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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버원'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지난 2014년에 개봉한 그가 연출한 영화 '거인'을 꺼내 와본다. '거인'은 집을 나와 보호 시설인 그룹홈에서 자란 열일곱 살 영재(최우식)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거인'은 주연배우 최우식에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김태용 감독에게 한국 영화 감독 중 최연소 칸 영화제 초청이라는 타이틀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민평론가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애틋함을 더했다.
그런 김태용 감독이 '여교사' 이후 9년 만에 새로운 작품 '넘버원'을 들고 관객 앞에 섰다. '넘버원'에서 엄마 은실(장혜진)과 아들 하민(최우식)은 서로에게 '넘버원'인 관계다. 등 돌린 가족이 아닌 서로를 온전히 마주 보고 껴안은 가족을 통해, 김태용 감독은 관객에게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바라보지 못했던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자신도 엄마의 부고 소식을 마주하게 됐다. 엄마의 핸드폰 케이스에 김태용 감독의 어린 시절 사진이 있었다는 말과 함께다. '넘버원'의 여정, 그 자체가 김태용 감독에게 '엄마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
Q. 우와노 소라 소설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수 있는 횟수는 328번 남았습니다'라는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의 결말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어떻게 원작을 영화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거인'과 '여교사'라는 두 편의 작품을 내놓고, 어느 길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저를 잘 아시는 분들께서 '너는 한 배우의 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원톱 영화를 가장 잘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 주셨다. 그 말씀에 제가 나이를 먹고, 성장하면서 느낀 따뜻함을 작품 속에 담고 싶었다. 제가 제안받는 작품들은 거의 엄마, 아빠 중에 한 분이 없고, 아빠가 아이를 죽이거나, 아이가 아빠를 죽이는 이런 이야기였다.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찾다가, 원작 소설이 '이건 딱 내 거다'라고 마음에 들어왔다. 원작 소설에서 엔딩을 엄마의 죽음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그건 잘못된 정보 같다. 원작의 어떤 결말이 있고, 저는 거기에 '내가 해답을 내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루룩 써 내려간 것 같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이 있는, 저라는 사람의 인장이 명확하게 찍힌 작품이길 바랐다. 깊은 결핍을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진짜 담담함이 있지 않나."
Q. '넘버원'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엄마 은실(장혜진)은 남편과 첫째 아들을 먼저 보낸 기구한 엄마이지만, 아들 하민(최우식)을 바라보며, 또 자기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나가며 정말 씩씩한 엄마다. 패션 감각까지도 너무 귀엽고 좋았다.
"배우 장혜진은 저와 같은 동네에서 자라셨다. 워낙 부산의 정서와 언어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다. 장혜진과 참는 게 미련해 보이는 게 아니라,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자기 혼자 감정을 잘 다스리는 엄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한편으로는 엄마와 아들의 멜로영화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무조건 희생하는 구도가 아니라, 엄마와 아들이 연인 같기도, 친구 같기도, 그렇게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Q. 아들 하민 역의 최우식과는 '거인' 이후 10여 년 만에 재회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30대 직장인 모습까지, 큰 스펙트럼의 감정을 다시 한번 스크린에 제대로 담아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과 성인의 모습을 더블 캐스팅으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나이를 모두 커버하면서,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 배우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최우식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영화 '거인'을 함께 하며 이미 큰 고비를 함께 넘어봤기 때문에 제일 잘 아니까. 최우식이 이렇게 사투리를 완벽하게 할 줄 몰랐다. '거인' 때 최우식은 드라마 경험만 있었기에, 영화를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함께 서로를 보며 놀라며 완성해 갔다. 감정 연기에 대해서는 오히려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넘버원'이 지하 3층이라면, '거인'은 지하 25층 정도 되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웃음) 좀 감개무량했다. 최우식도 저도 그동안 잘 버텼구나 싶었다. 너무 멋진 어른이 된 것 같다."
Q. 여자친구 려은 역에 사실 김태용 감독이라는 자아를 많이 담았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나. 원작에 없는 캐릭터였고, 쉽지 않은 역할이었는데, 공승연이라는 배우 덕분에 우직하게 기대고 싶은 힘이 있었던 것 같다.
