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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 SUV 시장에서 레인지로버는 오랜 시간 독자적인 위치를 유지해 온 모델이다. 최근에는 전동화 흐름에 맞춰 변화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번에 시승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 레인지로버 스탠더드휠베이스(SWB) P550e 오토바이오그래피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인 결과물이다.
실제 주행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단순한 전동화 모델 이상의 변화에 가깝다. 정숙함은 한층 깊어졌고, 가속과 감속의 흐름은 더욱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도심에서는 전기차처럼 조용하게 움직이다가도, 필요할 때는 대형 SUV다운 힘을 자연스럽게 끌어낸다. 전통적인 레인지로버의 여유로운 주행 감각 위에 전기 구동 특유의 매끄러움이 더해지면서, 전반적인 주행 경험 자체가 한 단계 정제된 모습이다.
외관은 기존 레인지로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한층 정제된 방향으로 다듬어졌다. 각진 차체와 절제된 라인, 과하지 않은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며 브랜드 특유의 단정한 이미지를 이어간다. 변화의 폭은 크지 않지만, 면과 비율을 정리하는 방식에서 완성도를 끌어올린 인상이 분명하다.전면부는 수평적인 안정감이 강조된 구성이 특징이다. 넓게 펼쳐진 보닛과 직사각형 패턴의 그릴, 그리고 깔끔하게 정리된 범퍼 디자인이 균형을 이룬다. 특히 디지털 LED 헤드램프는 기능적인 진보가 두드러지는 요소다. 최대 500m에 달하는 조사 거리와 함께 다양한 조명 기술이 적용돼 주행 상황에 따라 빛을 세밀하게 조절한다. 단순한 디자인 요소를 넘어 실질적인 안전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측면부는 긴 휠베이스와 높은 벨트 라인이 만들어내는 비율이 인상적이다. 플러시 타입 도어 핸들과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윈도우 라인은 차체를 더욱 매끈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여기에 22인치 휠이 더해지며 대형 SUV 특유의 존재감을 자연스럽게 완성한다. 차체 크기가 큰 만큼 휠 사이즈 역시 과하지 않게 어우러진다.
후면부는 미니멀한 접근이 돋보인다. 블랙 톤으로 처리된 테일램프는 점등 전에는 차체와 거의 구분되지 않으며, 전체적인 디자인 흐름을 해치지 않는다. 점등 시에는 선명한 그래픽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낮과 밤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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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화려하게 시선을 끌기보다는, 오래 머물수록 가치가 드러나는 방향으로 완성됐다. 불필요한 버튼을 줄이고 고급 소재와 마감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 구성이다.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을 따라 이어지는 가죽과 우드, 금속 소재는 과하지 않게 배치되며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제된 고급감이 자연스럽게 체감되는 구조다.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복잡함을 덜어내는 대신 직관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공조 장치와 주요 기능을 물리적 혹은 빠른 접근이 가능한 영역에 배치한 점도 실사용을 고려한 흔적이다.
이 차의 성격은 2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이그제큐티브 클래스 시트는 단순히 편안한 수준을 넘어 머무는 공간에 가까운 경험을 만든다. 리클라이닝 기능과 함께 암레스트에 통합된 8인치 터치스크린 컨트롤러, 발·다리 받침대까지 갖춰지면서 장거리 이동에서도 자세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이동 중에도 긴장을 풀고 휴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SUV와는 결이 다르다.
정숙성과 감성 품질 역시 인상적인 부분이다. 1680W 출력의 메리디안 시그니처 사운드 시스템은 헤드레스트에 내장된 스피커까지 활용해 공간 전체를 채우는 입체적인 음향을 구현한다. 여기에 3세대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이 더해지면서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음을 능동적으로 억제한다. 단순히 조용한 수준을 넘어, 의도적으로 고요한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실내 공기 질 관리도 눈에 띄는 요소다. 공기 정화 프로 시스템은 이오나이저 기능을 활성화하면 PM 2.5 필터로 미세먼지와 꽃가루 등을 걸러내며, 탑승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주행 상황과 관계없이 실내 공기가 일정하게 관리된다는 점은 장거리 주행이나 계절 변화가 큰 환경에서 체감도가 높다.
트렁크 공간은 체급에 걸맞게 여유가 충분하다. 일상적인 짐은 물론, 부피가 큰 화물까지 부담 없이 실을 수 있는 수준이다. 수직으로 긴 짐을 안정적으로 고정할 수 있도록 파티션을 세울 수 있고, 테일게이트 끝단에는 등받이를 구성해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활용성도 갖췄다.2열 시트는 버튼 조작만으로 간편하게 접히며, 적재 상황에 따라 공간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 또한, 후륜 서스펜션 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 짐을 싣고 내리는 과정도 한층 수월하다. 러기지 네트까지 전동으로 작동하는 점에서, 세심한 편의성까지 고려한 구성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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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SWB P550e 오토바이오그래피는 국내 인증 기준 약 80km의 순수 전기 주행거리를 확보했다.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일상 주행의 상당 부분을 전기로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기에 3.0리터 I6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과 160kW 전기모터를 조합해 시스템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81.6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 시간은 5.0초로, 차체 크기를 고려하면 인상적인 수치다.
주행을 시작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정숙성이다. 초기 출발은 전기모터 중심으로 이뤄지며, 엔진 개입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가속 과정도 자극적이기보다는 부드럽고 일정하게 이어진다.
속도를 높여도 차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빠른 가속보다는 안정적인 흐름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정 속도에 도달하면 실내는 더욱 고요해지고, 장거리 주행에서의 피로감도 낮은 편이다.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의 역할도 크다. 노면 상황에 따라 서스펜션이 빠르게 반응하며 차체 움직임을 억제한다. 롤과 피치가 과도하게 발생하지 않으면서도 충격은 부드럽게 걸러낸다.
여기에 올 휠 스티어링과 다이내믹 리스폰스 프로가 더해져 저속에서는 민첩하게, 고속에서는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차체 크기를 고려하면 운전 부담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편이다.
핵심은 전동화가 가져온 변화다. 순수 전기 주행이 가능한 수준의 주행거리와 다양한 주행 모드는 활용도를 넓힌다. 하이브리드 모드에서는 상황에 따라 동력원이 자연스럽게 전환되고, EV 모드에서는 순수 전기로 조용한 주행이 가능하다.38.2kWh 대용량 리튬 이온 배터리는 급속 충전 시 약 1시간 이내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 완속 충전 기준으로도 약 5시간이면 충전이 완료된다.
최신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도 눈에 띈다. 이를 활용하면 알아서 차선 안에서 설정한 속도로 일정하고 정확하게 차량 위치를 유지해 특히 장거리 여행 시 확실히 피로가 줄어들고 여유 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랜드로버의 PHEV 기술은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차량의 주행 감각 자체를 바꾸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기모터 중심의 부드러운 출발과 정숙성, 그리고 에어 서스펜션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기존 내연기관 레인지로버와는 결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레인지로버 SWB P550e 오토바이오그래피는 강력한 SUV라기보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는 플래그십에 가깝다. 전동화가 이 차의 성격을 한층 더 정제된 방향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레인지로버 SWB P550e 오토바이오그래피는 5년 서비스 플랜 패키지를 포함한 판매 가격은 2억4827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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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열휘 기자 sung12@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