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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위(박지훈)는 비명과 연기 속에 살고 있다. 그는 17살, 어린 나이에 숙부에게 왕의 자리를 내어주고 폐위된 왕 단종이다. 따뜻한 밥 위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조차, 그의 편에 섰다 목숨을 잃은 신하들을 불태우는 연기처럼 느껴진다. 밥 한술도 뜨기 어렵다. 한명회(유지태)는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말을 듣고 내려간 청령포를 단종의 유배지로 정한다.
그렇게 이홍위는 자신을 보필하는 매화(전미도) 등과 함께 1457년, 청령포로 향한다. 더 이상 왕이 아니다. '노산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를 온전히 다 맞으며 향하는 길이다. 그곳에서도 이홍위는 밥을 뜨기 어렵다. 밥상을 들고 가는 엄흥도도 "밥맛이 없을 수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도 그가 마땅치 않다. 하지만, 뒷산에 나타난 호랑이를 향해 이홍위가 활을 겨누었을 때, 모두의 온도가 달라진다. -
장항준 감독은 실록 속 두 줄을 기반으로 '왕과 사는 남자'를 만들었다. 그는 '노산군이 돌아가셨을 때, 엄흥도라는 분이 슬퍼하며 곡하고, 시신을 수습한 뒤 평생을 숨어 살았다'라는 실록 속 두 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상상력을 보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완성했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기록된 역사의 힘을 빌려 줄곧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극초반에는 유해진의 입담이 이끌고 간다. 노루골 마을 촌장(안재홍)과 함께 스크린을 보고만 있어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입담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홀려 유배지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고, 관아의 관원(박지환)에게 이홍위의 일상을 고한다. 분명 판소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끝마다 리듬이 붙어 있는 듯 흥이 난다. -
그리고 박지훈이 그 흐름에 제대로 합류한다. 박지훈은 생(生)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17세의 어린 왕이다. 살아있는 자신은 마치 자신을 살리기 위한 자기 사람들의 목숨값인 것만 같아 죄스럽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보이기 쉬운 상황에서도, 그는 끝내 고고한 백로로 남는다. 어떤 순간에도 박지훈은 자신이 왕(王)임을 놓지 않고 잡고 간다. 그렇게 각성하는 포인트마다 관객을 움찔하게 만들며 '새로운 박지훈의 시대'를 예고한다.
엄흥도(유해진)의 아들 태산이(김민)부터 마을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힘을 더한다. 이홍위에게 올리는 밥상 하나에 온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담겨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홍위가 맛있게 먹었는가' 하나뿐이다. 밥상을 물리던 그가 따뜻한 밥을 다시 뜨게 하는 힘은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힘은 후반부에 금성대군(이준혁)을 비롯한 단종(박지훈)을 위해 힘을 모으는 많은 이들 한 명 한 명에게까지 옮겨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너무나 귀하다. -
역사라는 거대한 줄기 속에서 장항준 감독은 밥상이라는 가장 미세한 지점까지 가져와 관객의 마음속으로 깊숙하게 자리한다. 사육신의 살을 태우던 잔혹한 연기는 따뜻한 밥 위에 피는 김으로도 겹친다. 그렇게 어쩌면 같은 모양인 생과 사를 모두 품고 있는 것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사람임을 '왕과 사는 남자'는 고스란히 전한다.
역사를 공부한 이들이라면 단종의 최후를 알기에, 어떤 면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가 스포일러인 작품이다. 그러나 단종의 죽음과 달리, 역사 속에 단 두 줄의 기록으로만 남은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영화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을 스스로 뜨는 순간에서 출발해, 끝내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간다. 장항준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성공한 역모는 박수받아야 하는가,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건넨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사람’을 선택했던 이들의 뜨거운 기록은, 오는 2월 4일 개봉하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만날 수 있다.
- 조명현 기자 midol13@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