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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넘버원'은 설정부터 뭉클하다. 갑자기 눈앞에 숫자가 보이고, 그 숫자는 엄마 밥을 먹으면 하나씩 줄어든다. 그 숫자가 모두 줄어들어 0이 되었을 때, 엄마가 죽는다. 그걸 알게 된 아들, 하민이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게 될까.
하민이를 최우식이 맡았기에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폭이 분명히 있다. 최우식은 자신에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안겨준 영화 '거인'으로 만난 김태용 감독과 약 10년 만에 재회했다. 그리고 당시 부모에게 버림받아 오갈 곳 없던 힘들었던 '거인'의 마음을 '넘버원'에서는 엄마를 향한 사랑으로 옮겨 담는다. 10년 동안 성장한 두 사람이 같이 한 작품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엄마는 영화 '기생충'에서 함께한 글로벌 모자 장혜진과 최우식으로 마주했다. 여기에 또 최우식에게 '넘버원'이 더 애틋해진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엄마다. -
Q. 시사회 당시, 작품을 보고 울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갈 때, 조금 눈시울이 불거진 것 같다. 사실 엔딩 크레딧에 저희 엄마 사진도 있다. 기분이 묘하더라. 살아가면서 엄마와 함께 스크린에 걸리는 날이 또 있을까.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뭉클했다. 사실 '넘버원'의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눈물이 났다. 제가 깊은 감정 장면에서 그 감정을 느껴야 표현할 수 있는데, '넘버원'은 시나리오부터 슬픈 지점이 많았다. 연기하면서 몰입될 수밖에 없었다."
Q. 10년 만에 독립영화 '거인'을 함께한 김태용 감독과 만났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그 공기가 궁금하다.
"감독님이 '주고 싶은 글이 있다'라고 하셨다. 사실 감독님께서 '같이 또 하자'할 때, 저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우려가 더 컸다. '거인'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 제가 하민이의 깊은 감정 표현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있었고, 가장 큰 게 사투리를 한다는 지점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좀 안전하고, 쉬운 길을 많이 택하려고 한 것 같다. 잘할 수 있고, 저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아온 것 같은데, '넘버원'은 저에게 도전이었다. 그 도전을 할 때, 김태용 감독님과 함께라면 잘 만들어주시지 않을까 믿음이 있었다." -
Q. 어떤 면에서 큰 도전이라고 생각했나.
"사투리로 감정 표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아닌 정서를 전달해야 하지 않나. 그 말속에 정서나, 살아온 환경, 동네 분위기 등이 다 담기는데, 제가 해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실제로도 힘들었다. 현장에서 엄마(장혜진)도, 감독님도, 사투리 선생님도 계셨다. 저의 엄마도 경상도 분이신데 사투리를 잘 쓰지 않으신다. 촬영 한두 달 전부터 같이 작업하고, 레슨도 받고 그랬다. 사실 작품에 임할 때, 대사를 가지고 많이 준비하고 들어가는 편은 아니다. 현장에서 자연스러움을 생각해서 많이 고치기도 하고, 입에 맞게 수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민이의 말이 사투리라서 제가 그렇게 하기가 어렵더라. 사투리 선생님께 추임새를 많이 배웠다."
Q. 반복해서 사용하는 말 추임새 '압'도 혹시 사투리였나.
"추임새는 즉흥에서 한 것 같다. '압'도 동네마다 다 사용법이 다르더라. 사투리 선생님은 '압'이 들어갈 때가 아니라고 했고, 감독님은 '압'을 넣고 싶어하셨다. 그래도 동네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라는 말을 방패삼아 용기를 내고 했다." -
Q. '넘버원'의 중심축은 엄마와 아들이었다. 영화 '기생충'으로 글로벌 모자였던 장혜진과 최우식의 만남이 또 다른 모자의 모습으로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배우 장혜진은 자신의 아들이 실제로 최우식 닮은꼴이기에 몰입하기 쉽다고 이야기했다.
"'기생충' 때부터 닮았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제가 보기에도 많이 닮았다. 그리고 장혜진 선배님도 실제로 저희 엄마와 목소리 톤이 똑같다. 덕분에 연기할 때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기생충' 때는 전체적인 앙상블이 주를 이룬 작품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둘의 핑퐁이 있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더 깊이 친해진 것 같다. 제가 인복이 좋은 것 같다."
Q. 인터뷰에서 장혜진은 "최우식이 생일상도 차려줬다"라며 '늘 받기만 했다'라고 했다.
"제가 인간관계를 잘 못하는 것 같다. 딱히 누군가에게 잘하고, 무언가를 베풀고 하는 지점이 많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 했을 때 크게 다가오나보다. 제가 선배님 생신 때 그렇게 한 걸 너무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제가 드린 것보다 받은 게 많다. 연기할 때도 그렇다. 항상 받기만 하는 것 같다." -
Q. 엄마(장혜진)가 하민(최우식)에게 무릎을 꿇으며 이야기하는 그 장면이 깊이 남았다. 당시의 마음도 궁금하다.
"제가 감정 연기 징크스가 있다. 깊이 표현해야 하는 감정 연기를 앞두고 겁도 많이 난다. 슬픈 걸 많이 찍었다가, 늪에 빠져서 불행해질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해질 것 같기도 해서 많이 피했다. 사실 그 장면을 찍을 때, 이미 그런 마음에 들어가 있었다. 통통튀는 엄마가 하민이 때문에 변해가는 모습을 같이 바라보며 느껴야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저는 자연스럽게 혜진 선배님의 감정을 받기만 했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그 전날 밤에 잠도 못 자고, 걱정과 고민으로 현장에 안 좋은 컨디션으로 가게 되었는데, 촬영에 들어가고, 함께하며, 연기를 받기만 해도 술술 나오겠다고 걱정이 사라졌다. 정말 술술 나왔습니다."
