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 어린 자녀의 정서적 어려움에도 주목…동화책 제작해 가족·시민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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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이 개발되고 치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환자가 질환으로 겪는 어려움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은 치료·예방 환경이 발전했지만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진단과 치료, 예방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암 환자의 가족 역시 치료 과정에서 정서적 어려움과 돌봄 부담을 함께 겪는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치료제 개발·공급을 넘어 이러한 문제까지 치료 환경의 일부로 보고 있다. HIV 분야에서는 감염인과 감염 취약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항암 분야에서는 환자뿐 아니라 가족의 치료 경험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넓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재연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대표는 지난 9월 22일 열린 창립 1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회사가 이어온 세 가지 도전 가운데 하나로 ‘사회 동반자’를 꼽았다. 그는 “환자뿐만 아니라 환자와 감염인이 속한 가족부터 사회 공동체까지 어떻게 하면 더욱 좋은 치료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 사회 동반자로서의 도전이 있었다”며 치료제를 개발해 환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의료진과 환자·가족, 감염인 커뮤니티 등 다양한 주체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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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료제 밖 HIV의 장벽, 사회적 편견 줄이기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치료제 밖의 문제로 주목한 분야 중 하나는 HIV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다.
신지원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대외협력부 상무는 이날 간담회에서 “치료제를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이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닿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우리나라 같은 문화적 특수성에서는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실제 진단과 치료, 예방까지 이뤄지는 데 중요한 허들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패널로 참석한 김승환 신나는센터 상임이사도 치료 환경의 발전에 비해 사회적 인식 개선은 더디다고 지적했다. 20여 년간 HIV·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활동해 온 그는 HIV 치료·예방 환경은 크게 개선됐지만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HIV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2025년 레드(RED) 마침표 협의체 출범 당시 공개한 관련 조사에서도 과제로 나타났다. 신나는센터와 한국리서치가 전국 3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HIV 국민 인식 조사에서 HIV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차이를 정확히 구분한 응답자는 25%였다. 우리 사회가 HIV에 개방적·포용적이라고 답한 비율은 13%였지만, HIV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답변은 80%에 달했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2025년 9월 출범한 ‘레드 마침표 협의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협의체에는 공공소통연구소,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 대한에이즈학회, 감염인 단체 러브포원·우리들의 이야기, 성소수자 커뮤니티 신나는센터 등 6개 기관·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협의체는 출범 이후 시민 참여 활동을 확대했다. 2025년 10월 네이버 해피빈과 진행한 첫 ‘레드 마침표 굿액션 캠페인’에는 HIV 차별과 편견 종식에 대한 시민 응원 메시지 8133건이 모였다. 같은 달 열린 ‘감염인의 밤’에는 약 60개 단체, 160명이 참여해 HIV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공유하고 차별과 편견 종식을 위한 연대의 뜻을 모았다.
올해는 ‘연대·평등·과학’을 3대 핵심 가치로 정하고 5대 공동 약속을 담은 ‘HIV 차별과 편견 종식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했다. 정확한 정보와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공동 메시지 확산, 의료·사회 환경의 인식 개선과 교육, 참여 주체의 전문성에 기반한 실천 등을 행동 방향으로 제시했다.
시민 참여 활동도 이어졌다. 서울퀴어문화축제와 서울 프라이드 엑스포에서 시민들이 선언문을 읽고 HIV 차별과 편견 종식 메시지에 ‘마침표’를 찍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년 연속 진행한 네이버 해피빈 캠페인 ‘침묵에서 연대로, 다시 찍는 RED 마침표’에는 5667명이 지지 서명에 참여했다.
신 상무는 “목표는 2030년까지 이런 사회적 편견을 변화시켜 보자는 것”이라며 학회와 의료진, 환자단체,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관련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 암 환자 넘어 가족의 치료 경험까지
길리어드가 치료제 밖에서 주목한 또 다른 대상은 암 환자의 가족이다. 특히 부모의 암 진단과 치료를 함께 겪는 어린 자녀의 정서적 어려움에 초점을 맞췄다.
최 대표는 “가족 구성원 중 엄마가 항암 치료 중이라면 아이들이 겪는 정서적인 불안이나 어려움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며 “가족이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가 있을 때 어떻게 이 여정을 함께해 나갈 것인가, 또 사회 커뮤니티는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같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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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사례가 동화책 ‘모험의 유리병(The Adventure Jar)’이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2024년 전이성 유방암 커뮤니티와 협력해 엄마의 암 진단 이후 달라진 가족의 일상과 어린 자녀가 겪는 복합적인 감정을 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동화책을 제작했다. 현재 한국어판을 포함해 15개 언어로 번역·출간됐다.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2025년 한국어판을 선보인 뒤 국내 환자단체와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삼중음성유방암 환우 단체 우리두리구슬하나가 주최·주관한 ‘핑크 패밀리 데이’에서는 ‘모험의 유리병’ 애니메이션 상영과 책 읽어주기, 유리병·키링 만들기, 컬러링 등 가족 단위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행사에는 약 500명이 참여했으며 길리어드 임직원 봉사단 ‘길’ 소속 임직원 30여 명도 함께했다. 현장에서는 동화책 150부를 배포했다.
올해는 환자와 가족의 이야기를 일반 시민에게까지 확장했다. 우리두리구슬하나는 서울야외도서관 ‘책읽는 서울광장’에서 시민들과 만나 환자와 가족이 치료 과정에서 겪는 경험을 공유했다. 동화책 영상 시청과 응원 메시지 작성, 퀴즈, 컬러링 등의 프로그램에 250명 이상이 참여했으며 길리어드가 제작한 ‘모험의 유리병’도 시민들에게 제공했다.
◇ 치료제가 환자의 삶에 닿기까지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HIV와 암 분야에서 진행하는 활동은 대상과 방식은 다르지만 치료제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환자의 사회적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는 공통점이 있다. HIV에서는 감염인과 감염 취약군을 둘러싼 편견과 차별을, 항암 분야에서는 환자와 함께 치료 과정을 겪는 가족의 경험을 다룬다.
현재 공개된 성과는 캠페인 참여와 지지 서명, 행사 참여 규모 등에 주로 집중돼 있다. 이러한 활동이 HIV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암 환자 가족의 경험을 실제로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레드 마침표 협의체도 2025년 인식 조사를 출발점으로 대중과 커뮤니티의 참여를 확대하고 인식 변화를 지속적으로 살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는 치료제 공급에서 역할을 끝내지 않고 의료진과 환자·감염인 단체, 시민사회 등과의 협력을 통해 치료제가 실제 환자의 삶으로 이어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과제로 제시했다.
신 상무는 “인식 개선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저희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과학적 혁신과 더 나아가 사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에서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