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①] 왜 'SF8' 일까?…"어렵게 인식되는 SF 장르에 대한 감독들 로망 컸다"
공상과학소설을 뜻하는 'SF'(Science fiction)라는 장르 아래 영화 감독 8명이 의기투합했다.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를 표방한 'SF8'이 어떤 이야기를 선사할 것인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8일 서울 용산구 CGV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와 드라마의 크로스오버 프로젝트로 완성한 'SF8'(에스 에프 에잇) 제작발표회가 진행돼 8명의 영화 감독(김의석, 노덕, 민규동, 안국진, 오기환, 이윤정, 장철수, 한가람)과 각 감독이 연출한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이 참석했다.
'SF8'의 총 기획을 맡은 민규동 감독은 "MBC 전 사장님으로부터 감독 조합과 어떤 일을 같이 하면 어떨까 하는 가벼운 제안을 받고, 새로운 도전이나 다양한 영화에 대해 구상했다"라며 "평상시 어렵고 독점적인 장르로 인식되어 있는 SF에 대한 감독들의 로망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장르로 다양한 감독이 모이면 어떨까 생각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극장 개봉이라는 압박을 받는 것이 아닌, 새로운 플랫폼에서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쓰고 원하는 배우와 다른 길이감으로 새로운 관객과 만나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됐다"라며 "특히 교류하고 싶었던 것은 SF 문학이다. 2, 30대 작가들 중 SF를 쓰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그간 국내에서 장르적 특성 때문에 (영화 등으로) 많이 표현되지 못했다. 문학적 에너지를 영화와 함께 결합시키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SF8'에서는 마치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눈을 뜨는 간병로봇, 치열하게 싸우는 AI 형사, 미세먼지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청춘들, 실체 없는 무언가를 추격하는 여인, 가상 현실에 갇혀버린 BJ, 사라지는 연인에게 키스하는 여자, 지구 종말을 눈 앞에 두고 서로를 의지하는 남녀, 흩어지는 아들을 망연히 바라보는 엄마까지 근미래 속 다양한 군상을 그려낸다. 특히 이러한 미장센을 화면으로 구현한 것은 오직 8명의 감독의 상상력만으로 완성돼 신선한 충격을 예고한다.
◆ "로봇과 인간의 차이가 뭘까?"…민규동 감독의 '간호중'
'간호중'은 요양병원에 10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환자와 지칠대로 지친 보호자, 그 둘을 보살피던 간병로봇이 자신의 돌봄 대상 중 누구를 살려야할지 고뇌에 빠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극 중 이유영은 식물인간 상태인 홀어머니를 10년째 부양 중인 '연정인'과 연정인을 돌보는 간병로봇 '간호중' 등 1인 2역에 도전한다.
민규동 감독은 '1인 2역'을 소화해야 할 배우로 이유영을 캐스팅한 것에 대해 "눈동자가 독특하다"라며 "오래보면 신비스러운 느낌인데, 보통 사람과 AI, 두 가지 역할에서 평소의 면과 신비스러운 면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려운 역할인데 잘 소화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유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로봇과 인간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다며 "인간에 가까운 로봇인데, 간호중은 감정을 모른다. 인간을 생각하면 욕망도 있고, 거기에서 나오는 감정들이 있다"라며 각 캐릭터 연기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 비과학적인 '운세'와 과학의 만남?…노규덕 감독의 '만신'
'만신'은 높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인공지능 운세서비스 만신을 신격화하고 맹신하는 사회에서 각자의 아픔을 가진 선호와 가람이 '만신' 개발자를 직접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이연희가 맡은 '토선호'는 동생이 '만신' 때문에 사망했다고 여겨 메인서버를 찾게되고, 이동휘가 연기하는 '정가람'은 '만신' 덕분에 자신이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게 해줬다고 맹신하는 광신도.
