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골든 슬럼버
거대 세력의 음모로 누명을 쓴 주인공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은 이미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접해봤을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음모의 주인공이 나라면? 소설 ‘골든 슬럼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거대 음모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등골 서늘한 범죄 스릴러다.
2년 전 우연히 유명 아이돌을 구해줘 유명세를 치른 것 외에는 특별할 것 없는 전직 택배기사 ‘아오야기 마사히루’. 새 총리의 퍼레이드가 있는 날, 8년 만에 연락해 온 대학 동창 ‘모리타’를 만난 아오야기는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발송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되어 있던 알 수 없는 우편물, 갑자기 취미를 물어온 낯선 여자, 지하철에서 난데없이 치한으로 몰렸던 사건 모두가 거대한 세력이 아오야기를 함정에 빠트리기 위한 치밀한 계획에 의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아오야기는 평범한 자신에게 그럴 이유가 없다며 웃어넘기려 한다. 하지만 이들의 대화가 끝나기도 전 총리의 퍼레이드 현장에는 큰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경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오야기를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하고 쫓기 시작한다.
끝까지 도망쳐 살아남으라는 모리타의 조언대로 영문도 모른 채 도주를 시작한 아오야기. 그는 자신만 결백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믿지만, 상황은 그의 믿음을 속속 져버리고 세상을 적으로 돌려놓는다. 과연 아오야기는 도주에 성공해 누명을 벗을 수 있을 것인가?
소설 ‘골든 슬럼버’는 퍼즐같이 치밀한 전개와 완벽한 짜임새가 돋보이는 명품 소설이다.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깊은 삶의 철학까지 담고 있는 소설은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2008년 일본 서점대상 1위를 수상하기도 했다.
최첨단 시스템으로 사생활까지 감시하는 사회에서 아오야기가 도망갈 수 있는 곳은 없다. 거대 권력에 의해 움직이는 경찰, 이익을 위해서라면 여론몰이도 서슴지 않는 매스컴, 경찰과 매스컴이 보여주는 단편적인 이미지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사람들에 맞서는 개인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도 아오야기를 버티게 해준 것은 조작된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아오야기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돈 속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킨 사람들의 모습은 수수하지만 뭉클한 감동을 남긴다.
소설 ‘골든 슬럼버’는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2010년과 2018년에 각각 개봉해 사람들을 다시 ‘골든 슬럼버’에 주목하게 만든 영화는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일본 영화 ‘골든 슬럼버’는 소설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지만, 원작을 따라잡지 못한 전개와 명확하지 않은 결말로 용두사미라는 평가와 함께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영화 ‘골든 슬럼버’는 적극적인 각색을 통해 훨씬 매끄러운 기승전결을 완성했다. 하지만 각 사건과 등장인물의 개연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해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남겼으며, 다양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원작과는 달리 ‘우정과 믿음’이라는 축소된 메시지를 남기는 데 그쳤다는 것도 영화의 아쉬운 점이다.
두 편의 영화로 제작되었지만, 모두 원작 소설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 ‘골든 슬럼버’. 이 작품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소설을 읽은 후에 해야 한다. 원작의 매력을 십 분의 일도 채 표현하지 못한 영화보다는 단연 소설을 꼭 보길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