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 잊어서는 안될 그 때 그 사건 ① 흥남 철수 작전
영화 '국제시장'은 6.25 전쟁 중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던 UN연합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해 흥남 철수 작전을 펼치면서 시작된다.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라고도 불리는 이 철수 작전에서 약 10만명의 피난민이 UN연합군의 도움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UN 연합군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시작된 중공군의 개입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작전으로 시작된 UN연합군의 반격은 북쪽으로 압록강까지 몰아붙여 승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북쪽의 지원 요청을 받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위기를 맞는다. 인해전술로 불리는 중공군의 공격은 쉬지 않고 병력을 투입하는 전술이었다. 흥남 철수작전 관련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증언했던 당시 미 해병 통역병이었던 이종연씨는 중공군의 작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는 10명이 내려오면 우리가 기관총을 쏩니다. 5분이 지나면 또 20~30명이 내려와서 우리가 쏩니다. 이런 식으로 5분마다 내려오는 거에요. 밤새도록 쉴 틈을 안줍니다. 그러면 보여도 공포, 안보여도 공포인거에요."
UN 연합군의 철수 결정과 장진호 전투끝없이 밀려 내려오는 중공군으로 인해 동부전선의 연합군은 철수를 결정했다. 1950년 12월 15일부터 24일까지 연합군은 흥남항을 통해 철수를 시작했다. 철수를 위해서는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켜야 했고, 그 과정에서 12만에 달하는 중공군에 의해 장진군 일대에서 포위되었다. 미국 전쟁 역사에는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어 있는 이 전투에서 격전 끝에 미군은 포위를 뚫고 흥남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으며 많은 전사자가 있었지만 이를 통해 흥남 철수에 성공하게 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 철수 작전
연합군의 철수 소식을 들은 북쪽의 주민들 중 다수가 피난길에 오른다. 흥남 부두에 몰려든 주민은 10만에 달했다. 하지만 그들을 실을 배가 터무니 없이 부족했기에 주민들은 공포와 두려움 속에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12월 24일 흥남 철수 작전 마지막에 남은 상선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였다.
미군의 무기를 배에 실어 남하할 예정이었던 이 배의 선장 레너드 라루는 흥남 부두에 남은 수 많은 피난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당시 민간인 고문관 현봉학이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와 선장 레너드 라루를 설득하여 배에 실은 무기를 전부 배에서 내리고 피난민을 태우기로 결정한다. 1만 4천여명의 피난민을 태워 철수에 성공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1박 2일동안 동해를 항해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거제도에 도착했을 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고, 오히려 비좁은 배에서 5명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고 한다.
현재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는 흥남 철수 작전 기념비에는 맥아더, 김백일, 알몬드, 현봉학, 포니, 박시창 등 6명의 영웅들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을 태울 것을 전격 결정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의 얼굴은 아쉽게도 새겨져 있지 않지만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로 불리는 이 날의 영웅들로 인해 약 10만여명의 생명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