노덕 감독은 "과학의 지향점 중 하나가 미스터리를 푸는 것이라 생각한다. 운세나 이런 것을 떠나 사후세계, 영혼 등 풀리지 않는 여러 의문들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접근을 하고 계속해서 밝혀내고자 하기 때문에 멀지 않은 소재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동휘는 "SF 장르는 처음인데,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똑같다고 느꼈다"라고 덧붙여 공상과학의 세계관 속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낼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특히 '토선호' 역에 이연희를 캐스팅해 눈길을 끈다. 이연희는 단아하고 사랑스러운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극 중 선호는 탈색 머리, 짙은 아이라인, 가죽 재킷 등으로 대표되는 거친 매력(?)의 소유자인 것. 이에 대해 노덕 감독은 "이연희가 선택한 작품들과 프로필을 봤을 때, 상당히 카리스마 있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라 생각해 함께 작업하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이연희는 "자유롭고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살며 자유롭게 표현하는 친구를 그려보고자 했다"라고 소개했다.
◆ "일상에 들어온 인공지능과 교류하는 법"…한가람 감독의 '블링크'
'블링크'는 어린시절 자율주행차 사고로 부모님을 잃어 스스로의 감과 능력만을 믿는 형사 '지우', 이러한 지우의 뇌 속에 이식되어 있던 인공지능(AI)으로 새로운 신입 형사가 되는 서낭이 함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한층 더 강렬해진 걸크러시 매력을 선사할 이시영이 '지우'로 분하며, 하준은 경찰 업무에 특화된 인공지능으로 파트너에게 무시당하는 것이 못마땅한 AI '서낭'을 연기한다.
"인공지능이 이미 일상에 많이 들어와 있다고 생각했다"라며 운을 뗀 한가람 감독은 "인간과 인공지능이 어떻게 교류, 교감하면서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고참과 신참 형사의 버디물이면서, 인공지능을 다루는 SF 설정이 있다. 복합적 감정의 인간과 인공지능이 갈등을 겪으며 서로에 대해 학습을 하고, 또 다시 생각하는 등 변화의 과정을 그린다"라고 소개했다.
이시영은 "AI에 대한 놀라움을 느낀 것은 당연하고, 어떻게 조화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이 와닿았던 것 같다"라며 "저도 감을 믿는 편이고, 아무리 발전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아날로그에 애착을 갖는 편인데, 인공지능을 긍정적 측면으로 바라보는 작품인 '블링크'를 통해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편리하고, 재밌고, 도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즐겁게 촬영했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하준은 "SF니까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재미있고, 창의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해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 "경제적 요건이 사회적 위치 정해"…이윤정 감독의 '우주인 조안'
'우주인 조안'은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 태어날 때 고가의 항체 주사를 맞은 C들은 100세의 수명을 살고, 그러지 못한 N들은 30세에 끝나는 수명에 맞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윤정 감독은 "C는 Clean(클린)이고, N은 Non-Clean(논클린)이다"라며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의 선택에 따라 보다 세부적으로 계급이 나뉜다"라고 설명했다.
극 중 자신이 C인줄 알았던 스물여섯 대학생 '이오'(최성은)는 태어날때 병원 착오로 항체 주사를 맞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예전에는 아무 관심없던 N들, 그중에서도 학교의 유일한 N '조안'(김보라)의 삶에 관심을 갖고 다가간다.
김보라는 "경제적인 요건이 안정, 그리고 사회적인 위치를 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SF지만,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것. 이윤정 감독 역시 "처음 원작을 받았을 때 재난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금, 우리 젊은 세대들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담은 것에 매력을 느꼈다"라고 설명해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에 어떤 의미를 시사할 것인지, 궁금증이 더해진다.
한편 웨이브(wavve)와 MBC가 공동 제작, DGK(한국영화감독조합)과 수필름이 제작해 OTT 플랫폼과 방송, 그리고 영화의 경계를 허물어 K-콘텐츠의 색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SF8'은 오는 10일(금) 웨이브에서 선공개되며, MBC에서는 8월 중 방송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