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플레이오프가 펼쳐진 목동야구장.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제공.

명심보감에서 이르기를 '疑人莫用用人勿疑(의인막용용인물의)'라고 했다. '의심이 들면 쓰지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다. 신중하게 선택하되 일단 선택했으면 절대적으로 신임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무조건적인 지지와는 다르다. 신중한 선택이 먼저고, 절대적인 신뢰가 나중인 이유에서다. 선택이 신중하지 못했다면 절대적인 신뢰도 의미가 없다고 하겠다. 
두산과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펼쳐졌던 목동야구장. 9:2로 크게 앞서던 넥센은 넉 점 차까지 쫓기자 9회 초 1사 상황에서 조상우를 네 번째 투수로 올렸다. 10안타를 맞고도 양훈이 7회 1사까지 4실점(3자책)으로 버텨주었고, 그 뒤를 이어 손승락과 한현희가 차례로 마운드에 올랐으므로 순서상으로는 조상우의 차례라고 할 수 있었다. 1차전에서 통한의 동점을 내주기는 했어도 3차전을 막아냈으니 아웃카운트 두 개 정도는 막아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조상우의 등판을 마냥 반가워할 수만은 없었다. 1차전과 같은 악몽이 다시 재현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0일 잠실에서 열렸던 양 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조상우는 3:2로 앞서던 8회 말에 나와 동점을 내준 뼈아픈 기억이 있었다. 3차전에서 선발 밴헤켄에 이어 무실점으로 두산 타선을 잠재웠지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상우는 7일 열린 SK와의 와일드카드 결정 1차전에서 3이닝 동안 49개의 공을 던졌고, 10일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2이닝 동안 48개의 공을 던졌으며, 13일 3차전에서도 1과 1/3이닝 동안 23개의 공을 던졌었다. 포스트 시즌 들어서 지난 일주일 동안 조상우가 던진 공은 6과 1/3이닝 동안 무려 120개에 달했다. 아무리 철인이라고 해도 지칠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조상우가 한두 점을 내주더래도 넉 점 차의 여유이니 승리를 지킬 수 있으리라 낙관한 듯 보인다. 열 점 차로 이기나 한 점 차로 이기나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염경엽 감독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하나는 조상우가 잦은 등판으로 지쳐있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두산의 타선이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지친 조상우가 불붙은 두산의 타선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이번 시리즈에서 넥센 엔트리에는 11명의 투수가 있었다. 그중에서 앤디 밴헤켄, 라이어 피어밴드, 양훈 등 세 명을 제외하면 모두 불펜 요원들이었는데 손승락과 한현희, 조상우와 함께 하영민, 김택형, 김대우, 김상수, 마정길 등이 불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투수들이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유독 조상우, 한현희, 손승락의 조한손 트리오만 고집했다. SK와 치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그랬고,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연장 11회까지 이어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손승락, 조상우, 한현희가 나왔고, 연장 10회에 승부가 갈렸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손승락, 한현희, 조상우, 김택형이 이어 던졌다. 경기 중반 리드를 뺏겼던 2차전에서는 하영민, 손승락, 한현희가 나왔고, 4차전에서도 손승락, 한현희에 이어 조상우까지 투입되었다. 밴헤켄과 조상우로만 끝냈던 3차전만 제외하면 거의 조한손 트리오의 출석체크라고 할 수 있었다.
염경엽 감독의 조상우에 대한 믿음은 지나칠 정도였다. 반대로 다른 투수들에 대한 의심 역시 지나치다고 할 수 있었다. 1차전에서 한현희를 0.1이닝 만에 내리고 조상우를 올릴 때도 그랬고, 김대우, 김상수, 마정길 등은 벤치에 앉혀만 두고 원 포인트로도 활용하지 않지 않은 점도 그랬다. 4차전 역시 한현희가 연속 안타를 맞자 0.2이닝 만에 내리고 조상우를 울린 터였다.
결국, 지친 조상우는 불붙은 두산의 타선을 막아내지 못하고 허경민에게 좌전 안타, 오재일에게 볼넷, 김현수에게 우전 안타, 양의지에게 좌중간 2루타, 최주환에게 폭투 및 스트라이크 낫아웃을 허용하면서 무려 6실점(3자책) 하고 말았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두 개에 불과했지만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잡아내지 못한 채 비련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조상우에 이어 공 세 개로 나머지 두 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버린 김대우를 먼저 올렸으면 어땠을까 싶고, 연속 안타를 맞기는 했어도 한현희에게 조금 더 기회를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병살을 네 개나 치면서 경기를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던 두산이 이길 수 없었던 경기였고, 9:2로 7점을 앞서갔던 넥센이 질 수 없었던 경기로 보였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의심이 들면 쓰지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처럼 염경엽 감독은 다른 불펜진들이 못 미더웠으므로 쓰지 않았고, 조상우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고 절대적인 신뢰를 보였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중한 선택이 먼저고, 절대적인 신뢰는 그다음이다. 다른 투수들은 믿지 못하면서 시리즈 내내 혹사당한 조상우만을 밀어붙였다는 점은 대단히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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