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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게 웃픈 경주로 가는 길…'경주기행' [리뷰]

기사입력 2026.08.26 11:13
  •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작은 봉고차 한 대가 도로 위를 지나간다. 심지어 한쪽 전조등이 꺼진 채로. 차 안에는 여자 넷이 있다. 엄마와 딸 셋. 벌레만 봐도 소란한 이 네 사람은 사실 '죽이러' 가는 길 위에 있다.

    영화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 경주를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기 위한 길을 나선 엄마 옥실(이정은)과 세 딸 장주(공효진), 영주(박소담), 동주(이연)의 복수극이다. 이들이 복수하려는 상대는 살인범 백상현(변요한). 하지만, 이들의 여정은 벌레 하나에도 요동칠 정도로 쉽지만은 않다. 상황은 계속 꼬여가고, 복수는 놓친 내비게이션 지시처럼 자꾸 어긋난다.

    '경주기행'의 흥미로운 지점은 '가족 복수극'이라는 한 단어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지만, 사실 네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지점이다. 엄마 옥실에게 복수는 넷째 딸 경주가 세상을 떠난 후 8년 동안 멈춰있던 시간을 다시 움직이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첫째 영주는 무조건 엄마를 위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세 딸 중 유일하게 남편과 아이를 가진 그 역시 엄마다. 둘째 영주는 자신이 공부했던 법을 통해,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지시한다. 하지만 공부했던 지난날과 백수인 지금의 현실이 어딘지 어긋난 영주를 만들었다. 셋째 동주는 막내 경주를 늘 질투했다. 프로 레슬링 선수이기에, 그 누구보다 강할 것 같지만, 마음은 여리다.

    '경주기행' 속에서는 그런 네 사람을 모두 품고 나아간다. 그 누구 하나에게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엄마니까, 첫째니까, 혹은 가족 중 가장 강한 사람이니까 참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네 사람은 서로를 아끼면서도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을 숨기지 않고, 누군가의 선택에 순순히 동의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말리고, 화내고, 도망치고, 다시 돌아온다. ‘경주기행’이 보여주는 가족은 완벽하게 한마음이 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끝내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차이를 안고 함께 가는 관계에 가깝다. 그렇기에 '경주기행' 속 모두는 생생하게 살아있다.

    네 사람은 복수에 나서지만, 같은 순간에 다른 생각을 한다. 마음처럼 되는 일이 없다. 엄숙한 복수극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생활감 넘치는 충돌과 엉뚱한 행동은 억지로 웃음을 만들어내기보다 이 가족이 함께 움직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웃음과 동시에 수많은 감정이 부딪힌다. 특히, 변요한은 엄마와 세 딸의 무게감에도 흔들림 없이 밀어붙인다. 그의 인생 연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감정이 거세된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은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된다. 그렇기에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공포가 된다. 김미조 감독은 카체이싱과 맨몸 액션,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응축시켜 가족 블랙코미디를 완성한다.

    그 중심에는 이정은이 있다. 복수를 결심하고 격렬한 감정을 터뜨리는 순간도 강렬하지만, 정작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것은 막내딸 경주와 함께한 어느 하루를 담아내는 옥실의 얼굴이다. 딸을 바라보는 눈빛과 입가에 번지는 미세한 표정만으로 그 하루가 옥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전해진다. 크게 울부짖지 않아도 그 얼굴 위로 딸을 잃은 뒤 멈춰버린 8년의 시간이 겹친다. 엄마 역의 이정은은 반칙에 가깝다. 관객에게 울어야 할 순간을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한 사람의 표정만으로 마음을 무너뜨린다.

    죽이러 떠난 가족은 여행 내내 싸우고 엇갈리며 서로를 다시 바라본다. 누구도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않고, 누구도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주기행’은 웃기면서 서럽고, 소란스러우면서 다정하다. 무엇보다 한동안 만나기 어려웠던 '조용한 가족', '가족의 탄생' 등의 작품과 이어지는 한국 가족 블랙코미디의 기묘한 정취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무엇보다, 경주와의 하루를 바라보는 이정은의 얼굴만으로도 '경주기행'은 잊히지 않는다. 8월 26일 개봉.

  •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경주기행' 스틸 이미지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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