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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개발이 아닌 ‘재발견’의 시대... 경신원 대표가 말하는 도시 생존법

기사입력 2026.01.21 16:13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 매력을 잃을 뿐이다”
<소멸하지 않는 도시> 펴낸 경신원 도시재생 전문가
  • 경신원 박사(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 대표, 서울시립대 교수)
    ▲ 경신원 박사(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 대표, 서울시립대 교수)

    25년간 영국, 미국, 한국을 오가며 도시의 흥망성쇠를 연구해 온 경신원 박사(도시와 커뮤니티 연구소 대표, 서울시립대 교수)가 최근 <소멸하지 않는 도시>를 펴냈다. 지방 소멸이 ‘확정된 미래’처럼 받아들여지는 한국 사회에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역설적이다.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
    매력을 잃은 도시에서 사람이 떠날 뿐.

    경 대표가 2년간 세계 각지를 돌며 찾은 답은 명확했다. 출산장려금을 늘리고, 기업을 유치하고, 신도시를 개발하는 방식만으로는 도시를 살릴 수 없다. 도시의 생존은 ‘얼마나 키웠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달려 있다는 것. 경신원 대표는 “이제 우리는 개발이 아닌 재발견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트로이트는 왜 몰락했고, 뉴욕은 어떻게 살아났나


    경신원 대표가 도시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사례로 꼽은 것은 1970년대 미국의 두 도시다. “믿기 어렵겠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디트로이트는 제조업과 중산층 기준으로는 뉴욕보다 더 번성한 도시였어요. 자동차 산업의 메카였죠. 그런데 두 도시는 탈산업화와 교외화라는 같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 ▲ <소멸하지 않는 도시> 저자 경신원 대표 인터뷰/영상=이채석 PD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고, 중산층이 교외로 빠져나가면서 두 도시 모두 세수 기반이 붕괴됐다. 빈곤과 범죄가 늘어났고, 도시 기능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0년 후 두 도시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뉴욕의 에드 코크 시장은 민간과 협업해서 도시가 원래 갖고 있던 문화자본과 금융 산업을 되살렸어요. ‘우리가 지금 당면한 범죄와 치안, 경제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면서요. 반면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이 이미 일본과 한국으로 넘어갔는데도 여전히 자동차 하나에만 매달렸죠.”

    결과는 참혹했다. 디트로이트는 2013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 파산을 선언했고, 뉴욕은 세계 금융의 메카로 우뚝 섰다. 경 대표는 “도시가 사라지느냐 살아남느냐는 인구 감소 그 자체보다 위기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이것이 제가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 흥미롭게도 디트로이트는 최근 다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MIT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디트로이트로 가서 도시를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제는 로봇과 AI 산업으로 전환하면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죠. 도시는 정말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변화합니다.”

    한국의 5,000년 역사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로 압축 성장을 이뤘는데, 도시의 매력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기자의 질문에 경신원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 “한국 도시들은 6.25 전쟁 이후 거의 전면적으로 재건됐죠. 물리적으로만 보면 역사가 짧아 보여요. 하지만 한국은 5,000년의 역사를 가진 사회입니다. 비록 역사성과 시간의 축적을 보여주는 공간은 많이 사라졌지만, 그 문화는 사람들의 삶 속에 여전히 내재되어 있어요.”

    경 대표는 자신의 유럽 경험을 떠올렸다. 2000년대 초반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거의 몰랐다. “‘한국이 어디 있어?’라고 물으면 ‘중국과 일본 사이’라고 답해야 했고, ‘어느 나라 말을 써?’라는 질문도 받았죠. 정말 달나라에서 온 사람 취급 받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런던의 웬만한 힙한 곳에는 다 한국 슈퍼마켓이 있고, 파리바게뜨도 있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잠재적 가치가 이제 막 터져 나오는 거죠. K-컬처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경 대표는 도시의 매력이 반드시 오래된 건축물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도시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 사이의 관계예요. 보이지 않는 역사, 문화, 관습, 생활 방식이 쌓이면서 도시의 매력과 정체성이 만들어지죠. 한국의 오랜 역사와 급속한 근대화가 재미있게 조화된 것, 그게 오히려 한국 도시만의 독특한 매력이 될 수 있습니다.”

