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pixabay.com

앤소니 리조가 가운데로 낮게 들어오는 클레이튼 커쇼의 속구를 받아쳤다. 우측으로 향하던 타구는 그대로 담장을 훌쩍 넘어 관중석에 가서야 떨어졌다. 리조의 타구 소리에 깜짝 놀랐던 커쇼는 리조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자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고 말았다. 팀을 벼랑 끝에서 구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에이스의 서글픈 현실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흘러갔다. 103승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의 시카고 컵스가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NLCS)에서 4승 2패로 LA 다저스를 물리치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은 물론 월드 시리즈행 티켓까지 손에 쥐었다. 2, 3차전에서 빈타에 허덕이며 두 경기 연속 영봉패의 굴욕을 당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시카고 컵스의 4, 5차전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반면, 책임감과 중압감이 어깨를 짓누른 커쇼의 공은 초반부터 높게 들어왔다. 이는 장타를 허용한 이유가 되고 말았다. 1회말 첫 타자 덱스터 파울러에게 2루타를 맞은 후 크리스 브라이언트에게 적시타를 맞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좌익수 앤드류 톨레스의 실책까지 겹쳤다. 벤 조브리스트의 평범한 플라이를 잡았다 놓친 것. 야수가 에이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무겁게 만들어 놓았다.

1회부터 두 점을 내주고 시작한 커쇼는 2회에도 선두 타자 에디슨 러셀에게 2루타를 맞은 후 1실점 했고 4회 윌슨 콘트레라스의 홈런에 이어 5회 리조의 홈런까지 허용했다. 5이닝 동안 7개의 안타를 내줬고 그중에서 5개가 장타일 정도로 좋지 못 했다. 커쇼가 무너지면 사실상 뒤를 이을 투수가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저스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커쇼가 2차전을 무실점으로 막은 후 리치 힐을 내세워 3차전까지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컵스보다는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진출이 더 유력해 보였다. 2경기에서 다저스가 보여준 투타의 균형이 완벽해 보였던 까닭에서다. 두 경기 연속 영패를 당한 컵스로서는 107년을 이어온 '염소의 저주'가 108년째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4차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저스의 마운드는 붕괴됐고, 야수들은 실책을 남발했으며 타자들은 물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 사이 침묵하고 있던 컵스 타자들의 방망이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또한 마운드마저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2~3차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4~5차전이 진행됐다. 2~3차전의 컵스가 믿기지 않듯 4~5차전의 다저스도 믿을 수 없이 처참했다.

정규 시즌과 달리 포스트시즌만 들어서면 커쇼는 약해진다. 가을만 되면 힘이 솟아오르는 샌프란시스코 범가너와 달리 새가슴이라는 놀림도 받고 있다. 워싱턴과의 디비전 시리즈 5차전에서 켄리 젠슨의 뒤를 이어 세이브로 다저스를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려놓았고 컵스와 치른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에서 무실점으로 호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담감 속에 치른 6차전으로 인해 또다시 새가슴 소리를 듣게 생겼다. 마운드에 주저앉은 비운의 에이스가 안타까워 보이는 이유다.

홈으로 이동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