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터뷰] 자숙 2년 반…그 이후의 '하정우'

기사입력 2022.09.28.13:42
  • *해당 인터뷰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마약왕 전요환(황정민)을 잡기 위해 그의 거처로 들어가 언더커버 요원으로 활약하는 민간인 강인구(하정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얼핏 봐도 지극히 영화적인 이야기다. 민간인이 마약왕을 잡기 위해 언더커버 요원으로 활약하다니, 분명히 말이 안 되는데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이는 수리남에 대규모 마약 밀매조직을 구축한 조봉행을 잡기 위해 국정원과 손잡은 민간인 K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배우 하정우였다. 하정우는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 등을 함께 해온 윤종빈 감독에게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윤종빈 감독이 영화 '공작'을 마무리 지었을 때, 한 번 더 제안했다. 그때 윤종빈 감독은 "시리즈물로 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하정우가 강인구 역을, 황정민이 전요환 역을 하면 잘 맞겠다"라고 덧붙이며 작품이 시작됐다.

  •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다는 것은 기댈만한 '자료'가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조심스러운 접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하정우는 "재구성된 부분이 많아서 생각보다 자유로웠어요"라고 답변을 시작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허구가 많았어요. 전요환이 현지에서 한인 목사라는 설정도 허구로 만든 거거든요. 실존 인물에 대해 의식이 된 건 없는 것 같아요.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두꺼운 한 묶음으로 받았어요. 엄청나게 길다고 생각했어요. 잘 와닿지 않아서 6개로 나눠서 읽어나갔죠. 시나리오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분량이 해도 해도 너무 많았어요. 강인구는 모든 인물을 다 만나잖아요. 외국어 대사에 액션, 감정 연기까지 모든 연기를 총망라한 캐릭터라는 점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군도'에 버금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 실제 강인구의 모티브가 된 K씨를 만나보기도 했다. 하정우는 "건장하신 분이었어요. 뵙고 나니, '이러니까 살아남으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굉장히 신뢰가 가는 느낌이었어요. 극 중 전요환이 강인구를 믿어주듯, 이런 분이라 믿을 수 있었겠구나 싶어요. 자세한 이야기보다는 흐뭇해하신 정도? 시리즈 말미에 나오잖아요. '나 이야기 해도 되나'라고요. 그 정도의 마음이신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엔 굉장히 평범한 삶을 살고 계시는 것 같아요."

    남다른 대사의 맛은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의 오랜 세월에서 나왔다. 애드리브라기보다 평상시에 하정우가 쓰는 말을 대사로 넣었다. 이미 농담 패턴까지도 닮아가는 두 사람이다. 하정우는 그렇게 들어간 대사의 일례로 '테이크 어 샤워(take a shower)'을 언급했다.

  • "추자현 배우에게 '왜 이렇게 예뻐졌어'라고 물어보는 건 제가 만든 거죠. (웃음) 현봉식 배우와의 촬영이 후반부에 진행됐거든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적응하고 막바지에 응수(현봉식)와 만난 거죠. 진짜 베스트프렌드 같은 호흡에 주고받는 대사가 많았어요. '8X7'을 묻는 건 대본에 있었어요. 저는 '이게 웃길까?' 싶었는데, 그 시대의 사람들이면 웃길 수도 있다 싶더라고요."

    "응수랑 둘이 말장난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그냥 찐 웃음이 나왔어요. (현)봉식이랑 연기하는데 너무 사랑스럽더라고요. 그리고 인상 깊은 건, 첩자를 가려내는 장면이었어요. '수리남' 촬영 중간 부분에 진행됐는데요. 그때는 정말 진이 빠질 정도로 집중한 것 같아요. 다들 텐션이 올라가 있다 보니, 제 뒷모습을 찍을 때도 그 텐션만큼 감정이 올라가 있지 않으면 컷이 튀는 거예요."

    "이틀 동안 그 장면을 찍었어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웬만하면 저희가 밥은 먹고 헤어지는데요. 그 이틀은 밥도 안 먹었어요. 그리고 1부 마지막 장면이 '수리남'의 마지막 촬영이었어요. 제가 손을 들고 뛰어가잖아요. 사실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딱 촬영 끝난 시간이 새벽 6시였거든요. 잠도 안 자고 오후 1시에 도미니카 공화국을 떠났어요. 빨리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때의 벅찼던 마음이 지금도 느껴져요. 드디어 간다!" (웃음)

  • '수리남'이 공개된 후 수많은 호평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정우는 "오만가지 감정이 드는 거죠"라고 말했다. 오만가지 감정 중 서운했던 마음도 내비쳤다.

    "강인구라는 인물이 코너에 몰리고, 극한 상황으로 갈수록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그것에 대한 연기 표현이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반응이 있었어요. 그건 사실 윤종빈 감독님과 합의 하에 의도적으로 연기한 건데 작품을 보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 아쉬웠어요. 모든 입맛을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게 기억에 남는 댓글이었어요."

    하정우는 사실 '수리남'으로 대중과 만나기까지 약 2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난 2020년 8월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뒤 활동을 잠정 중단했었다. 1심에서 벌금형이 확정된 후, 항소도 하지 않았다. 프로포폴 불법 투약 혐의 관련 보도에 얼굴에 있는 흉터 치료를 위한 피부과 진료 과정에서 수면 마취가 필요했다고 입장을 밝힌 이후 "앞으로 더욱 스스로를 단속하여 신중히 행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고개를 숙인 뒤, 침묵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 "제가 숨었던 것도 아니었고, 피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냥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요. '여기에서 정신만 차리고 있어 보자. 언젠가 말을 할 기회는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기다린 것 같아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돌아본 것 같아요. 하나를 바라보는 기준도, 시선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것에 너무 느슨한 기준을 두고 있었던 거죠.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배우인데,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온전히 저를 돌아볼 시간을 가진 것 같아요."

    "해명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언젠가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 같아요. 제가 배우로서 앞으로 더 성장하고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수리남' 속 강인구는 흘러 흘러 언더커버로의 역할까지 훌륭하게 수행했다. 사람의 삶에서 '흘러 흘러'라는 말은 한 지점에 서서 돌이켜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게 한다. '흘러 흘러' 지금에 다다른 하정우는 어떨까. 강인구에게 가족이 시간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다면, 하정우에겐 무엇이 현실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었을까.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좋은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던 건, 저와 함께하겠다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던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어금니를 꽉 깨물게 하는 부모님도 계시고요. 제가 '용서받지 못한 자'부터 '수리남'까지 약 17년 동안 작품을 하면서 거창한 영화의 성과나 작품의 성취보다는, 같이 영화를 좋아하고 만들면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오늘의 이 시간의 저를 이 자리에 앉게 해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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