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5년간 5300억 증발…‘프리미엄 헛발질’ 하림 HMR, 백기 든 ‘멜팅피스’의 퇴장

기사입력 2026.09.18 15:33
‘더미식’ 이어 야심 차게 내놓은 ‘멜팅피스’… 튀김·함박까스 줄단종 뒤 공홈서도 퇴출
하림 “철수 아닌 재정비” 해명 불구…업계 “고가 정책 따른 시장 안착 실패”
5년 누적 적자 5296억, 누적 매출(3279억) 훌쩍 상회…'팔수록 손해 보는' 기형적 구조
매출 33% 쏟아부은 톱스타 마케팅도 역부족…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떠안고도 ‘먹구름’
  • 생성 AI를 활용한 그래픽/디지틀조선일보
    생성 AI를 활용한 그래픽/디지틀조선일보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종합식품기업’ 도약을 외치며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프리미엄 가정간편식(HMR) 사업이 5년 만에 53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사실상 실패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더미식’에 이어 선보였던 스트릿푸드 HMR 브랜드 ‘멜팅피스’는 시장의 외면 속에 대다수 제품이 소리 없이 단종됐고, 공식 홈페이지에서마저 간판을 내리며 굴욕적인 퇴각 수순을 밟고 있다.

    1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하림의 식품 제조 자회사 하림산업은 최근 공식 홈페이지 브랜드 소개란에서 ‘멜팅피스’를 완전히 제외했다. 현재 사이트에는 ‘더미식’과 어린이식 ‘푸디버디’ 두 가지만 남아있다.

    출시 당시 튀김류, 핫도그, 함박까스 등 대중적인 분식을 셰프 레시피와 고급 식재료로 차별화하겠다며 첫해 매출 목표 50억 원을 제시했던 멜팅피스는 현재 대부분의 라인업을 접고 핫도그 일부 품목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다.

    하림산업 관계자는 “철수가 아닌 제품력 강화를 위한 전략 재정비”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유통업계의 평가는 냉혹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브랜드명을 내리고 주력 SKU(취급 품목 수)를 사실상 정리했다는 것은 유통 매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해 시장 철수 수순을 밟는 전형적인 절차”라고 꼬집었다.

  • 하림산업은 2023년 3월 스트릿푸드 브랜드 멜팅피스를 새로 런칭했다./김경희 기자
    하림산업은 2023년 3월 스트릿푸드 브랜드 멜팅피스를 새로 런칭했다./김경희 기자

    ◇ 5년간 누적 적자 5296억… 누적 매출보다 적자가 더 컸다

    하림의 HMR 도전 잔혹사는 차가운 숫자로 증명된다. 김 회장은 2020년 말 전북 익산 퍼스트키친에 52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대규모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공장을 먼저 짓고 제품군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전형적인 몸집 불리기였다.

    이로 인해 하림산업 매출은 2021년 217억 원에서 2025년 1094억 원으로 5배가량 외형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를 넘어 ‘돈 먹는 하마’였다. 영업손실은 2021년 589억 원에서 2023년 1096억 원, 2025년 1467억 원으로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누적된 영업적자는 무려 5296억 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거둬들인 누적 매출 총합(3279억 원)보다 날려버린 영업손실이 2000억 원이나 더 많다. 팔면 팔수록 회사의 곳간을 갉아먹는 기형적인 출혈 구조에 갇힌 셈이다.

    하림이 플래그십으로 내세웠던 ‘더미식 장인라면’ 역시 체면을 구겼다. 출시 당시 면류 연매출 목표를 700억 원으로 공언했으나, 2025년 매출은 489억 원에 그치며 목표치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대규모 설비 투자의 감가상각비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성적표다.

  • 김홍국 하림 회장이 '더 미식 장인라면' 출시 행사에서 직접 끓인 라면을 보여주고 있다./하림 제공
    김홍국 하림 회장이 '더 미식 장인라면' 출시 행사에서 직접 끓인 라면을 보여주고 있다./하림 제공

    ◇ ‘터무니없는 고가’와 ‘톱스타 출혈 광고’의 한계… 소비자는 외면했다

    시장 안착 실패의 결정적 원인은 ‘무리한 고가 정책’과 ‘재구매율 참패’로 요약된다.

    하림은 대중적인 인스턴트와 분식에 프리미엄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봉지라면 4개입 세트를 8000원대 후반, 핫도그를 1만 원대 안팎에 내놓았다. 기존 대기업 제품 대비 1.5~2배 가까이 비싼 가격표였다. 소비 침체와 고물가 속에서 소비자들이 굳이 두 배 가격을 주고 하림 제품을 다시 찾을 만한 압도적인 맛의 차별점을 설득하지 못했다.

    이 같은 가격 저항을 뚫기 위해 톱스타 배우 이정재를 모델로 기용하는 등 고액의 마케팅비를 쏟아부었지만 이는 자충수가 됐다. 2024년 하림산업이 지출한 광고선전비만 267억원으로, 한 해 매출액(802억 원)의 무려 33%를 광고비로 허공에 날렸다. 마케팅으로 호기심성 첫 구매는 끌어냈을지언정, 지속적인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막대한 판촉비가 고스란히 적자 폭을 키우는 족쇄가 됐다.

  • 김홍국 하림 회장이 푸디버디 브랜드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하림 제공
    김홍국 하림 회장이 푸디버디 브랜드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하림 제공

    ◇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떠안았지만… 유통망 꽂아 넣기로 반전될까

    위기에 몰린 하림은 계열사 NS홈쇼핑을 통해 지난 6월 1206억 원을 들여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며 자체 오프라인 유통망 확보에 나섰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전통 유통 채널에서 외면받자 결국 계열 유통망에 자사 HMR 제품을 강제로 꽂아 넣겠다는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지 않는 한 유통망 확대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HMR사업에 두각을 나타내는 A식품업계 관계자는 “HMR은 철저히 규모의 경제와 가성비, 반복 소비가 지배하는 시장”이라며 “CJ제일제당, 오뚜기, 농심 등이 견고하게 장악한 과점 시장에서 하림이 고집한 ‘나 홀로 초고가 전략’은 시장에 대한 오판이자 완벽한 패착”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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