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서민금융 2조 시대… 마중물 넘쳐도 바닥은 마른다

기사입력 2026.04.15 08:00
지원 확대에도 여전한 ‘보이지 않는 벽’, 포용금융의 역설
  • 올해 은행권은 취약계층 지원과 포용금융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은행권 공동 ‘민생금융지원방안’ 규모도 2조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정작 현장의 온도는 다르다. 지원이 가장 절실한 저신용층일수록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이미지=OpenAI 생성 일러스트
    ▲ 이미지=OpenAI 생성 일러스트

    늘어난 공급에도 저신용층 비중은 감소

    은행권의 포용금융은 외형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의 서민금융상품 공급은 목표치를 상회했다. 그러나 실제 대출 실행 과정에서는 특정 계층으로의 쏠림 현상이 뚜렷하다. 금리 상승과 연체율 증가로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며, 저신용자의 대출 접근성이 제한되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금은 상대적으로 상환 여력이 있는 차주에게 더 많이 공급되는 경향을 보이며, 그 결과 최하위 차주의 금융 접근성은 더욱 제한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실제 데이터에서도 확인된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정책서민금융 상품 이용자 중 신용점수 800점 이상 차주 비중은 증가세를 보인 반면, 500점대 이하 최저신용층이 전체 이용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대비 최대 약 8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변화는 정책서민금융의 이용 구조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책 대상이 확대되고 중금리 성격의 상품이 포함되면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의 유입이 늘어난 데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기준이 강화된 환경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상품이라 하더라도 실제 대출 실행은 은행 심사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연체 위험이 낮은 차주 중심으로 취급이 이뤄지는 구조가 형성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정부 내부 분석에서도 확인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 ‘포용적 금융 대전환’ 추진 방향을 발표하며, 경기 회복 지연과 금리 상승으로 저신용층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금융회사의 리스크 관리 강화로 대출 접근성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문턱 낮췄다”는 정책… 현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벽

    다만 정책 당국은 이러한 분석에 대해 선을 긋는다. 서민금융진흥원은 “햇살론은 고신용자의 우회 대출 통로가 아니라, 낮은 소득과 신용으로 제도권 금융 이용이 어려운 차주의 진입을 돕기 위한 상품”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문턱은 여전히 높다. 정책 설계는 포용을 지향하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은행의 심사 기준이 작동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책상품이라 하더라도 대출 승인 여부는 결국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다.

    특히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이러한 간극이 더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금융당국 역시 “민간서민금융은 경기 침체 시 공급이 줄어드는 경기순응적 특성을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접근 가능성’과 ‘실제 승인 가능성’ 사이의 간극이 발생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경기 회복 지연으로 금융회사의 저신용자 대출이 위축되면서 정책서민금융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고, 동시에 이용 과정에서 탈락 사례 역시 증가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비용 측면에서도 한계가 지적된다. 정책서민금융 상품 금리는 최근 인하가 이뤄지며, 일부 상품 기준 최대 연 15.9%에서 12.5% 수준으로 낮아졌다. 그러나 연 12%대 금리는 여전히 취약차주 입장에서 부담이 적지 않은 수준으로, 체감 가능한 금융비용 완화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문제는 이용 이후에도 이어진다. 정책상품을 성실히 상환한 차주조차 신용등급 상승이 더디고 금융회사와의 연계가 부족해 제도권 금융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금융당국 역시 성실 상환 이후에도 제도권 금융으로 쉽게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고 있다.

    사다리는 있지만 올라갈 수 없다… 포용금융의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비대면 중심의 서비스 확대 역시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권은 금리인하요구권 자동 알림 등 디지털 기반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지만, 이는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이용자에게만 실질적인 혜택으로 이어진다.

    정부 보증 상품조차 실제 대출 단계에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신용도나 과거 연체 이력 관리가 요구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차주들은 제도권 금융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처럼 제도권 금융에서 탈락한 차주가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하는 구조 역시 정책 자료에서 주요 문제로 지목된다.

    고용 형태 역시 중요한 배제 요인으로 작용한다.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는 일정한 소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급여 이력이나 재직 증명을 중심으로 한 심사 체계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는다.

    정책 대상 선별 기준 자체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많은 정책이 ‘연 소득’ 기준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는 실제 상환 여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은행권 역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자산 건전성을 유지해야 하는 금융회사 입장에서 고위험 차주 확대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 또한 금리 인위적 인하가 형평성 문제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심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공급 규모가 아니라 ‘도달 구조’에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도 정책 방향을 ‘단순 자금 공급’에서 ‘금융 사다리 구축’으로 전환하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가 재원을 공급하고 정부가 제도 설계를 맡는 구조 속에서, 성실 상환자에게 금리 인하와 신용도 상승 기회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 1금융권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적 경로를 제도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구조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포용금융은 여전히 ‘문턱은 낮췄지만 들어갈 수 없는 금융’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결국 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자금을 풀었는지가 아니라, 그 자금이 실제로 가장 취약한 차주에게 닿고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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