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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눈물 한 방울로 다 말한 마음…'단종과 살았던 남자' [인터뷰]

기사입력 2026.02.09.00:01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사진 : 쇼박스 제공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사진 : 쇼박스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왕과 사는 남자'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유해진이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한 장면을 이야기하면서였다. '왕과 사는 남자'는 한때는 단종이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그 후에는 노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배를 떠났던 이홍위(박지훈)의 마지막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그리고 실록 속 이홍위의 시신을 수습한 뒤 숨어 살았다는 한 남자, 엄흥도에 대한 단 두 줄의 기록이 '왕과 사는 남자'가 됐다. 유해진은 자신이 연기한 엄흥도 캐릭터에게 여전히 깊숙하게 닿아 있었다. "어린 사람이 얼마나 그랬을까"라고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보이는 유해진에게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닿아 있는 엄흥도가 비쳐 보였다.

    실제로도 그랬다. 유해진은 배우 박지훈의 존재를 몰랐다. 첫인상은 통통한 아이였고, 첫 촬영 날 그의 표현대로 "요만해져서(살을 쏙 빼고 작아진 모습으로)" 나타나 놀라게 했다. 대사를 하다가 울컥해 눈물이 삭 고이면, 어느새 박지훈의 눈이 그렁그렁 해졌다. 유해진과 박지훈 사이의 울컥하는 시간들이 쌓였다. 그리고 영화가 됐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장항준 감독은 '엄흥도'의 대사를 쓸 때부터 "배우 유해진을 염두에 두고 썼다"라고 이야기했다. 시나리오의 첫인상이 궁금하다.

    "그 마음이 느껴졌다. 박지환 배우에게 엄흥도가 홍위(박지훈)에 대해 보고하는 장면이 있지 않나. 호랑이를 흉내 내고, 활 쏘고 이런 장면. 그 대사를 읽을 때, '와 나를 생각하고 쓴 게 맞구나'라고 느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때도 생각나고. '그렇게 해달라는 거구나' 싶었다. 대사가 정말 많았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사전 리딩을 안했다. 대신 현장에서 리허설을 했다. 연극 작업에서 '리딩'은 큰 과정 중 하나다. 그래서 리딩을 계속한다. 말이 익숙해지면, 그다음에 몸으로, 행동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개별적으로 장항준 감독, (박)지훈이와 함께 했다. 그리고 평소에 주고받는 이야기들로 리딩을 대신했다."

    Q. '엄흥도'라는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돼 있지는 않지만, 역사 속에 실재한 인물이다. 어떻게 다가갔나.

    "실제로 계셨던 분이기에 조심스러운 게 있었다. 굉장히 어린 단종이 가는 마지막 길에 같이 있어 준 분. 자기가 받을 처벌도 어마어마할 텐데, 그 마지막을 수습하고 그러셨던 참 대단한 분이시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런 분이 영화로 그려진다는 자체가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단종과 엄흥도가 어우러지는 과정을 그리는 과정에서 대중에게 쉽게 다가서기 위해 조금 가볍게 그려지는 지점도 있는데, 그런 지점에서 선을 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러웠다. 최대한 그 분에게 먹칠하지 않으면서, 단종 옆에 계셨던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전하기 위한 목적지까지 다다르기 위해 그 과정을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엄흥도에 대해 고민하며, 의견을 낸 장면도 있을 것 같다.

    "장항준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정말 글쟁이구나 싶었다. 제가 의견을 낸 건, 엄흥도가 무를 먹으면서 기와집을 올릴 때, 그리고 물놀이하는 이홍위를 바라보는 엄흥도의 모습을 찍자고 이야기했다. 그 장면이 어디에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홀로 물가에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홍도의 장면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마도 아버지가 아들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인지도 모르겠다. 되게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에서 정말 좋은 위치에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슬픔이 더 커지지 않았나 싶다."

    Q. 그런 고민이 있던 상태에서 단종 역의 '박지훈'을 만났을 때, 그 첫인상이 궁금하다.

    "박지훈이라는 배우를 많이 보지 못했다. 잘 몰랐다. 처음에는 되게 통통하게 하고 왔다. '저렇게 통통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촬영하는 날 정말 '요만'해져서 왔더라. 촬영 초반에 굉장히 에너지 있는 장면을 같이 찍었는데, 걱정이 확 사라졌다. '에너지가 참 대단하구나' 싶었다. 저도 거기에 자극을 받았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그래서였을까. '왕과 사는 남자' 제작 보고회 당시부터 박지훈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이 고이는 모습이 화제를 모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될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무뎌지겠지만, 아직까지는 그 마음이 남아있다. (박지훈) 그 친구가 연기도 연기지만, 사람으로서도 괜찮은 애인 것 같아서 제가 이렇게 떠드는 것 같다. 눈빛이 진솔하기도 하고, 무언가 '척'하지 않아서 되게 좋았다.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고 느꼈던 순간들이 많았다. 대사하다가 울컥해서 바라보면, 지훈이는 분명히 맨눈이었는데 금방 삭 눈에 뭔가 맺힌다. 제가 그 마음을 또 받고. 사실 사람의 마음은 주고받는 거 아니냐. 상대방 눈에 눈물이 착 맺히는 걸 바라보면, 내 눈에도 확 눈물이 맺혀버리지 않나. 그랬던 것 같다. '아,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구나, 나누고 있구나'라는 것을 촬영 내내 느꼈다."

