진 속 엄마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속에 담고 싶었다. 여직원들이 호프집에서 회의하는 장면에 입은 검정 목폴라에 볼드한 목걸이의 유나, 그 모습이 바로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가 유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더 엄마에게 유나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나는 지금 봐도 멋있는 여성이잖아요. 엄마의 사진을 의상팀에게 보여주고, 이 의상 그대로 어떤 장면에라도 넣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리고 모니터를 하는데, 묘하더라고요. 닮은 부분도 있고요. 정말 묘했어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어떤 부분이 배우 이솜을 이렇게 매료시켰을까. 인물들 사이의 과거까지 촘촘히 고민하게 했고, 엄마의 사진을 꺼내보며 유나를 꿈꾸게 했다.
"또래 배우들과 작업할 수 있다는게 너무 소중했고요. 앞으로 또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잘 해내고 싶었던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열심히 준비했죠."
"유나라는 캐릭터에 특히나 집요하게 제 의견을 많이 제시했던 것 같아요. 스타일적으로나, 유나의 대사에 담긴 뉘앙스와 느낌 하나하나에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렇게 유나를 만들어가다보니까, 후회나 아쉬움이 없어요. 집요하게 할수록 만족스러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솜은 독립영화 '맛있는 인생'(2010)으로 데뷔했다. 영화 '마담뺑덕'(2014)에서 덕이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고 이솜의 소울메이트라는 "전고운 감독님"과 함께한 영화 '소공녀'(2017)를 통해 집은 없어도 취향만은 지키는 미소의 모습을 보여줬다. 전혀 다른 색의 연기 속에 이솜은 그 자체로 빛났다.
"한 이미지에 박혀있는 것? 한정저긴 틀 안에 있는 걸 안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안 해본 것에 호기심이 많고, 도전하는 것에 겁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고요."
그렇기에 이솜의 청춘에도 후회는 없다.
"제 청춘에 후회는 없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 때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요. 지금과 성격은 많이 달라졌지만, 10대 때도 열심히 열정적으로 한 것 같아요. 그래서 후회는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나이에 맞게 철없게 놀아보고도 싶었는데, 그걸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친구들과 철없이 지내고 있나 봐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