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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옥탑방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로 설명이 가능한, 밴드 엔플라잉의 리더 이승협은 처음부터 밴드를 꿈꾸지 않았다. "이적 선배님처럼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됐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던 이승협은 어떻게 밴드로 데뷔했고, 활동한지 6년 만에 솔로 출격에 나서게 된걸까. 그의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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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이 처음 '음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당시 심경으로) 학교 끝나고 끌려가듯 다닌" 피아노 학원에서였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때부터 가수에 대한 꿈을 키운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가수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이승협은 "이적 선배님의 노래를 듣고 크게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회상했다. 다만 처음부터 밴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락은 음악도 아니"라고 느끼는 발라드파(?)였다며 "물론 지금은 락을 제일 좋아한다. 밴드에 푹 빠지게 된 상황"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금의 회사와 인연을 맺기 전 타 소속사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던 그는 댄스를 배우는 것에는 흥미가 없었다며 "어렸을 때 악기를 했기 때문에 밴드를 하는 회사가 있나해서 (FNC엔터테인먼트에) 오게 됐다. 사실 꼭 밴드를 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고, 그냥 막연히 잘 하고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
그렇게 FNC에서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이승협은 수 년의 연습생 과정을 거쳐 2015년 밴드 '엔플라잉(N.Flying)'으로 데뷔하게 됐다. 물론 엔플라잉으로 데뷔까지의 과정 역시 쉬운 것은 아니었다. 여러차례 어려운 순간과 마주했지만, 이승협은 자신을 '단순한 바보'였다고 표현하며, 지난 시간들에 대해 즐겁게 추억했다.
엔플라잉으로 데뷔하기에 앞서 2013년 일본에서 인디로 먼저 활동에 나섰다. 일본 활동은 6개월 정도로 짧다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지만, 당시 살이 많이 빠지며 주변의 염려를 살 정도였다고. 이에 힘든 시간을 보낸 것이냐는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고생 보다는 그냥 못 먹어서 빠진 것이었다"라는 말이었다.
이승협은 "사실 회사에서도 살이 빠진걸 모르시다가, 발견한 뒤로는 막 먹으라고 용돈을 많이 주셨다. 하루에 (인당) 삼천엔을 주셨다"라며 "용돈을 받기 전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도 어렵고 그래서 시간을 보냈더니 58kg까지 빠졌는데, 단순히 모든 것이 좋았었다. 공연도 즐겁고, 레슨하는 것도 즐겁고, 저희끼리 여행하는 기분이라 재미있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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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협은 "보통 데뷔를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힘들어했는데, 저는 그때 고민을 많이 안 했던 것 같다. '연습만 열심히 잘 하면, 언젠가는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저 멤버들과 같이 연습하며 실력적으로 잘하는 것이 목표였지, 데뷔가 목표가 아니었던 것 같다"라고 지난 시간에 대해 돌아봤다.
일본에서 활동을 마친 후 2014년 엔플라잉으로 데뷔하려고 했지만, 또다시 위기가 닥쳤다. 첫째는 나라에 생긴 어려움이었고, 두 번째는 이승협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이었다. 심각한 다리 부상으로 인해 수술까지 하게 된 것. 이때 받은 큰 수술로 이승협은 현재 군 면제 판정을 받은 상황이다.
이승협은 "사실 멤버들에게 정말 미안한 일이다"라며 데뷔가 미뤄진 것과 관련 "당연히 아쉬움이 컸을텐데, 저는 멤버들이 이야기 해주기 전까지 몰랐다. 병실에 누워있을 때 밝게 위로해줬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데뷔만 바라보던 친구들에게는 정말 슬펐을 것이다. 그 당시에 철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진짜 멤버들에게 잘 해야 한다. 80년은 멤버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라며 최근 재계약을 마친 사실까지 언급해, 앞으로 엔플라잉으로서의 활약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인터뷰②] 이승협 "'옥탑방', 아무것도 없던 엔플라잉에게 보인 별" 기사로 이어집니다.
- 하나영 기자 hana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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