    아파트의 문제는 형태가 아니라 ‘단절‘


    한국 가구의 약 60%가 아파트에 거주한다.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도시의 다양성과 거리의 활력을 아파트 중심 도시에서 구현할 수 있을까? 경 대표는 서구 학자들의 시각부터 설명했다.

  • “서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빈곤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했다가 실패를 경험했어요. 그 흐름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됐는데, 흥미로운 점은 당시 빈곤층을 교육과 생활 방식의 개선이 필요한 대상으로 인식했다는 거예요. 저소득층에게 위생과 규율을 가르치는 사회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됐습니다. 반면 소련 등 계획경제 국가에서는 입구를 하나로 통제해 동선을 관리했죠. 감시가 쉽도록 설계된 구조였습니다.”

    처음에는 주민들도 좋아했다. 위생과 안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던 슬럼 지역에서 살다가, 화장실도 있고 따뜻한 곳으로 이사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너무 삭막한 거예요. 마당도 없고, 이웃과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도 적었죠. 결국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고, 공공임대주택은 슬럼화됐어요.”  

    그런데 한국은 정반대다.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높죠. 관리도 잘 되고, 주차장도 좋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편하고, 커뮤니티 활동도 가능하고, 요즘은 독서실까지 있잖아요.”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도시와 단절된 ‘섬’처럼 기능한다는 거예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처럼 안에 있는 사람들만 행복하죠. 제인 제이콥스가 살던 그리니치 빌리지도 5층짜리 아파트들이 주를 이루었어요. 하지만 실제 거리에서는 아파트들이 상업 공간과 섞여 있고, 도시 전체와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었죠. 앞으로 한국도 아파트 단지가 구시가지와 상업 공간의 연결을 통해 다양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지방을 떠나는 진짜 이유


    경 대표는 지방 도시 인구 감소의 본질을 다르게 본다. “한국의 자연 감소가 시작된 건 2021년이에요. 그전까지는 출산율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동했기 때문에 인구가 줄었죠.”

  • 그녀가 직접 인터뷰한 청년들의 이야기는 현실적이었다. “서울에서 반지하에 살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여기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와 네트워킹 기회가 더 크기 때문이에요. 역으로 말하면, 지방 도시를 매력 있게 만들면 사람은 다시 간다는 거죠.”

    실제로 코로나 시기에 많은 청년들이 지방으로 이주했다. “서울에서는 꿈꿀 수 없는 자가 소유가 가능하고,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니까요. 일부 지역에서는 출산율이 수도권보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예컨대 세종시나 일부 지방 도시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다시 돌아올까? “교육과 의료 문제가 가장 커요. 스마트 팜이나 로컬 푸드 관련 식음료 창업, 문화 콘텐츠 사업 등 일자리는 만들 수 있지만, 아이 교육이나 출산처럼 중요한 문제에서는 여전히 선택지가 제한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수도권으로 이동해야 한다면, 장기적으로 정착하기는 쉽지 않죠.” 

    경 대표는 인구 감소 자체가 기회는 아니지만, “인구 감소와 도시 소멸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도시를 제대로 재생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 왔다”고 본다. “텅 빈 상가와 폐교는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새로운 용도와 삶의 방식을 실험할 수 있는 여백입니다. 무엇으로, 누구를 위해 채울 것인가를 묻는 일이 중요하죠.”

    벽화 마을은 이제 그만


    “귀국해서 보니 벽화 그리는 게 너무 유행이었어요.” 경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에 벽화 마을이 우후죽순 생겨났던 시기를 떠올린 것이다.

  •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가요. 저 도시가 성공했으니 우리도 따라 하고 싶고,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안전한 레퍼런스가 되니까요.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다른 도시를 벤치마킹하는 건 위험합니다.”

    226개 지자체가 모두 ‘관광 도시’, ‘첨단 도시’를 표방하는 현실에 대해, 그녀는 서울과 전라도 인구 소멸 위험이 큰 지역 중 하나인 전남 신안을 대비 사례로 들었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에 있지만 서울과 신안은 경제 발전 단계나 인구 구조가 완전히 달라요. 신안은 신안이 처한 조건에 맞는 레퍼런스를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충분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노잼시티로 불리던 대전이 ‘빵 성지’로 자리 잡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확행을 즐기는 MZ세대가 주말에 버스를 타고 대전에 가서 성심당 빵을 먹고, 근처 독립 서점에 들러 책을 보는 식으로 ‘대전을 가야만 하는 이유’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성심당이 성공했다고 해서 바로 길 건너편에 또 다른 빵집을 낸다면, 혹은 대전 바로 옆, 세종시에 같은 빵집을 만든다면 그 효과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경 대표는 지역 간 경쟁보다 협력을 강조한다. “인구 소멸이 빠르게 진행되는 비수도권 지역일수록 협력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군산, 목포, 여수가 각자의 지역적 특성을 연계해 2박 3일의 루트를 만드는 거죠. 그래야 사람들은 원데이 트립의 ‘방문(visit)’이 아니라 여러 도시를 ‘머무는(stay)’ 일정을 짜게 됩니다. 각 도시가 경쟁이 아니라 협업할 때 지역 전체가 살아납니다.”

