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소극장]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안녕, 나의 청춘!
그때 내가 먼저 미안하다 말했더라면, 지금의 우리는 달라졌을까.
첫사랑은 먹다 만 사과 같다. 새빨갛고 탐스러운 것을 한 입 베어 물 때면 새콤달콤한 맛이 온 입에 퍼지지만, 이내 색이 바래고 만다. 실수투성이다. 지나고 보면 왜 그때 그대로 놔뒀을까 아쉬움만 남는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주인공 커징텅(가진동 분)과 션자이(천옌시 분)도 그랬다.
"신입생 환영회 때 춤은 추지 마"
"왜?"
"다른 남자 손 잡으면 되겠어? 나도 아직 못 잡았는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 커징텅은 매일 밤 기숙사 공중전화에서 션자이에게 전화를 건다. 이 짧은 통화를 위해 때로는 식비까지 몽땅 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를 좋아하니까.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지만, 대답은 듣고 싶지 않다. 혹시라도 거절하면 더 이상 그녀를 좋아할 수 없을 테니까. 그냥 계속 션자이를 좋아하고 싶다.
션자이도 그런 커징텅이 좋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알고보면 자신은 지저분하고 짜증도 많이 내는 별로인 사람인데, 커징텅이 좋아한다는 게 이상하다. 그는 아마 상상 속의 모습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막상 둘이 하나가 되고나면 많은 느낌이 사라지고 없다고. 그래서 커징텅이 오래도록 좋아하게 놔두고 싶다.
커징텅과 션자이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문제아인 남학생과 모범생인 여학생.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던 둘은, 선생님의 지시로 커징텅이 션자이의 특별 관리를 받게 되면서부터 가까워진다. 션자이는 커징텅에게 매일 숙제를 내주고 커징텅은 투덜거리면서도 그녀가 시키는 대로 공부를 한다. 뒷자리에 앉은 션자이가 앞자리 커징텅의 등을 볼펜으로 쿡 찌르는 것이 이들만의 신호다. 불 꺼진 학교에 남아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시험을 앞두고 내기를 하고, 선생님께 대들다 단체로 복도에 나가 벌을 선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속에는 그 시절, 그 때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영화는 누구나의 마음 한켠에 고이 놓여있는 청춘과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국내에서 '건축학개론'이 한바탕 첫사랑 열풍을 일으킨 뒤 개봉하는 바람에 '대만판 건축학개론'으로 소개됐다. 두 작품 모두 이뤄지지 못한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두 여주인공 역시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단번에 ‘첫사랑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첫사랑이라는 소재만 같을 뿐, 두 영화의 내용은 확연히 다르다. ‘건축학개론’이 첫사랑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첫사랑의 미성숙함에 좀 더 초점을 맞춘다. 두 영화의 차이는 결말로 갈수록 더욱 뚜렷해지는데, ‘건축학개론’의 남자 주인공은 첫사랑의 추억을 과거로 보낸 뒤 그 감정을 마무리 짓지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남자 주인공은 첫사랑의 감정을 품은 채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첫사랑이라 부른다 했던가. 커징텅과 션자이는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그리고 커징텅은 결국 션자이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헤어지고 만다. 동갑내기였지만 커징텅은 너무 유치했고 션자이는 너무 성숙했다. 그리고 십여 년 후, 커징텅은 션자이의 결혼식장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결혼 축하해, 나의 청춘"
이 봄, 잊고 살았던 첫사랑의 설렘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자.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커징텅의 독백처럼,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하며 인사를 건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