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넘지 못할 선은 없다"…가장 한국적인 '기생충', 어떻게 '세계의 선'을 넘었을까
정말 넘지 못할 선은 없는 걸까. 가장 한국적으로 양극화를 그렸다고 평가를 받은 영화 '기생충'이 국내에서의 선을 넘어, 한국 영화가 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칸 영화제',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이라는 선을 훌쩍 넘겼다.
19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는 비영어권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총 4개 부문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며 한국은 물론, 세계 영화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영화 '기생충'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영화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앞서 언급한 아카데미 수상 외에도 한국 영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의 영예를 안은 것을 비롯해 해외 영화제에서만 19개의 트로피 수상, 해외 시상식의 각종 부문에서도 155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칸 '황금 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수상하는 것은 1956년 이후 약 50여 년 만의 쾌거로 의미를 더한다. 이처럼 해외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작품이지만, 사실 '기생충'은 국내 개봉 당시에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국내 개봉 이후 16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 자리를 지킨 것은 물론, 언론 및 평단,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개봉 53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한 것.
이처럼 한국은 물론, 세계의 선을 넘을 수 있었던 '기생충'의 비결은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은 "제가 항상 도발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만드는 스토리의 본질을 외면하는 그런 것이 싫었다"라며 "우스꽝스럽고 코미디적 면도 있지만, 빈부격차의 쓰라린 면도 있다. 그러한 부분을 1cm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한 것에 관객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어떤 장식을 하면서까지 끌고 가고 싶지 않았고, 최대한 시대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어 "사실 어떠한 상을 받았다는 후광과 상관없이 이미 북미에서도 2,500만 불 이상의 외국어 영화로서는 역대급 수익을 세우고 있었고, 그 이전에도 여러 나라의 호응을 받았다는 것이 기뻤다"라며 "수상 여부를 떠나 전 세계의 동시대 많은 관객이 호응해준 것이 저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고 기쁨인 것 같다. 왜 그렇게 호응해줬는지는 좀 거리를 두고 분석할 필요가 있겠지만, 그것이 저의 업무는 아닌 것 같다. 저는 다음 작품이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이정은은 "배우들도 생각했던 부분인데, 칸의 영화가 여러 편 나왔을 때 사실 어떤 현시대의 문제를 짚는 그러한 영화가 많지 않았다.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이 경제적인 문제를 겪고 있고, 이러한 동시대에서의 문제를 굉장히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표현했는데,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라며 "선과 악이 없는 상황임에도, 누군가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모습이 현재의 인간 군상과 흡사하기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사실 '기생충'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제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기생충'이 더욱 폭발적인 주목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봉준호 감독은 "괴물이 한강변을 뛰어다니고, '설국열차'는 미래의 기차가 나오는 SF적 요소가 많은데 이번 영화는 동시대 이야기로, 이웃에서 볼 수있을 법한 이야기다. 배우들이 앙상블로서 실감나게 표현했고, 현실한 기반한 톤의 영화인 것이 폭발력을 가진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정서를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자막'의 힘도 컸다. 봉준호 감독은 "평소 하던 대로 열심히 했다"라며 "예를 들어 '대만 카스테라'라는 것이 국내에서는 한 번에 와닿지만, 해외는 다르다. 전달이 힘든 이야기는 맥락을 통해 캐치할 수 있게 했다. 짜파구리 같은 것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우식과 박소담이 남매인데도 집에 들어가서 선후배인 척하는 것들에 대한 뉘앙스에 대해 어떻게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맥락을 전하고, 자막을 하는 분께서 최고의 답을 찾아주셨다"라며 "이미 '살인의 추억' 당시 '밥은 먹고 다니냐'는 인류 최대의 난제를 해결하신 분이라 믿었다"고 전했다.
여기에 일명 '오스카 캠페인'으로 불리는 막대한 홍보 노력이 더해졌다. 봉준호 감독은 "저희 북미 배급사가 중소 회사다. 거대 스튜디오에 못 미치는 예산인 만큼, 게릴라전으로 진행했다. 열정으로 뛰면서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 인터뷰도 600회 이상했고,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했고, 또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나오는 아이디어들도 참고했다. 다른 경쟁작이 물량 공세라면, 저희는 아이디어와 배우들, 관계자들이 똘똘 뭉쳐 팀워크로 커버하면서 열심히 했던 것 같다"라며 "한때는 창작자가 일선을 벗어나 이런 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낯설기도 했는데, 반대로 이런 식으로 작품에 대해 깊이 있고 밀도 있게 검증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와 같은 노력에 힘입어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을 비롯해 미술과 편집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것까지 트로피를 받아, 총 6개의 트로피를 수확하게 됐다. 각본상 트로피를 챙긴 한진원 작가는 당시 '충무로'를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됐던 것에 대해 언급하며 "대학 졸업 이후 유일한 사회생활 장소였다"라며 "시나리오는 사람 머리가 아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재에 도움을 준 가사 도우미분들, 아동학과 교수님들께 감사하다. 덕분에 좋은 장면을 쓸 수 있었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ADG'(미국 미술감독 조합상)에서 현대극 부문 미술상을 아시아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던 만큼, 이하준 미술감독은 소감을 준비했었다며 "사실 ADG 때 너무 떨어서 말을 잘 못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준비를 했는데,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님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어서, 봉준호 감독님과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는 말로 시작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영광을 바친다는 말로 소감을 마치고자 했다"라고 전했다. 반면 'ACE'(미국영화편집자협회)에서 편집상을 받기도 한 양진모 편집감독은 "소감을 준비하면 부정탈 것 같아서 준비를 안했는데, 결과적으로 받지 못했다"라며 특별한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그러면서 "이런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는데, 여러 스태프의 노력이 이 자리를 만들어준 것 같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이처럼 세계의 인정을 받게 된 봉준호 감독이지만, 향후 작품 활동에 있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기존에 하던 것을 그대로 진행할 뿐이다. 봉준호 감독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업은 '기생충'과 관련 없이 몇 년 전부터 준비하던 것이다"라며 "저나 배우들, 그리고 제작사 모두 다 평소 해왔던 대로 찍은 영화가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그 기조가 계속 유지될 것 같다. 접근이 다르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바로 당장 차기작을 만나볼 수는 없겠지만, 영화 '기생충'이 갖고 있는 의미를 더욱 함축적으로 담아낸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특히 흑백만의 미묘한 아름다움으로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물론, 생활고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전원백수 '기택'(송강호)네 가족들의 어둡고 답답한 현실을 흑백의 질감으로 한층 더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며, 도저히 만날 일 없어 보였던 두 가족의 일상과 만남의 순간을 흑과 백, 뚜렷한 명암의 대조와 조화로 담아내 '기생충'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다 더 시각적으로 전한다.
봉준호 감독은 "고전이나 클래식 영화에 대한 동경이 있다"라며 "이 영화가 흑백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영화적 호기심이 있었다"고 개봉 이유를 언급했다. 앞서 컬러 버전을 통해서도 기존 장르의 틀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로 인간애와 유머, 서스펜스를 넘나드는 복합적 재미를 선사한 바 있지만, 이와는 또 다른 여운을 남길 것을 예고하는 영화 '기생충: 흑백판'은 오는 26일(수) "흑과 백, 넘지 못할 선은 없다"는 카피와 함께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