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만 관객의 환호 속에도, 남들이 '제2의 전성기'라 치켜세우는 순간에도 그는 늘 카메라 너머의 본질을 응시한다. 최민식은 그런 배우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을 통해 인간의 가장 추잡스럽고 나약한 본능을 들춰낸 최민식과 지난 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최민식)가 강의실 맨 끝줄 소년 '이강'(최현욱)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원작의 경계를 넘어 한국형 서스펜스 속으로 들어간 최민식은 오롯이 캐릭터의 삶을 살아내는, 배우의 숙명을 다시금 증명했다. 오랜만에 치열한 연극 한 편을 마주한 것 같았다는 그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Q. '맨 끝줄 소년'을 선택한 이유.
"저는 희곡 원작을 보지는 않았다. 찾아보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원작을 보면 알게 모르게 (연기에) 영향을 받는다. 저도 사람인지라 그런 부분에서 의식을 안 할 수가 없다. 원작은 관음적인 요소와 예술의 경계에 좀 더 주안점을 뒀다면, 우리 작품을 거기에 플러스 한국적인 스릴러 요소와 서스펜스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겠다."
Q. 열패감에 사로잡혀 있는 '허문오'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했나.
"처음 대본을 보고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문오라는 인물에게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이 들었다. 너무 모지리 같았다. 진짜 이런 사람이 제 주변에 있다면 '잠깐 이리 와 봐.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하면서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더라. 나이 먹고 소위 말하는 지식인, 교수라면서 너무 나약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연민이 들기도 했다."
"대본을 보고 리딩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캐릭터로 들어갈 때는 제가 허문오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누구보다도 허문오의 편에 서자. 내 행위와 생각은 정당하다'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 참 딱한 놈이라는 생각으로 연기했다." -
Q. 허문오를 '올드보이' 속 오대수와 겹쳐 보는 반응도 있는데.
"저도 반응을 보고 놀랐다. '올드보이에서 혀 잘리더니 이번에도 입을 잘못 놀려서 인수분해까지 되는구나'하는 댓글이 있더라. 촬영하면서는 '올드보이'를 의식하지 않았는데 다 만들고 나니 '이렇게 또 비슷한 부분이 있구나' 싶은 걸 느꼈다."
"'맨 끝줄 소년'도 제가 연기를 하면서 굉장히 답답하고 심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꺼내고 싶지 않은 부분을 꺼냈다고 할까. 들추고 싶지 않고 묻어두고 싶은 것들이 있지 않나. 그걸 들춰서 까발리는 것이 '맨 끝줄 소년'이다. 여기서 '허문오'라는 인물을 통해 열등감, 패배 의식, 질투, 인간의 민낯처럼 아주 추잡스러운 본능을 보여주면서 오랜만에 연극 한 편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Q. 허문오를 연기할 때 가장 힘들었던 부분도 있을까.
"집중하기 힘든 순간은 없었다. 자연인 최민식으로서 봤을 때는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이었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는 마음으로 연기했다. '내가 이렇게 연기했을 때 시청자, 대중의 반응은 어떨까'를 생각하고 연기하지는 않는다. 작가님께 정말 감사한 게, 대본에 '어떻게 연주를 해야 하는구나'가, 마치 음표처럼 적혀 있어서 나는 그거대로 연주하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근사한 교향곡 하나가 나오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했다." -
Q. '이강' 역 최현욱과의 호흡은 어땠나.
"저에게 자극이 되는, 참 연기 잘하는 후배들이 많다. 가까운 예가 최현욱이다. 저는 현욱이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제작발표회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얘 연기만 잘 쫓아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드라마에서 나는 리시브를 잘하자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강이 짜놓은 프레임에 허문오가 말려들어 가서 소위 부비트랩에 잡혀 인수분해되는 거니까. 얘 연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아주 흡족했다. 현욱이가 2002년생, 아직 20대 아닌가. 내가 저 나이에 저렇게 연기했었나 과거를 돌아보게 됐다."
Q. 최근 출연한 작품들이 연이어 흥행했다. 팬서비스 덕분에 젊은 팬도 많이 생겼는데, 실감하고 있나.
"'파묘' 때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때는 코로나19 이후로 극장이 우울했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영화계 모두 거의 앵벌이 하듯 한 명의 관객이라도 모으려고 했다. 관객들이 뭘 바리바리 싸 와서 주더라. 그래서 이상한 모자도 쓰고 사진도 찍고 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관객들이 즐겨주신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썼다."
"생일 카페도 처음 봤다. 저는 생일 카페에 제가 가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촌스럽게 가는 거 아니야'라고 하더라. 동영상만 찍어서 보내면 된다고 해서 방긋방긋 웃으면서 영상을 찍었다. 다들 좋아해 주신 것 같아 다행이다. (웃음)" -
Q. '제2의 전성기'라는 수식어도 얻었는데.
"인기나 제2의 전성기 같은 말씀을 해주시는데, 저 그거에 일희일비 안한지 오래됐다. 하하. 대단한 깨달음을 얻어서 그런 건 아니고, 저도 어느덧 환갑이 넘다 보니까 앞으로 좋은 작품을 몇 개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은 시간 동안 정말 알차게 하자는 생각밖에 없다."
"그러나, 스스로 아주 더 이기적인 작업을 하자는 마음도 있다. 사람이 참 모순적이다. 연극의 3대 요소 중 하나가 대중, 관객이다. 관객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는데 그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허문오처럼 된다. 저는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 내가 이 작품을 통해 행복할 수 있으면 된다고 본다. 제가 천만 영화도 해보고, 정말 바닥을 친 영화도 해봤다. 인기와 흥행은 그저 덤이다. 결국 남는 건 내가 이 작업을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하느냐더라."
Q.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로맨스 하고 싶다는 말을 전부터 계속했다. 저 혼자만의 계획은 많은데 제안이 안 온다. 얘기 좀 많이 많이 해달라. 제 팔자가 이런가 보다."
특유의 소년미를 머금은 미소와 함께 로맨스에 대한 바람을 강조한 최민식은, 차기작으로 영화 '인턴'을 선보인다. 동명의 미국 영화를 리메이크한 '인턴'은 일에 있어 누구보다 열정적인 패션기업 CEO 선우와 풍부한 삶의 경험을 지닌 실버 인턴 기호가 만나 서로에게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로, 극 중 최민식은 실버 인턴 '기호'로 분해 한소희와 연기 합을 맞춘다.
'맨 끝줄 소년'으로 인간의 농밀한 민낯을 드러낸 최민식이 '인턴'에서 보여줄 휴먼 드라마는 어떨지, 그가 그려낼 또 다른 삶의 무대가 기대된다.
- 이우정 객원기자 lwjjane864@chosun.com
인기뉴스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dizz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