    디지털이 화두인 시대, 물리적 공간의 힘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이 화두인 시대. 그런데 경신원 대표는 물리적 공간의 경험을 강조한다. 모순처럼 보이는 이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 런던 theater District(사진제공=경신원 대표)
    ▲ 런던 theater District(사진제공=경신원 대표)

    “코로나19 때를 생각해 보세요. 비대면인데도 사람들은 QR코드 찍고 마스크 쓰고서라도 카페에 가고 싶어 했어요. 위드 코로나가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여행이었죠. 메타버스는 현실을 보조하는 도구지,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모차르트가 몇 년간 살았던 공간을 예로 들었다. “가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빈 공간이죠. 메타버스에서는 훨씬 선명하게 재현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모차르트가 살았던 그 공간에서, 그를 상상하며 뭔가를 느껴보고 싶어 해요.”

    보스턴에서의 추억도 들려줬다. “처음 보스턴의 하버드 스퀘어에 갔을 때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낯선 이와 체스를 두고, 대화하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런 우연한 활동, 스폰테니어스 액티비티(Spontaneous Activity)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도시, 그게 제가 꿈꾸는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우리나라에 카페가 많은 이유도, 길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맞다고 생각해요. 거리에 벤치도 있고 나무도 있고, 잠시 멈춰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우연한 만남과 활동이 일어나죠.” 

    세대가 다르게 보는 ‘도시’


    MZ세대에게는 ‘힙한 동네’, 베이비부머에게는 ‘재개발 대상지’. 같은 공간을 전혀 다르게 보는 세대 간 격차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경신원 대표는 X세대인 자신이 “양쪽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위치”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않은 시기를 보냈어요. 내가 보호받지 못한 세대죠. 집은 ‘나와 가족의 삶을 지탱해 줄 자산’이었어요. 셋방살이하며 겪었던 설움이 너무 커서, 자식에게는 오피스텔이라도 하나 마련해주고 싶은 거예요.”

    반면 MZ세대는 다르다. “태어나니까 집도 있고, 핸드폰도 있고, 차도 있었어요. ‘아파트 키즈’라고 하죠. 획일적인 아파트 단지에서 자란 이들에게 오래된 동네는 오히려 너무 재미있는 공간이에요.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예측할 수 없는 취향 공간들을 만나는 경험 자체가 새롭거든요.” 

    그녀는 이런 차이를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시선이 도시를 더 재미있게 만들어요. 베이비부머가 ‘재개발되면 집값이 오를까’ 생각하고, MZ가 ‘여기서 재미있게 놀자’ 하는 것. 둘 다 이유가 있어요. 중요한 건, 이 다른 인식들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조율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거죠.”

    도시재생,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한국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점을 묻자, 경신원 대표는 신중하게 답했다. “다 실패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요. 문제는 성공과 실패의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는 거죠.”

  • 그녀는 영국 버밍엄대학교 재직 시절, 한국 도시재생 국제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서울대, 컬럼비아대, 와세다대와 함께 1년간 연구했는데, 실제 사업에는 연구 결과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아쉬웠어요.”

    도시재생의 핵심은 경제 활성화다. “경제가 쇠퇴했기 때문에 도시도 함께 쇠퇴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정부처럼 개발과 시장 논리만 앞세우면, 쇠퇴한 지역의 주민들은 오히려 소외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니 블레어 정부는 대처 정부의 시장주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지역 주민의 참여를 강조한 도시재생 정책을 실행했죠.” 

