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뷰] 유아인이 '소리도없이' 보여주는 부조리극
등 떠밀려 일어나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고, 하루를 산다. 그렇게 산 어제와 오늘이 합쳐진 당신은 "'소리도 없이' 괴물이 되어가나요? 혹은 '소리도 없이' 영웅이 되어가나요?"
영화 '소리도 없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태인(유아인)과 창복(유재명)의 일상을 통해서다. '소리도 없이'의 출발은 이렇다. 태인과 창복은 동네 골목길에서 "계란이 왔어요~"라며 계란을 판다. 계란 한 판 가격을 묻는 아줌마에게 "8천만원이요~"라고 답하는 두 사람을 관찰자 시점으로 쫓는다.
사실 두 사람의 주업은 계란 판매가 아니다. 계란 트럭을 끌고 외진 곳으로 가서 이들은 세팅을 한다. 범죄 조직이 보다 손쉽게 사람을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세팅이다. 피가 여기 저기 흐르지 않게 비닐을 깔고, 작업하기(?) 적당한 높이에 사람을 매달아둔다. 세팅이 끝나면 범죄 조직은 작업을 진행하고, 작업이 끝나면 시체 처리 등 잔업은 다시 두 사람에게 주어진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해야지."
다리가 아픈 창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말을 하지 못하는 태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모자란 우리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감사하자고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일이 주어진다. 시체처리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을 하루만 맡아달라는 범죄조직 실장의 의뢰다. 범죄조직을 상대로 거절하기도 어렵다. 결국, 의뢰를 수락하고 다음 날 창복과 태인은 약속된 장소로 나간다. 그곳에는 11살 여자아이 초희(문승아)가 있다.
그런데 또 일이 꼬인다. 범죄조직의 실장이 작업의 대상이 되어 나타난 것. 실장은 죽고, 아이는 남았다. 아이를 넘겨준 쪽에서는 준비물과 편지 등을 주며 부모에게 직접 돈을 받자고 제안한다. 얼렁뚱땅 이를 수락하게 된다. 그리고 남동생 대신(?) 유괴된 초희는 태인의 집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아간다. 어지러운 옷들을 빨고, 정리한다. 그렇게 하루 맡으면 될 줄 알았던 의뢰가 연장됐다.
'소리도 없이'는 다소 무겁게 흐를 수 있는 흐름을 주체적으로 이끌고 간다. 극 초반에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이다. 창복과 태인은 범죄 조직의 고문, 살인 등을 보조하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적은 돈을 받고 시체처리까지 나름의 예의를 갖춰 해낸다. 인간과 세계의 모순을 '일상'에서 찾는 역설적인 유머가 '소리도 없이'의 흐름에 담긴다.
블랙코미디의 사전적 의미에는 '희극의 한 형식으로서의 고통, 우연, 잔혹, 죽음이라는 비극의 제제로부터 웃음을 유발시킨다'라고 적혀있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이 모든 것을 따르면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끝까지 이끌고 가는 인물은 유아인이다. 영화 제목처럼 '소리도 없이' 말이다. 대사를 없앤 자리에 표정과 몸짓으로 많은 말을 채워야 했다. 시나리오의 개연성 있는 흐름으로 가능하기도 했지만, 15kg이나 체중을 증량하며 태인이 되려한 유아인에게 그 자체로 묵직함이 있다.
태인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범죄조직 실장의 담배와 옷을 탐한다. 호기심에 물어본 담배로 인해 캑캑대기나 하는 철없는 소년같던 그는, 실장의 시체를 처리하기 전 그 옷을 벗겨 열심히 빨아서 입기도 한다. 그 옷을 입고 그는 자신이 무언가 된 듯하지만, 결국 태인은 태인일 뿐이다.
배우 유아인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에서 이런 질문을 받기도 했다. "훌륭한 소년이 될 거예요?" 그 질문은 청춘의 얼굴을 보여준 배우 유아인에게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 영화 '소리도 없이'는 배우 유아인이 대사를 지우고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훌륭한 사람은 되는게 아니라, 하루하루 훌륭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더라"는 '#살아있다' 당시 유아인이 한 인터뷰 대답과 이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배우 유아인의 행보를 아끼는 관객이라면 그 질문을 만나야 한다.
'소리도 없이'는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홍의정 감독은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소리도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는 문장이었다. 스스로 정할 수 없었던 각자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화하며 자란 우리들의 개개인의 모습이 괴물같았기 때문이다. 후에 괴물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너무 강해서 직접적인 표현을 빼고 '소리도 없이'라는 제목으로 정하게 됐다"고 제목의 의미를 설명했다. 영화는 역설적인 일을 수행하며 살아내야 하는 태인과 창복을 통해 '당신은 괴물이 되어가나요? 영웅이 되어가나요?'라는 질문을 던진다.
홍의정 감독은 SF단편영화 '서식지'로 지난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던 감독이다. '소리도 없이'에서 홍의정 감독은 일상을 통해 질문을 하면서도, 캐릭터를 전개를 위해 절대 소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촘촘하게 짜여진 느낌이 든다. 더불어 그가 '소리도 없이'를 통해 하는 질문이 더욱 유의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배우 유재명, 유아인부터 아역배우 문승아 등 연기의 구멍이 없다. 영화 '소리도 없이'가 던지는 질문이 가능했던 이유다. 이는 오는 10월 15일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 상영시간 99분.
◆ 한줄평 : 유아인이 던지는 15kg 더 묵직해진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