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승글로벌 설립 통해 해외 판로 직접 확보… 입점 상인 마케팅부터 수출까지 전폭 지원
- 국내 최대 클러스터, '소재 공급지'에서 '제작 생태계'로 구조적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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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흥인지문 맞은편. 약 4,600개 소재 업체가 밀집한 동대문종합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연간 거래액 5조 원, 방문객 1,000만 명을 기록하는 이 60년 전통의 B2B 패션 클러스터는 재료 유통에서 제작, 업무, 콘텐츠, 유통까지 아우르는 '패션 제작 플랫폼'으로 재편 중이다. B2B 전용 거점이라는 공식도 흔들리고 있다. Z세대 DIY 열풍이 5층 액세서리 상권에 인파를 불러모으고 있고, 홈패션 상권에는 일반 소비자 크리에이터들의 발길이 늘면서 고객군 자체가 확장되고 있다.
구매에서 출고까지, 한 건물 안에서 완결
이번 변화의 골격은 층별 기능 재설계를 통한 밸류체인 통합(소재 구매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의 통합)이다. 1층에는 시장 내 약 2,000개 원단 매장의 200만여 개 상품 중 트렌드에 부합하는 소재를 추려 전시하는 '트렌드포럼관'이 들어선다. 시즌·테마·용도별로 구성된 콘텐츠형 전시 방식으로 운영되며, 무역 전문 인력이 상주해 방문객 상담부터 거래 중개까지 담당한다. 파리 프레미에르 비죵, 밀라노 우니카 등 해외 주요 섬유전시회가 연 2회 개최되는 이벤트형 구조인 반면, 트렌드포럼관은 연중무휴 상시 운영이라는 구조적 차별점을 내세운다. 동대문종합시장은 세계 5대 섬유전시회 편입을 중장기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
같은 층에 위치할 '글로벌쇼룸'에는 이탈리아,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의 하이엔드 섬유 브랜드가 쇼룸 형태로 입점할 예정이다. 올해 4월에는 약 160년 역사의 일본 섬유기업 스타이렘(STYLEM, 구 타키사다)이 입점 계약을 완료했다. 전 세계 23개 거점을 운영하며 패션 원단의 기획·개발·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스타이렘의 입점은, 이 상권이 글로벌 소재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가시적 성과로 꼽힌다.
원단 상권의 기반 위에, 글로벌 바이어 유입을 더한다
2·3층은 동대문종합시장의 본질적 경쟁력이 집약된 원단 전문 상권이다. 오랫동안 국내 패션 디자이너와 브랜드 관계자들의 소싱 거점으로 기능해온 이 공간은 구조 변화 이후에도 기존 역할을 그대로 유지한다. 달라지는 것은 접근 경로다. 1층 트렌드포럼관이 상권 전체의 '관문' 역할을 맡으면서, 종전 구조에 익숙하지 않았던 해외 바이어들의 신규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자회사 ㈜동승글로벌과 연계해 해외 바이어 매칭, 샘플 및 오더 연결, 수출 중개로 이어지는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 기능도 강화되고 있다. -
4층은 이미 업무 인프라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2025년 3월 패션 특화 공유오피스 '무신사 스튜디오'(약 1,000석)가 오픈한 데 이어, 2026년 1월 셰어라운지·사진스튜디오·방송스튜디오·공유창고가 추가됐다. 새벽시장까지 이어지는 패션 디자이너의 업무 사이클에 맞춰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셰어라운지 이용료는 시간당 2,000원이다. 2026년 2월에는 '프로덕션 쇼룸'도 문을 열었다. 패턴, 샘플, 봉제, 나염, 자수, 라벨, 완제품 생산, 물류(3PL)까지 각 공정을 대표하는 12개 업체가 입점해 있어, 아이디어 단계에서 출고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생산 흐름이 구축됐다.
글로벌 법인 설립, '동대문 시스템'을 해외로
이러한 변화와 함께 글로벌 전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6년 1월 설립된 자회사 ㈜동승글로벌은 해외 바이어 유입(인바운드)과 입점 상인의 해외 판로 확장(아웃바운드)을 동시에 맡는다. 향후 3년간 약 100억 원을 투자해 바이어 직접 발굴, 거래 중개, 수출 실무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구조다. -
동대문 원단 시장의 핵심 경쟁력은 압도적인 재고 보유량과 소량·당일 거래를 가능케 하는 빠른 공급 대응력이다. 단일 건물 내에 이 규모의 섬유 집적 구조를 갖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세계 3위 섬유 클러스터라는 위상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바이어의 접근성과 거래 환경을 국제 기준에 맞게 정비하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Z세대 DIY 열풍이 바꾼 5층, '놀이공원'이 됐다
B2B 전문 거점으로만 알려졌던 동대문종합시장에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5층 액세서리 상권에는 비즈, 참, 체인, 키캡 등을 취급하는 약 500개 업체가 밀집해 있다. 2025년 말 SNS를 통해 '볼꾸(볼펜 꾸미기)', '키꾸(키링 꾸미기)' 등 DIY 트렌드가 퍼지면서 Z세대 소비자들의 유입이 급증했다. 재료를 선점하기 위한 오픈런이 나타나고, 휴일에는 혜화경찰서 소속 경찰의 순찰·당직 근무가 투입될 정도로 방문객이 집중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동대문종합시장' 해시태그는 수십만 건 규모로 쌓였으며,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 유입도 빠르게 늘고 있다. DIY 트렌드는 최근 거울·키캡·빗·휴대폰 꾸미기 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
지하층에도 유사한 흐름이 이어진다. 커튼, 침구, 카펫 등을 취급하는 약 700개 업체가 집적된 국내 최대 규모의 홈패션 전문 상권으로, 홈 DIY·뜨개·수예 트렌드 확산과 맞물려 일반 소비자 유입이 늘고 있다. 창문 치수를 가져오면 그 자리에서 커튼을 제작해주거나, 소파를 현장에서 즉시 커버링하는 구조는 온라인이 복제하기 어려운 동대문 상권 고유의 특성이다. 지하철 동대문역(1·4호선)과 직결되는 입지임에도 시설 노후화 등으로 저평가돼 온 이 공간은 현재 미디어월 설치, 카페 조성, 동선 전면 재설계 등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이다. 홈패션 브랜드 및 플랫폼과의 팝업 행사도 기획되고 있다.
세계 최대 단체급식 기업이 들어온 6층 식당가
6층 식당가에도 변화가 있었다. 올해 3월 세계 최대 규모의 단체급식·푸드서비스 기업 아라마크(Aramark)가 신규 입점했다. 1936년에 설립된 아라마크는 병원, 대기업, 왕실 등 위생·품질 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환경에서 식음 서비스를 운영해온 기업이다. -
2022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 행사의 식음을 주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매일 영양 균형을 갖춘 메뉴를 바꿔가며 조식·중식·석식·간식을 제공하며, 365일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시장을 매일 오가는 패션 디자이너와 상주 상인을 주된 이용객으로 삼아, 합리적인 가격과 안정적인 위생 수준을 갖춘 식음 인프라로 자리잡겠다는 구상이다.
- 서미영 기자 pepero99@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