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셔스 여행기 1편, 아직도 모리셔스를 잊지 못하는 이유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존재한다. 그리고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던 일이든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간직하며 살아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주체할 수 없이 요동치는 심장과 설렘의 감정은 마음 깊이 각인되어 머리로는 아무리 잊으려 해도 심장이 기억하기에 쉽게 잊히지 않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첫 모리셔스(Mauritius) 여행에서 느꼈던 어리둥절한 감정을 감히 첫사랑에 비해도 될지 모르겠다. 휴양지를 워낙 좋아하고 자주 다니는 터라, 버킷리스트 존재하는 섬 하나를 지우기 위해 모리셔스로 간 것뿐이었지만, 지난 4년 내내 이곳을 잊은 적이 없었다.
모리셔스와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은 첫사랑과의 이별과 닮았었다. 경험이 부족하고 서툴렀기에 이별 역시 세련되지 못하다. 그 사람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첫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채 깨닫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하고 만다. 그리고 그 빈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무의식중에 첫사랑과 자꾸 비교하려 드는 걸 막을 수 없다. 별생각 없이 찾은 모리셔스는 나에게 휴양지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모리셔스와 비슷한가 그렇지 않은가로 매력지수, 가성비를 매기게 되었다.
급하게 오고 갔던 첫 여행에서 너무 대충 훑은 곳들이 계속 아련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과 가이드북을 보면서 몰랐던 이야기들을 접하니 더욱더 그리웠다.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르 몽’ 산과 바다, 진주홍빛이 도는 빨간 지붕의 ‘캡 멜로우’ 성당, 파랑에 가까운 초록잎과 거목들에 둘러 쌓여 지칠 때까지 맑은 공기를 흡입하게 되는 ‘팜플무스 식물원’, 일곱 가지 신비로운 흙빛이 감도는 ‘세븐 컬러드 어스’를 보며 가본적도 없는 화성의 표면과 비슷할 거라 상상을 했다.
이런 명소들의 또렷또렷한 매력들이 눈 앞에 선했다. 에펠탑이나 최근 화재로 슬픔에 잠긴 노틀담 성당은 다시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은 추억으로 앨범에 고이 모시고 싶은 마음이 드는 반면, 모리셔스는 다시 한번, 꼭 다시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자세히 보니 더욱 아름다운 곳 모리셔스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 반드시 후회한다는데, 그래도 좋으니 다시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이번에는 더 강하게 각인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기록하고 찍고 소셜미디어에 발자취를 남겼다. 내 기억 속에서 떠나지 말고 영원히 살라고 번듯한 집을 지어준 기분이다. 그제야 여한 없이 깔끔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다.
‘남반구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 팜플무스(Pamplemousses Botanical Garden)
여행 경험이 많지만 자유여행보다는 인솔자가 있는 여행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패키지로 여행하면 고루하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편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여행형태는 동반자와 현지상황, 그리고 본인이 얼마나 준비되었느냐에 따라 정하는 것이지 여행지 자체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준비를 했다 한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보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잘 모르는 지역을 여행 할 때는 현지인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멈추고 싶을 때 멈춰서 자세히 보고, 원치 않는 것은 하지 않는 ‘개별 가이드 투어’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모리셔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모투어코(Maurtourco) 소속의 천재 가이드 스티브를 만난 것이 이 번 여행이 성공적이었다고 꼽는 첫 번째 이유다.
전날 오후에 도착해 워낙 잘 쉰터라 여독을 느낄 새도 없었지만, 처음 찾은 명소가 식물원이라 더욱 피로감이 덜했다. 보통 다른 지역의 식물원 투어는 호텔 체크인 전 시간 떼우기 용이나 어르신들 단체여행에 자주 등장하는 일정이지만, 팜플무스 식물원은 전혀 그런 곳이 아니다. 일단 좋은 공기와 초록색이 가득한 정원에서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으니 무엇을 상상하던 기대 이상일 것은 분명하다.
