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읽을만한 책] 여행자의 미술관
박준 저 | 어바웃어북
도쿄의 간다는 고서(古書), 신서(新書), 외서(外書)의 책가도(冊架圖)이다. 거리를 꽉 메운 책방은 저마다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원하는 책이 어디쯤 있을지 비교적 쉽게 가늠이 된다.
간다의 아침은 책방 뒤쪽 구석구석 자리 잡은 앙증맞은 카페들의 불빛과 함께 시작된다. 일찌거니 나와 앉아 신문을 보고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은 대개 나이가 지긋하다. 느긋한 그들은 책방이 문을 여는 순간 블랙홀로 빨려들듯 그곳으로 흡수된다. 책방은 금세 문전성시. 출판 일로 일본 출장이 잦았던 시절 종종 마주치던 풍경이다.
책 만드는 나는 늘 부러웠고, 늘 가슴이 뭉클했다. '여행자의 미술관'은 내가 간다에서 느꼈던 그 뭉클함, 곧 본 것을 넘어 느끼고 기억하는 것을 담은 책이다. 그림을 해설하는 책이 아니라 바람처럼 떠도는 여행자가 길 위에서 만나는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 길은 실로 넓고 길게 펼쳐진다. 파리 런던 뉴욕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시선은 예루살렘, 모로코, 잠비아, 쿠바, 인도, 베트남, 일본으로, 그리고 우리 주변의 일상 속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이 짧은 서평을 시작하면서 문득 일본의 책방 거리를 떠올린 건, 이 책에 담긴 일본 미술관들의 익숙한 듯 아닌 듯한 다양한 표정에 마음이 끌려서인 것 같다. 가나자와의 21세기 미술관, 나오시마의 지추미술관과 아이러브유 목욕탕, 아오모리 현립미술관, 나가사키 현립미술관, 구라시키의 오하라미술관과 아이비스퀘어, 삿포로의 모레에누마 공원이 빤히 건너다보이는 곳에서 어서 와 보라고 손짓을 한다. 올겨울의 짬을 여행자라는 자유로운 관람객에게 허락하자.
| 추천자: 강옥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