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신혜, 나이 서른 지나며 달라진 것·달라지지 않은 것
배우 박신혜는 달라졌고, 달라지지 않았다. 만 서른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고, ‘열심히’의 자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촬영 중 생긴 몸에 든 멍으로 ‘#살아있다’고 느끼는 그, 여전한 배우 박신혜다.
영화 '#살아있다'의 개봉을 앞두고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배우 박신혜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살아있다'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통제 불능이 된 도시에서 아파트에 고립된 준우(유아인)와 유빈(박신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장르물에서 보기 어려웠던 박신혜가 K좀비(한국형 좀비물)에 등장한다. "단순히 재밌다"에서 시작한 선택이었다.
"분량이 작아서 아쉽지는 않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아쉬움보다 '#살아있다'가 가진 느낌 자체가 좋아서였는지, 찍으면서도 즐거웠어요. 오히려 마음 편하게 찍었달까요?"
유빈은 좀비로 뒤덮인 상황에서 침착을 유지하는 인물이다. 허둥대기보다는, 물병에 날짜를 적어가며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아남기에 집중하는 인물이랄까. 그런 면에서 박신혜와 닮아있다.
"이 직업을 하다 보면, 원치 않은 상황에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드라마 '피노키오'를 하면서 느낀 부분이 있거든요. 제가 기자의 입장이 돼 전달할 때와 인터뷰하면서 이야기할 때, 서로 받아들이는 입장 차이가 있잖아요. 비단 일이 아닌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렇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유빈이처럼 현재의 삶에 일어나는 것들을 수긍하려는 편인 것 같아요."
겁이 없는 것도 유빈이와 닮아있다. 유빈이는 고립된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해, 루프를 쥐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다. 안전장치가 되어있긴 했지만, 박신혜도 실제로 뛰어내렸다.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점프도 즐기기에 무리 없었다는 박신혜다.
"촬영 전에 세트장에서 한 번 연습 삼아 뛰어내려 보자고 하셨어요. 연습할 때 못 뛰어내리면, 촬영할 때도 겁먹어서 못 하겠다 싶었는데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와이어를 잡아 주시는 스태프가 정말 안전하게 해주시니까, 그 믿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촬영 때도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앞으로 뛰어내리면 제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 로프를 탈 때 몸을 돌려서 착지해야 했어요. 쉽사리 되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촬영도 여러 번 했었어요."
평소에도 운동을 즐겨한다는 박신혜, 액션의 문이 열린 것 같은 느낌이다.
"다양한 장르에 대한 욕심은 늘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캔디 같은 로맨틱 코미디 여주인공으로 어울린다는 틀이 있어서, 그 기회가 조금 덜 찾아왔던 것 같아요. 아마 그 나이에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이제는 제 나이도 서른을 넘으며, 그 폭이 넓어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다른 새로운 문들이 열리고, 그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기도 해요."
박신혜는 요즘 몸에 멍 자국이 있다. 조승우와 함께하는 드라마 ‘시지프스’ 촬영 때 생긴 자국이다. 그 자국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그다.
“팔에 상처와 멍이 많아요.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고요.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 촬영하면서 생긴 통증 때문에 몸이 무거워요. 그런데 이런 것들로 ‘내가 지금 살아있구나’,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껴요. 아침에 눈을 딱 떠서, 숨이 쉬어질 때, 잠에서 막 깨어서 가끔 몽롱해지는 순간,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이 와서 아침 인사 해줄 때, 살아있구나, 얘네도 살아있구나 하면서 ‘#살아있다’고 느끼죠.”
이제 서른을 넘은 나이가 됐다. 데뷔한 지는 무려 17년이 지났다. 박신혜는 그 시간을 엄마를 통해 느끼곤 한다.
“엊그제 엄마랑 같이 산책을 하고 벤치에 앉아 얘기하는데요. 엄마도, 저도 일한 지 시간이 꽤 흘렀고, 그런 얘기를 하다보니 ‘어떻게 우리는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웃으며 얘기하게 됐어요. 늘 새로워서 그런지, 무디어진 건지, 쌓여 있는 것보다 앞으로가 더 궁금해서인지, 시간에 대한 느낌이 잘 안 서기는 해요. 그래도 돌아보면, 저에게 지난 17년은 행복했어요. ‘더 잘 살아야겠다, 지금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들 정도로요.”
“서른이 되면서 어려서는 잘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가장 큰 건 엄마와 대화가 통한다는 것? 엄마이고, 같은 여자이지만, 저는 그동안 엄마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했거든요. ‘왜 이해해주지 못할까?’ 다투기 마련이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여자로서 나보다 좀 더 나이가 많은 한 여자를 보게 돼요. 철이 들었다기보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의 공감은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섭거나 두려웠던 것들을 과감히 선택하게 됐다.
“’콜’ 시나리오를 보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역할을 하면 많은 분이 어색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사에서도 큰 지지와 믿음을 보여주셨고, 촬영하면서도 되게 즐거웠거든요. 즐겁다고 생각한 순간, 걱정했던 부분이 사라지더라고요. 더 해도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물었다. ‘#살아있다’처럼 배우 박신혜에게 해시태그를 달아준다면, 어떤 말을 달아주고 싶을까.
“#박신혜 #다음액션_기대해.”
성실하게 현재를 보내며, 늘 다음을 궁금하게 하는 배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