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움직이는 사람들] 캠핑장 국물 요리 고민, '배낭 속 만능 베이스'로 풀다

기사입력 2026.03.25 17:15
퇴계 종가 제사 음식 내력에 박사 연구 결합...야외 조리 '재현성'에 초점
고농축 페이스트 제형으로 부피 최소화...양념 준비 공정 및 조리 시간 단축
  • [편집자 주] 디지틀조선일보 아웃도어 섹션의 기획 연재 [움직이는 사람들]은 멈춰 있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산과 바다를 누비는 등산가와 서퍼, 한계를 넘는 러너와 코치, 그리고 치열한 구조 현장과 회복을 돕는 재활의 영역까지. 책상 앞이 아닌 현장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생동감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기록을 전합니다.

  • 안산에 위치한 '오삼부대찌개 숙주삼겹살' 음식점에서 윤정희 대표를 만났다./염도영 기자
    ▲ 안산에 위치한 '오삼부대찌개 숙주삼겹살' 음식점에서 윤정희 대표를 만났다./염도영 기자

    야외 활동에서 국물 요리를 조리하기란 쉽지 않다. 양념 준비의 번거로움과 조리 환경의 제약 때문이다. 리브헬시의 윤정희 대표는 이 지점에서 '배낭 속의 만능 베이스'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휴대성은 높이되 원재료의 맛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 결과다.

    ◇ 캠핑의 난제, '국물 요리'가 번거로운 이유

    캠핑이나 차박 등 야외 활동에서 국물 요리는 계륵과 같다. 자연 속에서 즐기는 뜨끈한 국물은 일품이지만, 이를 위해 챙겨야 할 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간장, 고추장, 된장 같은 기본 양념부터 다진 마늘, 고춧가루까지 일일이 소분해 챙기다보면 짐의 부피는 늘어나고 조리 후 남은 식재료 처리는 골칫덩이가 된다. 특히 화력이 가정보다 약한 야외 환경에서는 깊은 맛을 내기까지 상당한 조리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부담이다.

    ◇ 짐은 가볍게, 조리는 간편하게...'페이스트'의 발견

    윤 대표는 이러한 아웃도어의 제약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액상 소스와 달리 수분을 최소화한 끈적한 '페이스트(Paste)' 형태가 핵심이다. 페이스트 형태는 부피가 작고 보관이 용이해 백패킹 배낭에도 부담 없이 들어갈 만큼 휴대성이 높다.

    가장 큰 특징은 조리의 간결함이다. 끓는 물에 소스를 풀고 채소나 소시지 등 기본 재료만 넣으면 된다. 별도의 육수를 내거나 추가 양념을 할 필요가 없어 조리 시간을 단축해주며, 화력이 약한 캠핑용 스토브에서도 일정한 맛을 구현해낼 수 있다. 남은 식재료를 한데 모아 끓여도 소스가 맛의 중심을 잡아주어 소위 '냉장고 파먹기'식 캠핑 요리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 한국 소스의 세계화라는 목표로 함께 달려가고자 합류한 차남 최은석 셰프(왼쪽)과 윤정희 대표/사진 제공=리브헬시
    ▲ 한국 소스의 세계화라는 목표로 함께 달려가고자 합류한 차남 최은석 셰프(왼쪽)과 윤정희 대표/사진 제공=리브헬시

    ◇ 퇴계 종가의 내력과 연구 집념이 만든 '표준화된 맛'

    이 간편한 소스의 이면에는 윤 대표의 오랜 기억과 연구가 담겨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외가를 찾았다. 특히 겨울방학이면 퇴계 이황 선생 종가의 불천위 제사에 몰려드는 수백 명의 손님을 지켜보며 자랐다. 당시 종가에서는 높은 관직의 제객이나 형편이 어려운 이나 차별 없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대접했다.  이러한 '나눔'의 풍경은 훗날 "장소에 상관 없이 누구나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 한다"는 윤 대표의 신념이 됐다.

    이후 미국 거주 시절, 텍사스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여행길에서 겪은 '국물 요리에 대한 갈증'은 소스 개발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윤 대표는 누구나 어디서든 같은 맛을 낼 수 있는 소스를 만들기 위해 경희대학교 동서의학대학원에서 관련 분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위적인 지방 성분 대신 미삼(尾蔘)과 된장을 활용한 소스 제조 공법은 특허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했다. 여기에 호주 시드니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차남 최은석 셰프가 합류해 한식 소스에 양식의 페이스트 기법을 접목하며 제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 아웃도어 환경에 최적화된 실전 활용법

    리브헬시의 소스는 실제 캠핑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된다. 백패킹이나 미니멀 캠핑에서는 소스 한 팩과 건조 채소만으로 가벼운 국물 요리를 완성할 수 있어 배낭의 무게를 대폭 줄여준다. 오토캠핑에서는 남은 고기와 소시지를 한데 모아 넣고 소스를 풀기만 하면 '철수 전 아침 식사'가 된다. 조리 후 뒷처리가 간편하다는 점도 페이스트형 소스의 장점이다.

    특히 고농축 페이스트 제형은 구이 요리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제육볶음이나 된장 양념 고기를 조리할 때 액상 소스보다 고기에 더 밀착되는 성질이 강해, 야외 직화 조리 시에도 양념이 타거나 흘러내리지 않고 고기에 배어든다. 이는 조리 도구가 한정적인 야외에서 전문점 수준의 맛을 재현할 수 있게 돕는다.

    ◇ 세계 캠퍼들의 식탁을 향한 발걸음

    윤 대표의 목표는 대형 기업이 아닌, 전문성을 바탕으로 대를 잇는 강소기업이다. 이탈리아의 와이너리나 일본의 양조장처럼 고유의 기술을 지키는 모델을 지향한다. 척박한 국내 제조업 현장에서 양파나 마늘을 직접 손질하는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이러한 '원재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지 식재료와 유연하게 어우러지는 소스를 통해 야외 환경이나 해외 어느 가정에서도 한국의 맛을 구현하는 것이 마지막 계획"이라며 "멈추지 않고 연구한다면, 언젠가 전 세계 어느 가정집에서도 우리 소스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퇴계 종가에서 배운 정성은 이제 시공간을 넘어 전 세계 캠퍼들의 식탁 위에서 실용적인 한 끼로 재탄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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