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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3회 병원을 찾아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에게 여행은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치료 일정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 어렵고, 여행 중 투석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실제 의료 환경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환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투석 일정에 맞춰 준비한다면 여행을 포함한 사회 활동도 일정 부분 가능하다는 것이다.
3월 12일 ‘세계 콩팥의 날(World Kidney Day)’을 맞아 만성콩팥병 환자의 삶의 질 문제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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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석 환자 약 12만 명…이동 제한이 삶의 질 영향
대한신장학회 ‘말기콩팥병 팩트시트 2024’에 따르면 국내 투석 환자는 약 12만 명으로 집계된다. 고령화와 당뇨병 증가 등의 영향으로 환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투석 치료는 환자의 일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혈액투석 환자는 보통 주 3회 병원을 방문해 한 번에 약 4시간씩 치료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장거리 이동이나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환자와 가족 사이에서 널리 퍼져 있다. 투석 환자의 여행이나 이동 활동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현재까지 별도로 집계된 바 없지만, 실제로 투석 일정 때문에 장기간 외출이나 여행을 계획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환자도 적지 않다.
여행 중 투석도 가능…사전 준비가 핵심
전문가들은 투석 환자의 여행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여행 일정에 맞춰 투석 계획을 세우고 여행지 인근 의료기관과 사전 협의를 하면 치료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신장내과 김도형 교수는 “투석 환자 중에는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투석 일정에 맞춰 충분히 준비한다면 여행도 가능하다”며 “여행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여행지 의료기관의 예약 상황이나 비용 문제 등으로 실제 여행 투석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어 사전에 충분한 확인이 필요하다. 여행지 인근에서 투석이 가능한 의료기관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고 예약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행 일정 역시 투석 날짜를 기준으로 계획하는 것이 좋다.
의료 자료 준비하면 해외여행도 가능
여행을 계획할 때는 환자의 의료 정보 준비가 중요하다.
투석기록지와 검사 결과지, 진료의뢰서 등 환자 상태가 기록된 자료가 있어야 여행지 의료기관에서도 기존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해외여행의 경우 영문 진단서가 필요하다.
또한 여행 기간 복용해야 할 약을 충분히 준비하고, 응급 상황에 대비해 여행지 인근 의료기관 정보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국내 여행이라면 대한신장학회 홈페이지의 ‘인공신장실 찾기’ 서비스를 통해 여행지 인근 투석 병원을 확인할 수 있다. 병원에 미리 연락해 투석 가능 여부와 일정 조율을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복막투석 환자는 이동 계획 비교적 수월
투석 방식에 따라 이동 가능성에도 차이가 있다.
복막투석은 환자가 스스로 시행할 수 있는 치료 방식으로 혈액투석에 비해 이동 계획을 세우기 수월한 편이다. 자동복막투석을 사용하는 환자도 여행 중에는 손투석 방식으로 전환해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국내 여행의 경우 복막투석액을 여행지로 배송받아 사용할 수 있으며, 해외 일부 국가에서도 투석액 배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치료와 일상의 균형도 중요
전문가들은 투석 치료가 환자의 삶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현실도 환자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도형 교수는 “투석 환자가 여행을 계획할 때는 반드시 주치의와 상담해 투석 일정과 건강 상태를 고려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식이 조절과 수분 관리, 약물 복용 등을 철저히 관리하면 더 안전하게 여행을 계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전 준비를 통해 여행을 다녀오는 사례도 있다. 혈액투석 치료를 받는 70세 환자 A씨는 최근 가족과 함께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전 주치의와 상담해 현지 투석 병원을 예약하고 필요한 의료 서류와 약을 준비한 덕분이었다.
A씨는 “투석을 받고 있어 여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투석 치료가 환자의 일상을 완전히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