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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중국 다 있는데…한국, 세계 최고 수준 소아근시에도 관리 체계는 아직

기사입력 2026.05.13 09:00
  •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일상이 된 ‘디지털 세대’의 눈 건강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학원과 온라인 학습, 근거리 작업이 일상이 되면서 한국 청소년의 근시 유병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의료계에서는 성장기의 조기 개입이 근시 진행을 늦출 수 있다는 점에서 소아근시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12일 쿠퍼비전 코리아가 개최한 미디어 간담회에서 신선영 서울성모병원 교수(한국소아청소년근시연구회 총괄이사)는 “근시는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질환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들이 아이 핸드폰을 줄여달라고 부탁하지만 사실 누구도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제는 국가가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김대희 김안과병원 교수가 쿠퍼비전 코리아 미디어 간담회에서 한국 소아근시 현황과 관리 필요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 김대희 김안과병원 교수가 쿠퍼비전 코리아 미디어 간담회에서 한국 소아근시 현황과 관리 필요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실제 한국의 소아근시 문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이날 발표에서는 국민건강영양조사 기반 연구에서 국내 5~18세 청소년의 65.4%가 근시이며, 2010년 병무청 자료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서 당시 19세 남성의 근시 유병률이 96.5%에 달했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사실상 성인이 되는 시점에 대부분이 근시가 된다는 의미다.

    근시는 눈의 앞뒤 길이인 안축장이 길어지면서 발생한다. 한 번 길어진 눈은 다시 짧아지지 않는다. 성장기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고도근시로 이어질 경우 녹내장·망막박리·황반변성 같은 합병증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의료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한국 아이들의 생활환경이다. 신 교수는 한국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기기 사용과 근거리 작업에 과도하게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맞벌이 가정 증가로 학원과 실내 활동 시간이 길어지고 야외 활동은 줄어드는 구조가 근시 진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 영향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해외 연구 자료에 따르면 아트로핀 0.01% 사용 후 싱가포르 연간 -0.245D(디옵터), 스페인 -0.14D, 캘리포니아 -0.1D 수준의 근시 진행이 관찰됐다. 반면 서울성모병원 데이터에서는 같은 약을 사용해도 연간 -0.84D 수준으로 근시가 진행됐다. 신 교수는 생활환경 차이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소아근시를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안경 도수를 교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최근에는 성장기 동안 근시 진행 속도를 늦추고 장기간 추적 관리해야 한다는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김안과병원 김대희 교수는 이날 올해 발표된 한국형 근시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며 “근시는 안경을 맞추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 멈출 때까지 진행을 억제하고 추적해야 하는 장기 관리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 4~5세에 진단받은 아이가 만 13세까지 치료를 이어간다면 8~9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임상 현장에서는 드림렌즈(각막굴절교정렌즈), 다초점 소프트렌즈, 아트로핀 점안액, 근시 억제 안경 등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다만 의료진은 이들 방법이 근시를 되돌리는 개념은 아니며, 개인차가 크고 생활 습관 개선과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 신선영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쿠퍼비전 코리아 미디어 간담회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소아근시 관리 정책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 신선영 서울성모병원 교수가 쿠퍼비전 코리아 미디어 간담회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소아근시 관리 정책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는 동아시아 국가 사례도 소개됐다. 싱가포르는 2001년부터 국가근시예방프로그램(NMPP)을 통해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연 1회 시력을 검사하고 생활 습관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대만은 학생들을 매일 120분 야외 활동에 참여시키는 정책과 함께 전국 학생 시력 감시 체계를 도입했다. 중국은 2018년 교육부 주도로 초등학교 저학년의 숙제를 제한하고 6세 미만 아동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줄이도록 권고하는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반면 한국은 높은 유병률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체계는 아직 초기 단계다. 키 성장 곡선처럼 아이의 눈 성장을 추적하는 기준 데이터조차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선영 교수는 “학회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가 관심을 두고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아근시 관리에 대한 보호자 인식 부족 문제도 이날 행사에서 제기됐다. 쿠퍼비전 코리아 김현주 대표이사는 “많은 보호자가 여전히 근시는 안경만 잘 맞추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소아근시는 장기적인 관리와 보호자의 지속적인 관심이 중요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소아근시는 더 이상 단순한 시력 교정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이날 의료진들의 공통된 메시지였다. 디지털 기기 사용과 근거리 작업이 일상이 된 시대, 아이들의 눈 건강 역시 생활환경과 사회 구조 속에서 함께 관리해야 할 공중보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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