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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투박한 진심이 화려한 수사를 이긴다: ESG의 ‘성(誠)’을 찾아서

  • 이현 한국지방자치학회 인권경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신한대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기사입력 2026.02.24 07:43
  • 이현 한국지방자치학회 인권경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신한대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 이현 한국지방자치학회 인권경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신한대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ESG 보고서를 멋지게 써주는 컨설팅 업체 좀 추천해 주세요.” 최근 공공기관 실무자들과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위험한 전제가 깔려 있다. ESG를 내용이 아닌 포장의 문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차피 투자자와 평가지표를 만족시키기 위한 형식적 절차로 인식된다면, 가성비 좋으면서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정답 아닌가?” 효율성을 중시하는 경영의 세계에서 ‘보여주기’는 때로 영리한 전략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인류의 오랜 지혜인 『중용(中庸)』의 한 구절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불성무물(不誠無物), 즉 정성이 없으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적 영역과 시장을 막론하고 현재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ESG 흐름 속에서 정작 핵심 가치인 진정성은 화려한 인포그래픽과 영문 약어들 뒤로 가려지는 경우도 있다.

  • 먼저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짚어보자. 진정성(Authenticity)의 어원은 그리스어 아우텐티코스(authentikos)로, ‘자기 스스로 힘을 갖는 것’ 혹은 ‘진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동양적 사고로 재정의하자면, 맹자(孟子)가 강조한 반구저기(反求諸己)와 맞닿아 있다.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남을 탓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태도, 즉 외부의 평가지표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본질적 가치를 점검하고 세우는 힘이 바로 진정성의 핵심이다.

    흔히 ESG를 착한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ESG의 한 측면만 본 해석에 가깝다. ESG는 선행의 문제가 아니라, 위험 관리와 투명성을 포함한 장기적 경영 전략의 문제다. 최근 자본 시장에서는 매끈하게 연출된 홍보 영상보다, 투박하더라도 주요 리스크를 사실에 기반해 공개하는 데이터를 더 중시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관련 법령과 공시 기준의 범위 내에서 잠재적 위험 요소를 투명하게 설명하는 조직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자원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일수록 외형적 홍보에 치중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화려하게 세팅된 ESG 보고서보다는, 우리 공장에 이런 유해 물질 배출 리스크가 있고, 이를 줄이기 위해 현재 어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사실에 기반해 설명하는 접근이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윤리경영과 인권 경영 역시 마찬가지다. 수천만 원을 들여 찍어낸 홍보 영상보다, 조직문화의 개선이 필요한 영역을 점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그 기업의 거버넌스(G) 수준을 더 잘 말해준다. 화려한 수사는 눈을 즐겁게 하지만, 정직한 데이터는 마음을 움직이고 자본을 움직인다.

    결국 ESG경영이란 거대한 성벽을 쌓는 작업이 아니라, 매일 아침 마당을 쓰는 청소부의 마음가짐에 가깝다. 성벽은 화려하게 치장할 수 있지만, 매일 쓰는 마당의 청결함은 속일 수 없다. 투박한 진심은 세련된 거짓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향기를 지닌다.

    ESG경영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경영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신 유행하는 돛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정직이라는 닻이다. 닻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아 화려하지 않지만, 거센 풍랑 속에서 배를 지탱하는 유일한 실체다. 이제 포장지를 뜯어내고 알맹이를 직시하자. 본질적 관점에서 진정한 영향력(Impact)은 ESG보고서의 화려한 디자인과 수사가 아니라, 그 행간에 묻어나는 조직의 땀방울에서 시작된다.

    이현
    ▲신한대학교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한국사회보장정보원 비상임이사 ▲한국지방자치학회 인권경영특별위원회 위원장

    ※ 본 기사는 기고받은 내용으로 디지틀조선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현 한국지방자치학회 인권경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신한대 빅데이터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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