  • 영국 글래스턴베리마을(사진제공=경신원 대표)
    ▲ 영국 글래스턴베리마을(사진제공=경신원 대표)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살던 동네인데 우리는 쫓겨나고 다른 사람들이 이익을 보는 거죠. 결국 도시재생은 ‘누구를 위한 재생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경 대표가 강조하는 진정한 주민 참여는 형식적인 공청회가 아니다. “이미 계획을 다 짜놓고 ‘우리는 이렇게 할 겁니다’라고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획 단계부터 주민이 참여해야 해요. 하지만 모든 주민이 재생 사업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여에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경제적 여유와 정보, 제도에 접근해 본 경험이 있는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 언어로 정리해 정부에 전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의 주민들은 당연한 권리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도시재생에서는 물리적 환경을 바꾸기 전에, ‘capacity building’, 즉 주민 역량 강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 LA 벽화거리(사진제공=경신원 대표)
    ▲ LA 벽화거리(사진제공=경신원 대표)

    인터뷰 말미, 경신원 대표는 로스앤젤레스(LA)에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1990년대 초반 흑인 폭동 직후 처음 방문했던 LA는 두려운 도시였다. 2024년 다시 찾은 LA 역시 마약 문제가 심각해 거리 분위기는 여전히 위험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한 사람이 도시 전체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바꿨다.

    “LA 다운타운의 오래된 서점이 있던 건물의 작은 델리숍 주인이었어요. 문 닫을 시간인데도 음료수를 건네주며 LA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죠. 근처 스시집을 추천해줬는데, 나중에 우리가 두고 온 모자를 들고 그 스시집까지 직접 찾아왔어요. 몇 블럭이나 떨어진 곳이었거든요. 저희가 그 식당에 가지 않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 한 사람의 행동으로 ‘아, LA는 참 괜찮은 도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도시의 매력은 거창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일화다. “도시를 경험하는 건 거기 살고 있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경험은 터미널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기차역에서 나와 택시 승강장을 찾는 것부터가 도시 경험의 시작이죠.”

    10년 후, 강남을 바라보지 않는 미래


    경신원 대표가 꿈꾸는 10년 후 한국의 모습은 명확하다. “모든 도시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라, 각 도시가 자기만의 정체성을 갖는 거예요. 226개 지자체가 하나하나 매력을 갖고 경쟁력을 가지면, 우리나라 전체가 경쟁력 있게 되죠.”

  • 그녀가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 >책에서도 강조했던 메시지다. “더 이상 모두가 ‘강남’을 바라보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자체가 강남 이상의 공간이 되는 사회. 머물고 싶고, 놀고 싶고, 일하고 싶은 공간이 각 지역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

    샌프란시스코의 웨이모(자율주행 택시)를 예로 들며 경 대표는 창의성이 자라나는 환경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고 위험이 있고, 공공이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일단 해보자’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 실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자체가 한국에 과연 몇 곳이나 될까요. 한계를 극복하려 하기보다, 한계를 전제로 어떻게 실험할지를 설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소멸하지 않는 도시>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도시의 숨은 매력을 ‘발견’하고, 시민들이 ‘경험’하게 하며, ‘함께’ 만들고, ‘창의성’을 키우고, ‘한계’를 디자인하는 것. “거창한 예산이나 인프라가 아니라, 지역의 자산과 시민의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개발에서 ‘재발견’으로


    본지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경신원 대표는 단호하게 말했다. “개발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재발견의 시대예요. 도시는 사라지지 않아요. 다만 매력을 잃은 도시에서 사람이 떠날 뿐입니다.”

    25년간 도시를 연구하며 그녀가 찾은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더 크게’, ‘더 높게’, ‘더 많이’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싶은 이유를 만드는 것. 돌아오고 싶은 감정을 남기는 것. 함께 만들고 싶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

  • 헤이온와이 책마을의 왕의자(사진제공=경신원 대표)
    ▲ 헤이온와이 책마을의 왕의자(사진제공=경신원 대표)

    <소멸하지 않는 도시>는 단순한 해외 사례집이 아니다. 런던의 보로 마켓, 브리즈번의 하워드 스미스 와프, 웨일스의 헤이온와이 책마을이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도시들의 공통점은 ‘개발’이 아닌 ‘재발견’이었다는 것. 

    소멸 위기 앞에 선 한국의 도시들. 이제 그들이 찾아야 할 것은 더 많은 예산도, 더 큰 건물도 아니다. 도시가 이미 갖고 있는 매력을 발견하고, 시민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경신원 대표가 25년 연구 끝에 찾은, 도시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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