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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히스타민제로 안 잡히는 가려움…만성 가려움증, 증상 완화 넘어 원인 추적 시대로

기사입력 2026.05.18 16:04
  • “가렵다고 하면 ‘참아봐’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잠을 못 이루거나 자다 깨는 사례가 굉장히 많고, 심한 우울과 불안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18일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난치성가려움증센터 미디어데이에서 김혜원 센터장(피부과 교수)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가려움증을 통증처럼 하나의 독립된 진단명으로 보고 원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 김혜원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난치성가려움증센터장(피부과 교수)이 18일 열린 ‘난치성가려움증센터 미디어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 김혜원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 난치성가려움증센터장(피부과 교수)이 18일 열린 ‘난치성가려움증센터 미디어데이’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만성 가려움증은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의학적으로 6주 이상 지속되는 가려움증을 만성으로 분류한다. 수면장애와 우울감, 사회적 위축을 동반하며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지만, 증상이 심해질 때마다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로 잠시 가라앉혔다가 재발하면 같은 치료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따르면 30년 넘게 등 가려움증에 시달린 60대 여성이 난치성가려움증센터에서 처음 받은 첩포검사(Patch test)에서 염색약 성분 PPD(파라페닐렌디아민) 알레르기가 원인으로 밝혀진 경우도 있다. 병원 측은 머리를 감을 때마다 염색약 성분이 등으로 흘러내리며 접촉성 피부염을 반복 유발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처럼 원인을 모른 채 수년에서 수십 년을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항히스타민제만으론 한계…신경·면역 경로로 패러다임 전환

    만성 가려움증 치료가 대증요법에 머물러 온 데는 이유가 있다. 오랫동안 가려움증의 원인을 히스타민으로만 이해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20년간의 연구는 이 패러다임을 흔들었다. 가려움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경로가 규명되면서, 히스타민 외에 인터루킨(IL)-31, TSLP 등 다양한 면역 단백질이 가려움 신경 회로를 자극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실제로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게 항히스타민제가 거의 효과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히스타민성 가려움이 히스타민성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JAK 억제제, IL-31 표적치료제, 오피오이드 수용체 조절 항소양제, 가바펜티노이드 계열 약제, 일부 항우울제까지 치료 옵션도 다양해지고 있다. 김 센터장은 “항히스타민제는 두드러기 같은 일부 질환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라며 “항히스타민제에 호전이 없다면 피부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원인불명’도 이제 하나의 진단명

    주목할 만한 흐름도 있다. 국제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가려움증을 ‘CPUO(Chronic Pruritus of Unknown Origin)’라는 독립 진단명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관련 임상 연구와 진단 체계도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김 센터장에 따르면 원인 불명으로 분류되는 비율은 5~7% 수준으로, 문진과 혈액검사, 첩포검사, 환자 히스토리를 종합하면 상당수 환자에서 원인을 추정할 수 있다는 게 의료진 설명이다. 김 센터장은 “만성 두드러기조차 음식이나 약물 알레르기가 원인인 경우는 10%가 채 안 된다”며 “가려움증과 알레르기는 동일한 의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 이동진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장이 18일 열린 ‘난치성가려움증센터 미디어데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이동진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장이 18일 열린 ‘난치성가려움증센터 미디어데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피부과 중심 다학제협진 체계 구축

    한림대학교강남성심병원은 이달 난치성가려움증센터를 개소하고 피부과를 중심으로 내과, 신경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가 참여하는 다학제협진 체계를 갖췄다. 항문·회음부 소양증처럼 말하기 어려운 부위의 가려움증으로 수십 년을 혼자 감내해 온 환자들에게도 전문 진료의 문이 열렸다.

    센터는 증상 양상과 악화 요인, 복용 약물, 생활 환경, 동반 질환을 종합 평가한 뒤 필요에 따라 혈액검사, 첩포검사, 피부 조직검사, 피부 장벽 검사 등을 시행해 원인을 추적한다. 원인이 확인되면 협대역 자외선B 치료, 표적치료제, 생물학적 제제 등 환자별 맞춤 치료를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통증의학 발전이 만성 통증 환자의 치료 선택지를 넓혔듯, 가려움 의학의 체계화가 난치성 환자들에게 새로운 출구를 열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동진 병원장은 “가려움증도 치료가 꼭 필요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며 “환자들이 더 이상 홀로 참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6주 이상 지속된다면

    6주 이상 가려움이 지속되고 항히스타민제·보습제 등 기본 치료에도 호전이 없다면 전문 센터 방문을 고려할 때다. 가려움으로 수면이 방해받거나, 긁어도 좋아지지 않고 피부가 두꺼워지거나 결절이 생기는 경우, 피부는 멀쩡해 보이는데 온몸이 계속 가려운 경우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약이나 건강기능식품 복용 후 가려움이 시작됐다면 연관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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