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앙
‘앙’은 팥소를 뜻하는 일본어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앙꼬’와 같은 말이다. 영화 ‘앙’의 이야기는 일본 전통 화과자인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다.
시판 단팥으로 도라야키를 구우며 하루하루를 무심하게 살아가는 중년 남자 ‘센타로’의 가게에 어느 날 도쿠에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찾아온다. 아르바이트 벽보를 보고 자신을 채용해달라는 것이다. 고령에 손까지 굽은 할머니를 보고 센타로는 난색을 표하지만, 할머니가 건넨 단팥 맛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도라야키는 단팥이 맛을 좌우하는데, 할머니의 단팥은 최고의 맛을 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들어온 후 도라야키 가게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시작된다. 도라야키 맛이 좋아지자 줄을 설 정도로 손님이 부쩍 늘고,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기계적으로만 도라야키를 굽던 센타로의 태도도 달라졌다.
하지만 인생이 마냥 달콤하지 않은 것처럼 도라야키 가게에도 위기가 찾아온다. 도쿠에 할머니의 굽은 손이 한센병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손님이 뚝 끊겨버린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주제를 바꾼 영화는 한센병으로 평생을 요양소에 격리된 채 살아야 했던 도쿠에 할머니의 이야기와 한센병에 대한 편견이 여전한 현 사회의 모습을 일본 특유의 감성으로 녹여낸다. 그리고 도쿠에 할머니의 삶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감사하게 만듦으로써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영화 ‘앙’의 원작은 일본 작가 두리안 스케가와가 쓴 동명의 소설이다. 소설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영화보다 훨씬 농밀하다. 소설에는 센타로가 도라야키 가게를 운영하게 된 사연, 애정 없는 도라야키를 구우며 느낀 삶의 허무함, 도쿠에 할머니를 만난 후 느낀 감정의 변화 등은 물론 도쿠에 할머니의 사연도 훨씬 세세하게 담겨 있다. 가게 단골손님이자 여중생인 ‘와카나’만 영화보다 비중이 줄어들었을 뿐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밀착된 이들의 삶을 보여줘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는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한다. 무언가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하지만 도코에 할머니는 말한다.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해도 살아갈 의미는 있다고. 어린 소녀시절 병을 얻어 한평생을 사회로부터 외면당해온 그녀의 삶이 뒷받침하는 이 말은 가슴 절절하게 사무치며 애잔한 울림을 남긴다.
‘앙’은 소설과 영화과 서로를 보완한다. 소설은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의 깊은 사연과 그들의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고, 영화는 소설 속 도쿠에가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도쿠에는 센타로와 와카나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요, 우린 자유로운 존재니까.”
흩날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볼 수 있지만, 깊은 감동과 여운, 묵직한 삶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는 ‘앙’. 세상살이가 지치고 힘들 때, 문득 나의 존재가 하찮아 보일 때 이 영화나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이들의 삶과 희망을 통해 나 역시 소중한 사람임을 깨닫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