Q. 영화 '거인'으로 만났던 김태용 감독님과의 재회도 궁금하다. '거인'은 최우식에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안겨준 작품이자, 배우로서 더 주목하게 했던 작품 아닌가.
"'거인' 때는 제가 24살이었고, 감독님이 27살 때였다. 경험도 많이 없었고, 제가 기억하기로는 20회차 이내의 짧은 촬영 시간이었다. 정말 힘들었지만, 또 즐겁게 촬영했다. 그때의 기억으로 '넘버원' 현장도 기대됐다. 김태용 감독님은 누구보다 저를 잘 아시고, 알고 싶어하시고,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거인' 이후 서로 10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경험치가 쌓이며 성장한 것 같다. 그런데도 감독님은 모든 배우가 하는 일을 제가 해도 '다 컸다, 배우다'라며 감탄했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시나리오에 메모해 놓고 이런 소소한 거다. (웃음) '거인' 때는 세상에 찌들지도 않은 순수한 마음의 날달걀 같은 두 명이 만나서 진정성 있게 싸우고, 이야기하고, 친해진 것 같다. 그렇기에 서로 약간 사회에 찌든 모습을 보게 될 때면 웃기기도 했다. 너무 재미있었다." -
Q. 앞서 영화 '넘버원'의 시나리오를 보고, 현장에 임하며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이야기했다.
"저는 실제로 항상 이런 걱정과 고민을 달고 살았다. 제가 늦둥이라 친구들 부모님보다 저희 부모님이 항상 나이가 훨씬 더 많으셨다. 제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 형이랑 '내가 서른 살이 되면, 우리 부모님은 몇 살이시겠지'라는 대화를 많이 했었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저도 하민이처럼 일에 치이고, 다른 것들을 하고 살다 보니, 그런 질문들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함께할 계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데,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더 소통도 많이 하고, 우리 부모님의 사진보다 동영상으로 많이 남겨두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이야기만 들어보면, 실제로도 굉장히 자상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들일 것 같다.
"저는 딸 같은 아들 같다. 하민이가 엄마에게 말장난도 많이 하고, '은실 씨'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저도 엄마 아빠에게 '사랑한다'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많이 부족한 아들이기도 하다. 제가 늦둥이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만큼 더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드려야 하는데, 또 못하고 있다. 아직 부모님께서는 '넘버원'을 보지 못하셨다. 부모님은 사실 제가 힘들어하는 연기를 하는 걸 안 좋아하신다.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 혹은 예능을 할 때 더 좋아하시지, 제가 울고, 도망 다니고, 칼 찔리고, 그런 모습을 별로 안 좋아하신다. 이번에도 많이 슬퍼하실 것 같다." -
Q. 그럼, 부모님의 최애(최고 좋아하는) 아들 출연작은 뭘까.
"저희 부모님은 제가 출연한 예능을 좋아하신다. 또, 예능은 재방송을 많이 해주지 않나. 그러면 TV에서 저를 많이 보게 되니 좋아하신다. 최근 '우주메리미'도 진짜 좋아하셨다. 진짜 진짜 좋아하셔서 매번 이야기하셨다. '기생충'이랑 '거인', '살인자 O난감'은 좀 힘들어하셨다. 아마 이번 작품도 좀 힘들어하실 것 같다. 제가 집에서 장난은 많이 치는 편이지만, 한없이 밝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우주메리미'나 예능 속 제 밝아진 모습을 부모님께서는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 제가 안 그래도 좀 불쌍하게 생겨서, 불쌍하게 울고 그런 모습을 힘들어하시는 것 같다."
Q. 설 연휴 때, 대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넘버원'만의 매력이 있을 것 같다.
"저도 이 작품을 읽고, 임하면서 성장을 많이 했다고 느꼈다. 살아가며 부모님과의 소중한 시간을 잊고 살기도 하는데, '넘버원' 속 하민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 자체로도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명절에도 집밥을 먹기 어려운 분들께는 '넘버원'이 어떤 형태의 위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해봅니다."
최우식은 ‘거인’에서 그룹홈에서 자란 열일곱 ‘영재’를 통해 “사는 게 숨이 차요”라고 말할 만큼, ‘살아간다’는 감정을 깊은 상흔으로 그려냈다. 그렇기에 엄마를 “은실 씨”라고 부르며 사랑을 듬뿍 주고받으며 자란 하민이로 변신한 그의 모습은 또 다른 결로 마음을 울린다. 그렇기에 실제로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는 아들, 최우식의 진심은 굳이 많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넘버원’을 마주할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인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닿을 거로 생각한다.
- 조명현 기자 midol.i.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