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봄은 정말 소리 없이 찾아온다. 으슬으슬 추운 겨울이 3월까지도 시멘트 건물 사이로 어슬렁거리며 주위를 맴돌곤 한다. 여기에 반갑지 않은 황사까지 한 몫하고 나면, 봄이 와도 봄이 아닌, 계절이 실종된 날들이 이어지곤 한다.
잉춘화(迎春花)가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 때까지도 썰렁했지만 복숭아꽃이 활짝 피고나면 어느새 봄을 지나 여름에 가까운 날씨가 되고 만다. 려우쉬(柳絮)가 눈송이처럼 하늘을 뒤덮으면 봄날은 간데없고 마치 순간적으로 여름 나라로 날아온 것처럼 더워진다. 이럴 때마다 입맛을 잃게 되곤 하는데, 그 때마다 한국에서 먹었던, 중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봄날 향기가 가득한 냉이, 쑥, 달래 등이 간절하게 생각난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공수(空輸)하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던 어느 날 북경 교외의 묘봉산(妙峰山) 정상에 있는 도교 사원의 축제를 관람하고 내려오는 길에 마을 주민들이 달래를 팔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어찌나 반가운지 떨이로 몽땅 사가지고는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양념간장에 넣어 먹고, 된장찌개에 넣어 먹고, 고추장에 무쳐먹고……. 이렇게 하여 잃은 입맛을 되찾을 수 있었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북경에서 구할 수 없는 달래를 한 번 맛 본 후에는 더욱 생각이 간절하여 차라리 먹어보지 못 했을 때가 더 나은 것 같았다. 봄나물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던 어느 나른한 오후, 원명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호수를 따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중국 노인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캐고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처음 보는 것들이라 저런 것도 먹나 싶었다. 그 순간 번뜩이는 생각 하나, 바로 ‘여기도 자세히 보면 달래가 있을 거야, 잘 찾아보자구!’라는 “好主意”가 떠올랐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땅만 보며 살펴본 결과 달래가 지천에 널려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의 기쁨은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보다 더 기뻤고, 나만의 비밀이 되어 종종 달래를 찾아 나서곤 하였다. 보이는 대로 한 웅큼씩 달래를 캐고 있으려니 중국인들이 다가와 그게 먹을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 때마나 나는 당연히 “먹을 수 없어요.”라고 답했다.
혹시 북경에 살고 있는 많은 유학생들이 동시에 원명원에 가서 달래를 캐게 되면 장사 속에 철저한 중국인들이 돈을 받을 지도 모르니 적당히 협동하여 조금씩 캐어가기 바란다. 그래야 우리끼리 두고두고 달래 맛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달래는 북방 지역의 중국인들에게는 매우 낯선 나물이다. 하지만 남방지역 사람들은 달래를 음식 재료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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