사실 식물에 대해서는 먹는 것 외에는 관심도, 지식도 없었는데 이 식물원에서 자라는 거의 모든 나무와 풀, 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스티브를 통해 눈을 떴다. 백년에 단 한번, 가장 화려한 사랑을 꽃 피우고 죽는 ‘센테나리온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채 피지 못하고 져버린 첫사랑을 떠올렸다.
암을 죽이는 식물(Cancer Killer)이라고 불리는 사우어 솝(Soursop Tree)은 시장에서도 판다고 하니 좀 사서 아버지도 드리고 나도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팜플무스의 상징이자 보통 크기의 연잎의 5-10배나 큰 ‘여왕의 꽃’ 거대수련(Giant Water Lily)이 그득한 호수풍경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오죽하면 영국여왕이 직접 이름을 짓고 무소불위 권력을 가진 자신을 빗대었겠는가. 고작 200루피아(약6천원)의 입장료에 제대로 식물공부도 하고 미세먼지로 찌들은 폐도 달랬다.
지름신이 내린 그랑베이 (Grand Baie)
사실 이번 모리셔스 여행의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는 ‘득템’이다. 4년 전 공수해온 바닐라티도 다 마셨고, 럼주도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다. 도도새가 담겨있는 기념품도 좀 사러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캐시미어다. 캐시미어의 품질과 가성비는 두바이, 몽골, 그리고 모리셔스를 최고로 친다. 폴로와 베르사체 같은 명품 제품들의 가공 공장들이 모리셔스에 밀집해 있기 때문에 ‘명품의 원산지’인 모리셔스에서는 30% 이상 저렴한 쇼핑을 할 수 있다.
이런 상점들이 몰려있는 곳이 그랑베이다. 그랑베이는 다이아몬드와 은세공품도 유명하다. 이 가격에 설마 진품일리 없다는 의혹이 들만큼 저렴했다. 모리셔스에서 가장 유명한 귀금속 세공 브랜드 아다마스(ADAMAS)라고 한다. 순은 목걸이 팔찌, 반지 세트에 100달러도 안 되는 가격에, 세금 환불도 받았으니 약 8만원에 온 몸을 블링블링하게 휘 감을 수 있었다.
도도새 장식이 달린 팔찌를 못 사 온 게 내내 후회가 된다. 공항에서 비슷한 모양을 봤는데, 가격이 무려 여섯 배라 포기했다. 이런, 모리셔스에 또 와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명랑, 상쾌해 꼬당 워터프론트 (Le caudan waterfront)
모리셔스를 인터넷에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여지고 눈길을 사로 잡는 사진이 ‘우산거리(Umbrella walk)’이다. 이곳은 “르 꼬당 워터프론트”라는 항구 중앙에 자리잡은 거리다. 꼬당은 프랑스어로 ‘항구’란 뜻이다. 영어로는 ‘케이 Quay’, ‘피어 Pier’인데, 호주를 비롯한 오세아니아 지역에는 이 두 단어가 붙은 지명이 꽤 많다. 모두 바다를 낀 항구지역을 뜻한다.
모리셔스의 수도 포트 루이스는 한적하며 유럽의 도시느낌도 물씬나는 고급스러운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멋진 요트들이 정박한 시원한 항구를 둘러싸듯 세워진 리조트, 호텔, 쇼핑몰을 뒤로하고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광장을 걸어본다.
걷는 것만으로도 이리 좋은데 핸드메이드 제품들을 파는 아기자기한 편집샵, 노천카페, 박물관도 지척이라 하루 종일 있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더위에 지칠 즈음 과일과 사탕수수를 줄기 채 바로 짜서 즙을 내린 쥬스로 목도 축이고 당분도 섭취해 지친 몸도 북돋운다.
가격은 100루피아, 약 3천원 정도 하니 생 착즙 쥬스치고는 가격이 무척 착하다. 알록달록한 우산거리를 바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뜬다. 모리셔스는 이 항구의 인상처럼 밝고 명랑하고 또릿또릿한 곳이다.
취재협조=모리셔스관광청(MTPA), 모투어코(Maurtour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