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 유재하, 시인 이상, 화가 에곤 쉴레 그리고 고흐. 이들의 공통점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모두 요절한 예술가들로 모두 해당 분야의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구현한 천재이다. 그런데, 천재라고 불리게 된 것에는 혹시 ‘요절’이라는 운명이 후광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한 번쯤 되묻게 되는 질문이다.
‘자살’은 때론 예술가를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자살’한 예술가의 죽음이 스스로 택한 죽음이 아니었다면 어떨까?

오베르 쉬르 우아즈(사진제공 작가 이소)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화가 고흐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화가가 사랑한 파리 미술관’의 저자 화가 이소는 고흐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머물렀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찾아가 1890년 생존 당시 고흐의 영혼을 접한 이야기를 한다.
“1890년 7월 27일 고흐는 이 들판 어디쯤에 있었을까. 그는 정말 자살했을까?화가의 인생은 마라톤 주자와 같거늘, 단거리 주자의 페이스로 전력 질주했으니 심장이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은 남은 이들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고흐가 과연 동생 테오를 배신할 수 있었을까”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 50.5 × 103.0 cm

당시 막 인정받기 시작했던 고흐의 상황을 설명하는 작가는 동생 테오로부터 더 이상 경제적 지원을 해줄 수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뒷바라지 한 테오를 생각하면 자살은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고흐의 타살 가능성을 입증한 어느 총상 분석 전문가의 꽤 과학적인 연구 발표를 인용한다.
"총상 분석 전문가인 빈센트 디 마이우 박사는 총 쏜사람에게 흔히 발견되는 화약 흔적이 고흐에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자살하는 사람이 총을 배에 쏘는 일은 드물며 대부분 입 안이나 머리에 겨눈다는 점, 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그렇게 편지를 많이 쓰던 고흐가 유서도 남기지 않고, 총상 후 집으로 돌아왔다는 등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하지만 총기 사고 후 스스로 치료를 포기한 것을 자살이라고 한다면 그는 분명 자살한 것이다”

고흐 무덤(사진제공 작가 이소)

동생 테오와 나란히 누워있는 고흐 무덤 앞에서 이소 작가는 천재 화가 고흐가 아닌 고뇌와 열정에 사로잡힌 채 그림을 유일한 안식처로 삼았던 인간 고흐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소회를 밝혔다.
“고흐에 대한 증명할 수 없는 괴기한 일화들은 그를 광인으로 몰기보다 스타 화가의 반열에 올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에 대한 자극적인 수식어들을 하얗게 지우고, 그림에 대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연구했는지를 먼저 기억했으면 한다”

도서 '화가가 사랑한 파리 미술관'

매스컴에선 유명인의 ‘자살’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이슈를 던지며 대중을 현혹시킨다. 그러면서 우리가 몰라도 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까지 보도한다. 최근에는 가수 김광석이 그 중심에 있다. 그의 불운한 가족사가 밝혀지면서 그를 노래로만 알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들도 생겼다.
“예술가를 알면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김광석도, 고흐도 작품 이외 사생활에 관련된 것들이 작가의 예술성을 가리기도 한다.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 ‘자살’이란 단어를 뒤로하고 작가가 작품을 위해 열정적으로 고민하던 것에 초점을 맞추면 어떨까?고흐가 자살이든 타살이든 고흐의 천재성이 넘치는 작품은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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