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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은 영화 '휴민트'의 주요 인물의 이름을 '조 과장, 박건'이라고 지칭했다. 이는 '휴민트'의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조인성과 박정민을 해당 배역으로 마음에 두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휴민트'의 중심에 담겼던 건 휴먼, 사람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엑스트라의 이름도 '1, 2, 3'으로 쓰는 것을 경계한다. 어쩌면, 현장을 진행하는 스태프들에게는 한 명의 이름보다 숫자로 구분 짓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현실에서 그러하듯, 각자의 이름을 주고 싶은 것이 류승완 감독의 마음이다. 그는 영화 '휴민트'에서 그렇게 사람을 중심에 두었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공간에서 만난 대한민국 국정원 요원 조과장(조인성)과 그의 정보원인 북한 식당 종업원 채선화(신세경), 그리고 북한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과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
Q. '휴민트'라는 제목은 Human과 Intelligence의 합성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첩보 멜로 액션 장르의 작품에서 감독님이 생각한 키워드가 있었을 것 같다.
"'휴민트'의 처음과 마지막에는 모두 자신의 집이 아닌 곳에서 깨어나고 잠드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서로 이중, 삼중으로 관계를 촘촘하게 맺고 있다. '휴민트'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이별'이다. 헤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액션 장르이지만, 그 액션은 나쁜 놈을 때려잡을 때의 쾌감이 아니다. 굉장히 차갑게 응축된 감정선 안에서 같은 액션 장르를 보더라도 되게 풍부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테크닉보다 인물을 다루는 저의 태도나 방식이 중요했던 것 같다."
Q. 조 과장(조인성)이 잠에서 깨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다시 지친 몸을 눕게 하는 수미상관의 방식으로 '휴민트'는 열리고 닫힌다.
"이렇게 노골적인 수미쌍관 형식을 한 것이 처음이다. 아마도 조 과장이 조인성이기에 가능했을 거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조 과장이 겪은 일을 회고하는 형식의 이야기다. '휴민트'를 본 후, 관객에게 오롯이 사람이 잔상에 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과 끝 장면에서 최소한의 조명만 사용했다. 조인성을 데리고 그러면 안 된다. 하지만, 조인성도 스스로 어둠 속에 잠긴 얼굴을 좋아했다. 이 배우를 데리고 어떻게 하면 한 편의 영화를 열고 닫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런 방식을 선택하게 됐다." -
Q. 러시아 조직의 인신매매 설정은 어떻게 택한 건가.
"영화 '베를린'을 준비하며 조사하던 중, 실제 북한 국경에서 일어난 일을 모티브로 삼았다. 실제 사건을 서술하는 것도 너무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이 소재를 택한 것은 돌이켜보면 '분노'였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을 사고판다는 것은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그 분노가 시발점이었다. 거기에 희생자가 있을 거고, 이 사건을 추적하는 사람이 있을 거고, 커다란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고, 과거의 선택 때문에 현재에 속죄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고. 이런 구도로 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Q. 채선화 캐릭터가 여러 위기를 맞지만, 그러면서도 굉장히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자신 앞에 놓인 총을 외면하지 않고 쥘 줄 아는 여성이다.
"제가 아내도 있고, 딸도 있다 보니, 여성 캐릭터 관련 강력한 검열가가 집에 둘이나 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가급적으로 인물 이름에 번호를 쓰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게 어렵다. 모든 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면, 스태프들이 현장에서 이를 컨트롤하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북한 총영사 부하들을 '1, 2, 3'이 아닌 '금태, 은동, 동철'이라는 이름으로 써서 현장에서 '금, 은, 동'이라고 불렸다. 결국 사람이 찍히는 건데, 사람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우리의 태도다. 채선화는 '휴민트'에서 원인과 결과가 되는 인물이다. 이 인물을 단순히 액션 영화에서 소비되는 인물로 그리면 어떤 서스펜스도 안 느껴질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들을 탈출시키는 주체가 채선화가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지키고 나아가는 모습이 참 멋있다."
