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뷰] 서핑에 담긴 우리의 청춘, 이학주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나한텐 이게 선택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남들은 다 하는 수강신청인데, 왜 내 클릭만 그렇게 무정히 비껴가는지. 서울에 건물이 이렇게 많은데, 왜 내가 당당히 들어갈 곳은 없는 건지.
그런 시간을 '힘들다'는 세 글자에 가두는 것도 힘들다. 힘든 시간도 결국 하루 24시간이라는 진실은 그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후'하고 깊은숨을 내뱉을 때야 조금은 느껴지기 마련이다.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표면적으로 저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크린 가득 바다를 보여준다. 준근(이학주)이 한 가운데 서 있는, 그것도 남들보다 꽤 오래 걸려 서있게 되는 겨울 바다다.
준근은 겨울 계절학기 수강신청에 실패했다. 수강신청에 실패하면, 기숙사 방을 빼야하고, 그럼 갈데가 없어진다. 일단 짐을 싸서 바다로 온다. 그리고 거기서 서퍼 태우(신민재)를 만난다. 그 서퍼가 이끄는 곳이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다. 때마침 그곳 주인은 '발리에 가고싶어'병이 걸렸고, 준근은 그곳에서 숙식 알바를 시작한다. 알바를 위해 장기투숙객 유나(박선영), 원종(신재훈), 그리고 태우에게 서핑도 배운다.
그런데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개념도 없이 캠핑카가 세워진다. 부티를 풀풀 풍기는 성민(김범진)이 초 예쁜 여자친구 지호(김윤지)와 함께 왔다. 준근과 성민은 사소하게 바다에서 맞붙게 됐다. 준근은 홧김에 배틀을 하기로 한다. 아직 서핑보드에서 일어서지도 못하지만 "그래, 해!" 그리고 덧붙인다. "단, 한달 후에."
한 달 동안 준근의 서핑 훈련이 시작된다.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 삼인방 태우, 유나, 원종이 그의 스승이 된다.
표면적으로는 준근이 서핑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가 된다. 빠르면 하루만에도 서핑 보드에서 일어선다는데, 2주 동안 한 번을 일어서지 못하고 계속 넘어지기만 하는 준근이, 마치 내 모습 같달까.
'걷기왕'(2016) 등의 성장영화에서 보여준 미덕을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보다, 이렇게 계속 몰려오는 파도 위에서 어떻게 서야할지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듯하다. 해야할 것들에 밀리고 밀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잊거나 뒤로 밀어둬야 했던 시간들을 마주하며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라고 초대하는 듯한 위트있는 위로를 전한다.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가 빛이 나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과 호흡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덕이기도 하다. 배우 이학주를 비롯해 박선영, 신민재, 신재훈은 약 한달 동안의 시간을 강원도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보냈다. 이학주의 로봇 춤이나, 절규 등은 그 호흡에서 나왔다. 악역으로 등장한 김범진과 김윤지 역시 독특한 호흡으로 극에 재미를 더한다.
이학주의 많은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열두번째 보조사제'부터 독립영화계의 강동원이라고 불린 그는 드라마 '멜로가 체질', '부부의 세계' 등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받았다.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이학주의 배우 초년생(?)시절 겨울바다에 매일 나가 서핑을 연습한 노력과 땀, 그리고 엔딩곡에서 노래 실력까지 담겨있으니, 그의 팬이라면 꼭 확인할 것. 특히 이학주 '혼신의 연기'가 담겨있는 장면은 너무나 웃프(웃기고 슬프다)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높은 파도와 푸른 바다가 코로나 시대의 갑갑한 마음을 뻥 뚫어주는 진짜 주인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영화다. 일단 시원한 바다가 스크린에 아른거리니, 무거운 머리에게 좀 쉴 틈을 줘도 좋겠다. 상영시간 99분. 8월 13일 개봉. 15세이상 관람가.
평점 ★★★★☆ 자꾸 빠져들게 만드는 것은 바다인가 이학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