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S는 소비자 기술부터 산업·의료 기술까지 폭넓은 흐름을 보여주는 전시회다. 매년 행사장에서는 인공지능(AI), 웨어러블, 디지털 헬스 기술이 대거 소개되며 ‘미래 의료’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CES에서 화제가 된 의료 기술이 실제 병원 진료 현장에서 빠르게 자리 잡는 경우는 드물다.
전시와 임상 사이의 간극은 단순히 기술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기술은 ‘쓸 수 있음’이 아니라 ‘써도 되는지’를 증명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
전시장에서 가능한 기술, 병원에서는 검증이 먼저
CES에 소개되는 의료 기술 상당수는 개념 검증(PoC) 단계이거나, 제한된 환경에서의 성능을 보여주는 수준이다. 센서 정확도, 알고리즘 성능, 사용자 경험은 전시를 통해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만, 병원에서 요구되는 기준은 다르다.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 안전성 ▲재현성 ▲의료진 업무 흐름과의 적합성 ▲책임 소재가 명확한지가 우선한다. 이 과정에서 다기관 임상시험, 규제 승인, 보험·수가 논의까지 거쳐야 하며, 이는 수년이 소요되는 절차다. CES에서 ‘가능성’으로 보였던 기술이 병원에서는 쉽게 도입되지 않는 이유다.
‘혁신 기술’이 곧바로 의료가 되지 않는 구조
특히 AI 기반 의료 기술은 오해받기 쉽다. 전시 현장에서는 AI가 진단을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 AI는 대부분 의사 결정을 보조하는 도구로만 활용된다. 법적·윤리적 책임 구조상, 진단과 치료의 최종 판단은 의료진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원은 기술의 ‘정확도’보다도 오작동 시 위험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의료진의 판단을 왜곡하지 않는지를 더 엄격하게 본다. 전시장에서 강조되는 혁신성이 오히려 임상 도입의 장벽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의료는 속도보다 신뢰가 우선
CES는 기술의 방향을 보여주는 자리다. 그러나 병원은 그 방향이 실제 환자에게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검증하는 공간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CES에서 본 의료 기술이 병원에 없는 이유를 ‘보수성’이나 ‘느린 도입’으로 오해하기 쉽다.
의료 기술의 상용화는 전시 이후부터가 시작이다. CES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술일수록, 임상과 규제라는 가장 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화려한 전시와 조용한 병원 사이의 시간은 의료가 감수해야 할 필연적인 간극에 가깝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