Q. '류승완 감독'이라는 이름 하에 멜로가 신선했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영화 속 관계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멜로'가 이렇게 화제될 줄 몰랐다. 실제로 조인성 배우에게 채선화(신세경)와 박건(박정민)이 식당 뒷골목에서 만나는 장면을 촬영할 때, 현장에 나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저도 (멜로 장면을) 조마조마하며 찍었다. 연출 경력 20년이 넘는데, 키스 장면을 한 번도 찍어본 적이 없다. '휴민트'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과거가 만들어주는 밀도 같다. 아마 본격 멜로를 찍어야 했다면, 부담이 더 심했을 거다. 두 사람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에도 관객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신 덕분 같다." -
Q. 과거 '밀수' 때 장도리로 박정민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줬는데, 이번 '휴민트'에서도 다른 의미로 새로운 박정민의 얼굴을 발견하게 한다.
"제가 요청한 것도 있지만, 박정민 배우가 엄청나게 체중 감량을 하고 현장에 왔다.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깜짝 놀랐다. 언제나 그렇듯 박정민은 준비가 철저하다. 자기 역할에 몰입하기로 유명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배우 중에는 정말 조각 같은 외모를 가진 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 스크린에서 관객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는 배우들은 외모가 아닌 태도가 찍히는 것 같다. 그 인물이 된 현 상태. 특별히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아도, 뒷모습만 찍어도 그 사람의 마음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그건 결국 배우의 상태가 찍히기 때문인 것 같다. 박정민의 새로운 얼굴이 '휴민트'에서 보였다면, 그건 박정민이 준비하고 '휴민트' 현장에 임한 그 모든 것들이 찍힌 거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어떻게 해주려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최적의 앵글을 찾아서, 최적의 조명을 치고, 최고의 분장을 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두 시간을 버틸 수는 없는 것 같다."
Q. 그 태도는 박정민의 출판사 유튜브 채널 '무제'에서 언급하셨던 "대장 놀이"와도 연결선에 있는 걸까.
"박정민 배우는 실제로 앞에 나서는 걸 굉장히 못 견뎌 하는 사람이다. 이번에는 제가 부탁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캐릭터를 맡은 배우와 스태프들은 조과장(조인성)이 챙기고, 북한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은 박건(박정민)이 챙겨달라고. 박정민 배우가 보통 현장에서 막내처럼 있었는데, 어느새 형이 되었더라. '휴민트' 현장에서 그렇게 해주는 걸 보고 되게 고마웠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까지 노력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자기도 숙소에 들어서 쉬어야 하고 혼자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친구다. 그런데 술도 잘 안 마시는 친구가 같이 조깅하고, 같이 밥 먹으러 다니고 그렇게 해줬다. 되게 고마웠다." -
Q. 조인성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모든 사람이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말한다. 인성이 좋다. 사람이 유머 감각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있다. 최근 조인성 배우와 작업하며 느낀 건 '참 품위 있게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멋있어진다'라는 점이었다. 조인성의 실제 성격이 궁금하다면, '조 과장'을 보시면 된다. 실제로도 되게 비슷하다. 혼자 살지. 일만 하지. 자기 연기 안 되면 괴로워하지. 누가 다치면 힘들어하지. 되게 비슷하다. (웃음)"
Q. '휴민트'를 공개하고, 새로이 새긴 지점이 있을까.
"이 작품을 마치고, 개봉하고, 미련이 없어졌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봤다 싶다. 내일 죽어도 호상이라는 느낌? 근데 숙제는 남아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반응은 숙제로 남아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이 제게 분기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의 취향과 제가 하고 싶은 모든 걸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여러 형태로 해봤으니, 어쩌면 저의 다음 작품은 굉장히 달라질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휴민트'의 개봉 후, 다양한 의견이 뒤따랐다. 하지만, '휴민트'는 결국 처음과 끝이 그러했듯 영화 중심에 '휴먼'을 두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 현장에 임한 배우의 태도가 스크린 위에 고스란히 찍혔다. 류승완 감독이 이야기한 것처럼, 두 시간을 버티는 건 기술이 아니다. 사람의 태도다. 그렇기에 '휴민트'를 보면 끝내 헤어지지 못하는 사람이 가슴에 남는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