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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너머] 예전 방식으론 안 통한다…부모가 참아야 할 때와 단호해야 할 때

기사입력 2026.07.08 06:30
  • ‘아이를 이해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육아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부모가 그 마음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다. 훈육 일변도에서 벗어난 이 변화는 분명 진전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부모의 부담을 한층 키우기도 했다. 실제 육아는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면 부모의 고민은 더 깊어진다. 말을 하지 않고 방문을 닫은 아이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학교에 가지 않고 생활 리듬이 무너져도 마음을 열 때까지 지켜봐야 할까? 우울하고 불안한 아이에게 생활 습관을 지적해야 할까? 매일 아이와 생활하는 부모에게 이런 판단은 쉽지 않다.

    ‘아이를 이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에게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부모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현주 교수에게 물었다. 홍 교수는 30여 년간 진료실에서 청소년과 부모를 만나온 전문가로, 최근 청소년기의 다양한 행동과 정신건강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청소년 정신 건강에 관한 모든 질문’을 출간했다.

  •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현주 교수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제공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현주 교수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제공

    사춘기일까, 도움이 필요한 신호일까

    부모의 첫 번째 고민은 지금 아이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지,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신호인지 구분하는 데서 시작된다.

    홍 교수는 일시적으로 우울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이전과 다른 ‘기능 저하’가 나타나면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각·결석·조퇴가 잦아지거나 친구 관계와 학업이 이전보다 확연히 나빠지고, 수면이나 체중에 변화가 오는 경우다. 특히 이런 상태가 2주 이상 이어지면 우울증 등을 의심할 수 있고, 자해나 극단적 생각을 내비칠 때는 반드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질환을 의심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고민은 흔하다. ‘늦으면 연락이라도 해라’, ‘학교는 가야 하지 않겠니’ 같은 부모의 말을 잔소리로 받아들이는 아이도 많다. 홍 교수는 청소년기에 이런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아이가 귀찮아하면서도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상적인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갈등이 격해지고 등교 거부가 일상이 됐는데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면 단순한 사춘기 문제로 보기 어렵다. 홍 교수는 이런 경우는 “그전부터 있었던 부모·자녀 문제가 사춘기에 폭발한 것”이라며, 아이가 먼저 달라지기를 기다리기보다 부모가 먼저 관점을 바꾸는 편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

    기다림은 ‘다른 종류의 개입’

    대화를 거부하고 방문을 닫은 아이를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상태가 몇 주, 몇 달씩 이어지면 부모는 기다림이 방임이 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홍 교수는 아이의 생활 리듬이 무너진 상태가 몇 주 이상 지속된다면 이전과 다른 개입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여기서 개입은 부모가 아이를 억지로 끌어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이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면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개입이다. 아이가 전혀 준비되지 않고 변화할 의지가 없을 때는 몇 달 동안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홍 교수는 “아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믿으면서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며 “이런 과정 속의 기다림은 방임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개입”이라고 말했다.

    부모는 불안할수록 자신이 생각한 해결책을 서둘러 적용하려 하기 쉽다. 종교적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일방적으로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일찍 일어나라고 깨우거나 밤에 휴대전화를 빼앗는 식이다.

    하지만 아이의 상태와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시도는 관계를 악화시키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홍 교수는 “급하게 서두르는 부모의 마음 밑바닥에는 ‘아이가 못 일어나면 어떡하나’라는 불안이 있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 또한 이 불안을 다스리면서 자녀를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 습관은 아이에게, 안전 문제는 단호하게

    그렇다면 부모는 어디까지 참고, 어디서부터 나서야 할까? 홍 교수는 생활 습관과 안전·사회적 책임의 영역을 분명히 갈랐다.

    옷차림이나 화장, 씻기, 방 청소, 기상 같은 생활습관은 자녀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영역에 가깝다. 홍 교수는 그동안 들지 않았던 습관이 청소년기에 부모의 지도로 고쳐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고치려 애쓸수록 갈등만 커진다고 설명했다. 지각해서 교사에게 지적받는 것처럼 자기 행동의 결과를 직접 겪으며 스스로 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폭력이나 자·타해처럼 안전과 관련된 문제, 갈취 같은 행동은 다르다. 홍 교수는 이 영역만큼은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으로 넘어갈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갈취 등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부모가 대신 해결하지 않고 아이가 적절한 벌을 받고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자해 등의 행동은 그 이면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가 필요할 때, 어디로 가야 하나

    아이에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더라도 부모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상담센터로 가야 할지 병원으로 가야 할지, 학교 상담으로 충분한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증상이 심하면 병원, 가벼우면 상담센터라는 식의 구분부터가 오해”라며 “심하다, 심하지 않다는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며 증상만으로 이것은 병원, 이것은 상담이라고 구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리 상담은 어느 기관을 찾느냐보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더 중요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우선 학교 상담이나 위(Wee)센터,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 같은 공공 기관을 찾길 권했다. 무료인 데다 일정 수준의 질 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신건강의학과 접근성도 좋은 편이어서 ‘이 정도 일로 병원까지 가도 되나’라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유명한 전문가를 찾기보다 믿을 만한 치료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 상담은 치료자가 일방적으로 조언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만큼 문제를 해결하려는 당사자의 의지와 치료자에 대한 신뢰가 중요하다.

    홍 교수는 첫 면담에서 치료자가 아이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면 적어도 두 달은 바꾸지 않고 꾸준히 상담받아 볼 것을 권했다.

    완벽한 부모는 없다…더 하려는 부담 내려놓기

    청소년 정신건강 문제는 한 번의 치료로 끝나지 않는다. 좋아지는가 싶다가 다시 흔들리고, 입원과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기도 한다. 오랜 진료 경험에서 홍 교수가 꼽은 비교적 잘 회복한 가족의 공통점은 뜻밖에도 단순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기나긴 치료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내원하는 경우에는 결과가 좋았다”며 “흔들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해결되리라는 믿음으로 부모가 버텨주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과정을 어떤 마음으로 헤쳐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녀가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도 중요했다. 문제가 반복되더라도 함께 해결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 자녀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 긴 과정에서 정작 먼저 지치는 것은 부모인 경우가 많다. 홍 교수는 자녀보다 부모가 더 힘겨워 보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거리낌없이 표현하지만, 부모는 자신의 아픔을 참고 외면한 채 자녀의 문제부터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홍 교수가 이번 책에서 부모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더 많은 육아 기술이 아니라 위로였다. 부모 세대가 살아온 세상과 아이들이 경험하는 세상이 너무 달라 좋은 마음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자꾸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육아 책에 나오는 것을 다 하는 완벽한 부모는 없다. 누구라도 실수하고 잘못하지만, 다음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고 잘못을 되돌릴 기회는 항상 있다”고 말했다.

    육아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모든 조언을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홍 교수는 무엇이 내 아이에게 맞는지는 결국 부모가 판단해야 할 몫이며, 미리 재단하지 말고 아이에게 직접 묻고 함께 논의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어떤 전문가보다 자기 자신과 자녀에 대해서는 부모가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삶에서 크고 작은 결정은 전문가가 아닌 부모와 자녀의 특권이다. 자신의 판단에 대해 편안함과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홍 교수는 아이의 문제에 매달리느라 자신을 뒤로 미루는 부모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돌보는 것을 미루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는 “부모가 편안해야 자녀의 문제를 바로 본다”며 “더 하려는 부담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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