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식탁 물가 흔든 가격 담합…설탕·밀가루·돼지고기 줄줄이 적발

기사입력 2026.04.02 16:48
  • 설탕, 밀가루, 전분당, 돼지고기 등 서민 식탁과 직결된 주요 식재료 시장이 장기간 조직적인 가격 담합에 노출돼 있었다는 사실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대대적인 조사와 제재가 이어지자 기업들은 뒤늦게 가격 인하와 사과에 나섰지만, 과점 구조와 제도적 한계가 맞물리며 담합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12조 시장 장악…식탁 물가 뒤흔든 전방위 담합

    공정위 조사 결과, 식품 원재료 시장 전반에서 장기간·대규모 담합이 이루어진 정황이 확인됐다.

    대표 사례는 설탕이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3사는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기업간 거래(B2B) 설탕 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사전에 합의했다. 2021년 9월에는 주요 수요처를 대상으로 kg당 80~100원 인상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가격이 오를 때는 즉시 반영하고, 하락 시에는 인하를 지연하거나 폭을 축소해 이익을 극대화했다.

    공정위는 총 40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향후 3년간 가격 변경 보고 의무를 부과했다. 특히 이들 기업은 2007년에도 유사한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어, 반복성과 구조적 문제가 동시에 드러났다. 이번 설탕 가격 담합으로 CJ제일제당은 1507억원, 삼양사(1303억원), 대한제당(127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판매대./김경희
    ▲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판매대./김경희

    밀가루와 전분당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7개 제분사는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간 가격과 물량을 담합했으며, 2024년 기준 B2B 시장 점유율은 88%에 달했다. 매출 규모는 약 5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전분당 시장에서는 4개 업체가 2018년 5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7년 6개월간 조직적으로 가격을 담합했으며, 매출액은 약 6조2000억원으로 집계된다. 공정위는 이를 매우 중대한 위법행위로 판단하고, 과징금과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한 시정조치를 검토 중이다.

    돼지고기 시장에서도 담합이 이어졌다. 9개 육가공업체는 대형마트 납품 과정에서 입찰가격과 하한선을 사전에 합의했으며, 삼겹살 1만8000원, 목심 1만4500원 등 구체적인 가격까지 공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조치는 처음으로 국민들의 주된 식재료 중 하나인 돼지고기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육가공업체들의 납품가격 담합 행위를 적발하고 제재한 사례다. 공정위는 총 31억6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6개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담합으로 인한 가격 상승은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졌다.

    ◇ 남는 장사 구조 인식에 반복되는 담합의 근본 원인

    공정위는 2024년 3월 제당사들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실시했으나, 이들은 과거 2007년 담합 전력이 있어 사실을 숨겼다. 실제 회합과 전화 통화 등 제한된 방법으로만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에 현장 조사 당시 명확한 합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제당사 간 가격 논의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일부 정황 증거는 확보됐다.

    공정위는 이를 바탕으로 약 1년간 수요처를 대상으로 조사를 이어간 끝에 구체적인 담합 혐의를 확인했고, 이후 약 7개월간 추가 조사를 통해 담합의 전말을 밝혀 제재 근거를 확보했다.

    이러한 담합이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배경에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 유통 분야 학계 전문가는 “독점 구조가 가장 큰 문제다. 수입 업체와 공급 업체가 사실상 정해져 있어 가격을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특히 B2B 시장에서는 경쟁보다 담합을 유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설탕 시장은 3개 기업이 약 89%를 점유하고 있으며, 밀가루와 전분당 역시 소수 기업 중심의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높은 관세와 진입 장벽도 경쟁을 제한한다는 분석이다.

    제도적 한계도 반복 원인으로 꼽힌다. 담합을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을 감면받는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도)는 적발 수단으로 활용되지만, 악용 가능성도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3년간 담합 사건 144건 중 98건에 감면이 적용됐고, 감면액은 2583억원에 달한다. 1·2순위 신청업체는 각각 고발 면제 또는 과징금 감면을 적용받으며, 계열사 후순위 신청도 공동감면이 가능하다. 법인 분할 등을 통해 반복 위반에도 감면 혜택을 받는 사례가 지적되면서 제도의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과징금을 충분히 부과해야 담합 행위를 줄일 수 있다”며 “기업들이 과징금을 단순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 밀실 회동에서 단톡방으로…진화하는 담합 수법

    담합 방식은 과거 호텔 밀실 회동에서 텔레그램과 메신저 단체방 등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 은밀하게 진화했다. 실제 돼지고기 담합 사건에서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입찰 가격과 전략이 공유됐다. 이는 담합이 이전보다 훨씬 신속하고 은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정위는 단순 과징금 부과를 넘어, 왜곡된 가격을 정상화하는 가격 재결정 명령 도입을 추진하며 제재 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징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통 학계 전문가는 “형사처벌을 강화하고 대표 등 의사결정자가 직접 책임지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며 “돈으로 해결되는 구조에서는 담합 근절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 기업 등 다양한 플레이어가 시장에 진입해야 담합 구조가 깨지고 경쟁이 확대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최근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경쟁 제한 행위를 물가 상승 요인으로 보고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실제 설탕·밀가루·전분당 담합이 드러난 이후 일부 기업들이 가격 인하에 나서며 시장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담합은 단속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과점 구조, 제도적 허점, 낮은 처벌 수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식탁 물가 안정을 위해 사후 제재뿐 아니라, 시장 구조 개편과 제도 개선을 병행하는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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