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무게 벽 넘는 경량화가 관건 “인간 공간 한계 넓힐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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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났다. 드론 군집에게 명령이 떨어진다. “출동해서 진화해.” 드론들은 스스로 화재 위치를 감지하고, 서로 비행 경로를 조율하고, 물을 투하할 지점을 판단한다. 사람은 명령만 내렸을 뿐이다. 피지컬 AI가 드론과 결합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고정완 위플로 공동창업자 겸 운영총괄이사는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6 DSK 컨퍼런스’에서 “드론을 날개 달린 로봇으로 이해하면 피지컬 AI가 무엇인지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KAIST 전자과 박사 출신으로 하버드 의대에서 의료 AI 연구까지 거친 그는 피지컬 AI와 드론의 결합이 인간이 닿지 못했던 3차원 공간의 문제를 풀어줄 것으로 전망했다.
◇ AI가 화면 밖으로 나왔다… 소프트웨어 AI와 피지컬 AI의 차이
고 이사는 피지컬 AI 개념을 자동차 정비사와 비교해 설명했다. 정비사는 고객과 대화하고, 차량 상태를 진단하고, 정비 계획을 세운 뒤 직접 공구를 들고 수리한다. 이 과정에서 진단과 판단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소프트웨어 AI의 몫이다. 공구를 집어 들고 볼트를 푸는 물리적 행동은 바로 피지컬 AI가 담당한다.
고 이사는 “챗GPT 같은 기존 AI는 텍스트나 이미지를 입력받아 디지털 데이터를 출력하는 소프트웨어 AI”라며 “피지컬 AI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간을 인식하고 실제 물리적 행동을 출력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피지컬 AI는 세 단계로 작동한다. 카메라·GPS·라이다 등 다양한 센서로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퍼셉션’, 그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디시전’, 판단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액션’이다. 이 세 단계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실시간으로 돌아간다. 이 구조를 보여주는 대표 산업이 바로 드론이다.
◇ 드론, 날개 달린 로봇이 되다
기존 드론은 사람이 경로를 하나하나 지정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목마다 좌표를 입력하고, 어디서 오른쪽으로 돌지 일일이 지시해야 했다. 피지컬 AI가 탑재된 드론은 다르다. “저 건물 따라가”라고 말하면 드론이 스스로 장애물을 판단하고 경로를 만들며 날아간다. FPV(1인칭 시점) 드론에 자연어 명령만 입력하면 나머지는 드론이 알아서 처리하는 연구도 이미 진행 중이다.
드론 업계에서 피지컬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곳은 DJI다. DJI는 최근 드론 탑재용 온보드 컴퓨팅 칩 ‘매니폴드 3’를 출시했다. 소형언어모델(sLLM)을 드론 안에서 직접 구동할 수 있는 수준의 칩으로, 단순 객체 인식을 넘어 인지에서 행동까지 이어지는 고도화된 AI 모델을 드론에 얹겠다는 의도다. DJI는 이와 함께 드론용 AI 알고리즘 개발 챌린지도 운영하며 피지컬 AI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군집 드론은 피지컬 AI의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분야다. 한 명의 오퍼레이터가 다수의 드론에게 정찰과 타격 임무를 맡기면, 드론들이 서로 역할을 나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벌집 짓는 방식에서 착안한 드론 3D 프린팅 연구도 있다. 드론 군집이 건물 외벽을 스캔하고 공중에서 구조물을 직접 출력하는 방식이다.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에서 드론이 대신 작업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 고도화와 경량화, 두 마리 토끼… “어려운 건 사실”
가능성만큼이나 넘어야 할 벽도 높다. 피지컬 AI 드론의 가장 큰 과제는 AI 모델의 고도화와 경량화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AI가 정교해질수록 더 많은 연산이 필요하고, 연산이 늘수록 배터리 소모가 커진다. 그런데 드론은 공중에 띄워야 한다. 무게가 곧 한계다.
현재 드론의 비행시간은 1~2시간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무게 중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30~50%다. AI 모델이 고도화되면 컴퓨팅 요구가 늘고, 그러면 배터리 소모도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지상의 로봇보다 훨씬 가혹한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다.
고 이사는 “솔직히 쉽지 않다는 생각도 있다”고 토로했다. 스마트 글라스가 오랫동안 하드웨어 한계에 막혀 제자리를 맴돌았듯, 드론 피지컬 AI도 배터리와 경량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같은 벽에 부딪힐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방향 자체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이 하던 일을 대신한다면, 피지컬 AI 드론은 인간이 할 수 없었던 3차원 공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드론과 피지컬 AI의 결합은 인간의 가능성을 재정의하고, 할 수 있는 범위를 넓혀주는 솔루션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동원 기자 the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