    Q. 언론시사회 당시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울었다고 고백했다. 울컥 올라온 장면이 어떤 장면에서였을까.

    "이야기가 슬퍼서 그런 것 같다. 몇 번을 봐도 계속 더 슬플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울컥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엄흥도가 이홍위에게 '그 안에 저도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많이 슬프더라."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사진 : 쇼박스 제공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사진 : 쇼박스 제공

    Q. 영화 촬영이 늘 순서대로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 엄흥도의 감정을 바라보면,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된 것 같다.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제가 의견을 냈다. 그렇게 중요한 장면을 일정에 맞춰서 어딘가에 집어넣어서 찍는 건 안 된다고 했다. 그 장면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충격적이었다. 계산할 수 없는 연기였다. 손에 줄을 쥐었을 때, 진동과 움직임이 있을 텐데, 감히 예측을 못 하더라. 그 마음만 가지고 찍은 것 같다."

    Q. 그 마음이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끝부분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처음부터 고민이었다. 저와 같이 연극을 하셨던 분이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나도 몰라'라고 답했다. 계속 가슴에만 두고 있었다. '잘 해냈다, 못해냈다'라는 것보다 정말 제 마음을 쏟은 것이 맞는 표현 같다. 저도 많이 울었다. 단종이 골방에서 저와 만나 자신의 마지막을 이야기할 때, 용안이라 얼굴을 만질 수는 없고. (눈물) 어린 사람이 얼마나 그랬을까…"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사진 : 쇼박스 제공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속 엄흥도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 사진 : 쇼박스 제공

    Q. 마지막에는 눈물이 있지만, 그 과정은 참 따스했던 작품이다. 특히, 활을 쏠 때 굳이 침을 바르고, 무를 입으로 씹어서 뱉어내고, 이야기할 때 '이건 우리끼리만 알아'라고 한마디 보태는 사극 속 '유해진 맛깔나는 연기'를 마주한 것이 반가웠다.

    "활에 침을 바르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그게 선수 같지 않은가. 무슨 영향을 주겠나. 그런데 오랜 세월 활을 쏴온 사람의 믿음인 거다. '이렇게 하면 더 잘 맞더라'하는, 그런 믿음 하나를 만드는 거다. '럭키' 때 김밥 단무지를 썰 때, 무를 들어서 탁탁 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무것도 아닌데, 그 하나가 굉장히 오랫동안 그 일을 해온 사람을 만든다."

    Q. 유해진의 연기에는 다 계획이 있는 걸까. 혹은 현장에서의 순발력인가.

    "딱, 저만의 방법이 있다. 각자 배우마다 캐릭터를 찾아가는 방법이 있을 거다. 오래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작성하는 노트가 있다. 영화는 보통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기에, 저만의 계획을 쭉 짜놓고, 그중에 '이걸 찍는다' 하면, 앞뒤로 보기 편하게 제가 요약해 놓는 게 있다. 그런 방법들이 생기더라. 그런 걸 찾아내는 맛이 있다. 대사가 아닌 것들이 생명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마땅한 것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곤욕스럽긴 하지만, 그걸 찾아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그런데 이건 우리끼리만 알자. (웃음)"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영화 '왕의 남자'(2005)가 아닌, '왕과 사는 남자'로 관객과 만난다. 나름의 기대감이 있을 것 같다.

    "여러 세대가 모두 좋아할 만한 작품이 되게 오랜만에 나왔다는 기대감이 있다. 이런 작품이 중요한 것 같다. 가족이 같이 볼 수 있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으면서, 20대와 40대 이상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이 흔치 않은 것 같다. 젊은 세대에만 집중적으로 타겟층이 형성된 작품이 많지 않았나. 그렇다고 '왕과 사는 남자'를 젊은 층이 재미없어 할 작품도 아닌 거 같다. 박지훈이라는 배우가 있으니까. 이런 작품이 오랜만에 나와서 저도 반가운 마음이다."

    유해진은 ‘이홍위’를 바라보는 ‘엄흥도’의 마음에, 촬영을 마친 뒤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깊이 머물러 있었다. 그 마음은 자식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이었고, 동시에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어른의 마음이기도 했다. 유해진은 늘 그렇게 연기 속에 ‘사람’을,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왔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앉혀놓고 이야기를 털어놓은 뒤, “이건 우리끼리만 알자고”라며 조용히 목소리를 낮추는 순간에도 사람이 있었고, 인터뷰 도중 그렁그렁 맺히던 눈빛에는 마음이 있었다. ‘엄흥도’가 유독 깊이 남는 이유이자,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스며드는 이유 역시 결국 그가 바라보는 것은 늘 ‘사람’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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