"배우 공승연도 너무 잘해줬다. 공승연도 영화라는 한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공승연이 저랑 최우식이랑 셋이 있으면, 셋 중에 가장 큰 어른이다. 려은이라는 캐릭터에게 저를 대입해서 이렇게 결핍을 가진 사람들도 다 품 안에 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공승연이라는 사람 자체가 단단한 사람이여서 려은이랑 너무 잘 맞았다. 후반부의 감정은 진짜 거의 공승연이 다 끌고 간 것 같다." -
Q. 제목부터 '넘버원'이지 않나. 숫자가 보이는 건 분명 판타지 같은 설정인데, 그 숫자가 굉장히 정적이고 그마다의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캘리그래피 하시는 분 중에 '폭싹 속았수다' 작업도 하신, 전은선 작가님께서 숫자를 써주셨다. 하민이가 어릴 때 썼을 것 같은 느낌의 숫자 같은 동화적인 느낌을 원했다. 그래서 처음 365라는 숫자가 나올 때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색도 움직임도 요동친다. 그 숫자가 사람의 인생과 같이 떨어질수록 색도 바라고, 1쯤 되면 색도 움직임도 없어진다. 그런 고민을 담았다."
Q.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거인' 속 영재에게 감독님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었던 것처럼, '넘버원' 속 하민이를 바라보게 된다. 그러면 애틋함이랄까, 기특함이랄까, 그런 여러 감정이 더해진다. '넘버원'을 만들기까지 개인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거인'이라는 영화를 찍고 나서 저도 되게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넘버원'도 비슷하다. '넘버원'을 본 관객들이나, 작업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영화 얘기보다 숨겨진 가족사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시더라. 사실 집마다 가진 사연들이 있지 않나. '거인' 때도 여러 루트를 통해 관객의 반응을 마주했다. 그런데 또 생각보다 나보다 더 척박한 상황에서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들 중에는 자신은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가정을 이루어 사랑을 많이 주고 살아가는 분들도 있었다. '마음먹기 나름이구나'라고 느끼며 저도 그렇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제 업이니, 그런 지점을 영화로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인'은 아직도 종종 GV(관객과의 대화)를 할 때가 있다. 오는 2월에도 예정되어 있다. 그러면 그곳에서 '지금 영재는 잘 지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답을 어쩌면 '넘버원'으로 해드릴 수도 있을 것 같다." -
Q. '넘버원'을 작업하던 중, 낳아주신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때의 감정이 분명 작품에 담겼을 것 같다.
"'아들들은 30대쯤 되어야 엄마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 저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의 삶이 너무 기구하고 안됐다고 생각하게 된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넘버원'이 개봉하면, 찾아뵙고 모셔야겠다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가실지 몰랐다. 최우식도 캐스팅되기 전이었던 재작년 3월,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동생이 제 번호를 수소문해서 연락한 거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휴대폰 케이스에 제 어릴 때 사진이 있었다고. 형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유품 정리하며 연락했다'라고 하더라. '넘버원'을 해나갈수록, 마음에 무언가 울렸다. 정작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담은 영화를 만들 자격이 있나 싶었다. 그렇게 낮아질 때, 최우식이 딱 손을 잡아줬다."
Q. 영화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고기뭇국은 어머니가 담긴 국이었을까.
"제가 14살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다. 엄마가 소고기뭇국을 많이 끓여주셨다. 그 맛을 따라 해보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 '넘버원' 시나리오를 쓰면서 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첫 번째가 소고기였다. 마트에서 깔끔하게 다듬어진 소고기가 아닌, 비계도 붙어있는 그런 고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국간장이었다. 시장에서 산 국간장은 아무래도 좀 쿰쿰한 냄새가 난다. 그렇게 '넘버원'을 만드는 과정이 엄마의 사랑을 찾아나가는 길이었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소고기뭇국을 진짜 많이 끓였는데, 그 맛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
Q. 따뜻한 이야기를 선보였다. 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
"시리즈를 해보고 싶다. 저는 사실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런데 제가 '사람'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서사를 부여하고 싶은데, 영화는 아무래도 서사를 줄이게 되지 않나. 최근에 '러브 미'라는 작품도, '은중과 상연'이라는 작품도 그렇고, 사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그런 작품이 일상을 사는 사람에게 귀한 위로가 되지 않나. 저는 모나게 자랐지만, 저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며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김태용 감독을 거울에 비춰본 작품이 '거인'이라면, '넘버원'은 오랜 시간 마음속에 남아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의 표현처럼 "깊은 결핍과 상처를 지나온 사람"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몫이 있었다. 언젠가, 김태용 감독이 표현하는 평범한 하루를 담은 작품이 보고 싶어진다. 그가 사람들에게 가닿게 할 작은 희망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 조명현 기자 midol.i.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