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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경쟁의 승패는 어디서 갈릴까? 모델 성능 경쟁은 이미 전제가 됐다. 이제 경쟁은 산업·연구·인재 체계를 얼마나 빠르게 재편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21일 열린 제4회 도헌학술심포지엄에서는 AI 경쟁이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산업 체제 전반의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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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일 솔트룩스 대표는 미·중 AI 패권 경쟁을 ‘초지능 제국주의 경쟁’으로 규정했다. 그는 “AI 경쟁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반도체·AI 모델·클라우드·데이터센터·전력망·국방·제조 자동화에 이르는 AI 풀스택 전체의 경쟁”이라며 미국이 동맹국들을 자국 AI 인프라 중심으로 묶으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산업 현장의 변화가 이미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사람 없이 기계만으로 돌아가는 다크 팩토리가 확산하고 있고, 최근에는 로봇이 자율적으로 실험하는 ‘다크 랩(dark laboratory)’도 등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연구소에서 불을 켜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말이면 AI 에이전트 수가 세계 인구와 맞먹는 82억 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향후 3~5년 내 800억 개 규모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한국이 이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느냐다. 이 대표는 AI 시대 산업 구조 전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와 조직 운영 방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 기업과 조직에 충분한 유연성이 주어지지 않으면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손현덕 매일경제 주필은 현대차가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이 한국보다 미국에 먼저 적용되고 있다며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국내에서 먼저 활용하지 못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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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경쟁의 파고는 산업 현장을 넘어 연구실과 강의실까지 밀려들고 있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윤국진 KAIST AI대학 학장은 이날 발표에서 “AI 혁명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배우고 연구하고 활용하는 체제 전체의 변화”라고 밝혔다. 그는 단순히 정답을 빠르게 찾는 ‘정답형 수재’ 교육에서 벗어나 질문·설계·검증·책임 역량을 갖춘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AI와 도메인 지식을 동시에 이해하는 ‘양손잡이 인재’ 육성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윤 학장은 생명과학·화학·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가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 다음 실험 조건 선택까지 하나의 순환 구조로 연결하는 자율 실험실이 “연구의 리듬을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거시적 산업 구조 차원의 우려도 제기됐다. 이근 중앙대 석좌교수는 한국 경제가 ▲미국 관세 장벽에 따른 미국발 공동화 ▲중국 공급 과잉 저가 물량에 따른 러스트벨트화 ▲고비용·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국내발 공동화라는 세 가지 산업 공동화 위험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AI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한국 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유·산업·복지 생태계 전반에서 국내 완결형 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의 분석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AI 시대 경쟁력은 기술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 생태계와 연구 플랫폼, 인재 체계가 함께 움직일 때 국가 단위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송호근 도헌학술원장은 행사를 마무리하며 “거시적 안목과 비판적 진단, 미래 항로 탐색이 지금 지식인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AI 경쟁이 기술을 넘어 산업·연구·인재 체제 전반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한국이 이를 뒷받침할 생태계와 인재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재편할 수 있을지가 과제로 남아 있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