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vs.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2016년 신작 영화 ‘아가씨’는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그의 작품답게 파격적인 동성애와 시각적 감각을 극대화한 미장센, 강렬한 반전으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뉜다. 하녀 숙희(김태리 분)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1부에서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조진웅 분)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의 기구한 사연과 아가씨의 재산을 빼돌리기 위해 사기꾼 백작(하정우 분)과 짜고 하녀가 된 숙희의 음모가 다뤄진다. 히데코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2부에서는 숙희와 관객이 미처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반은 유럽식, 반은 일본식인 기괴하지만 아름다운 히데코의 저택처럼 관객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는 호기심을 잔뜩 부추긴다. 그리고 숙희와 히데코의 이야기가 합쳐지는 3부에서 감춰졌던 모든 비밀이 까발려지며, 어디로 튈지 몰랐던 이들의 이야기는 박찬욱 표 영화답게 마무리된다.
영화 ‘아가씨’의 원작은 '레즈비언 역사 스릴러'로 인기를 얻고 있는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의 대표작 ‘핑거스미스’다. 소설은 소매치기들의 품에서 자라난 아이와 뒤바뀐 출생, 유산 상속을 노리는 사기꾼들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소설은 800쪽에 달하는 막대한 분량이지만, 높은 흡입력으로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 소설을 읽다 지칠 즈음 한 번씩 나타나는 허를 찌르는 반전 덕분이다. 웬만한 추리소설이나 막장 드라마보다 신선한 극한 반전 덕분에 ‘핑거스미스’는 추리소설로는 드물게 부커상 후보에 오를 수 있었고, 영국 추리작가 협회의 역사 소설 부문상을 수상하는 등 폭발적인 인기로 작가 세라 워터스를 영국의 대표 작가로 우뚝 서게 했다.
영화는 소설의 소재와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일본강점기의 조선으로 바뀐 배경만큼 전혀 다른 변주를 선보인다.
소설의 주요 장면을 모아 빠르게 전개하는 영화는 강렬하고 경쾌하다. 히데코와 숙희가 나누는 사랑은 소설보다 훨씬 파격적이며, 악당들에게 가해지는 직접적인 복수는 꽤 통쾌하다. 물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게 지나치게 가학적이기도 하지만, 악당에 대한 응징을 다소 어정쩡하게 넘어간 소설보다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아쉬운 것은 숨 돌릴 틈 없이 거듭되는 소설의 반전을 영화에서는 거의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분량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소설보다 너무 단순해진 플롯은 소설을 먼저 읽은 이들에게 또 다른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아가씨’와 소설 ‘핑거스미스’는 닮은 듯 다른 매력을 가졌지만, 훨씬 극적이고 매끄러운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이 영화보다 단연 우세다. 하지만 이왕이면 소설과 영화를 모두 보길 추천하고 싶다. 소설을 먼저 본 후 영화를 본다면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영화를 본 후 소설을 본다면 영화가 못다 한 반전의 향연을 맛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