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부터 레퍼런스 제작 등 숨은 조력자
“발전 속도에 비해 교육 창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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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을 비롯해 첨단 기술들이 이제 컨텐츠 제작 시장에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한 지인을 통해 방문한 홍익대 거리에 위치한 ‘호러스위치’는 최근 새로운 공포 어트랙션인 ‘에덴병원’을 출시했다. 현재는 정식 오픈 전 사전 초청자를 대상으로 체험만 진행하고 있다. AI 조력자와 함께 만들었다는 에덴병원에 본 기자가 직접 들어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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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와 만든 공포 컨텐츠는 어땠을까
에덴병원은 병원을 배경으로 한 호러스위치의 첫 테마다. 원장 부부와 희귀 질환을 앓는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인간의 살과 장기만을 섭취하는 기이한 병에 걸렸고, 원장 부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사람들을 죽이며 인체 실험을 한다는 스토리다. 원장은 아들의 피가 죽은 시체를 되살린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여러 실험을 거듭하며 괴물로 변해 나간다.
체험한 어트랙션을 진행하는 체험자들은 에덴병원의 침입자로서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된다. 체험 시간은 약 25~30분 정도로 분위기와 시설 곳곳, 소품들에 신경을 많이 써둬 몰입이 잘 됐다. 특히 병원을 연상하게 하는 갖가지 소품들과 디테일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자아냈다. 마치 병원을 테마로 한 귀신의 집 같았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평가도 좋았다. 기존 귀신의 집과 같지 않냐는 의견에는 다들 비슷한 컨텐츠라는 평가를 내렸다. 또한 귀신의 집과는 다르게 다양한 연출과 기계장치, 스토리들이 결합돼 다채롭다고 설명했다. 특히 생각보다 넓은 어트랙션의 크기와 실제 연출가들이 동원돼 연출하는 볼거리들이 인상 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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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는 테마 제작의 숨은 조력자”
호러스위치 에덴병원 제작팀은 이번 어트랙션 제작에 챗GPT, 제미나이 등 대화형 AI부터 음원 추출 도구, 이미지 생성 툴까지 다양한 AI 서비스를 활용했다. 특히 ‘공포 체험관’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제작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각적·청각적 소스를 제작하는데 이를 사람이 일일이 구현하는 데에는 시간적·비용적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이 제작팀의 설명이다.
가장 먼저 활용하는 건 챗GPT, 제미나이 같은 대화형 AI다. 스토리 구상 단계에서 아이디어를 던지면 AI가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해 줬다. 예컨대 “폐병원을 배경으로 한 공포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고 입력하면, AI는 등장인물의 설정부터 반전 요소, 공포 연출 포인트까지 수십 가지 레퍼런스를 제시한다. 제작진은 이 중에서 쓸 만한 내용들을 골라 자신들만의 이야기로 다듬는다.
이미지 생성 AI도 핵심 도구다. 공간 콘셉트를 시각화할 때 특히 유용하다. ‘낡은 병원 복도, 형광등이 깜빡이고, 벽에 핏자국이 있는 장면’이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이미지가 생성된다. 물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일종의 ‘참고 자료’로서 역할을 한다. 제작진은 이를 바탕으로 실제 세트를 어떻게 꾸밀지, 조명은 어디에 배치할지, 소품은 무엇을 쓸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
소리도 빠질 수 없다. 공포 체험에서 청각은 시각만큼이나 중요하다. 제작진은 음원 추출 도구를 활용해 공포 분위기에 맞는 효과음과 배경음악을 만들어낸다. 기존 음원에서 특정 소리만 분리하거나, 여러 소리를 합성해 새로운 효과음을 창조한다. 에덴병원 곳곳에서 들렸던 으스스한 소리, 어디선가 새어 나오는 숨소리,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굉음 등 일부 사운드에 AI가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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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발전 빠르지만, 배울 곳은 없어”
체험을 마친 뒤 제작을 총괄한 령(박성령) 미스터리ent 총괄기획팀장을 만났다. 호러스위치의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총괄하는 그는 스스로를 ‘AI 불신론자’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솔직히 재작년까지만 해도 AI 불신론자였다”면서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노력이나 창의력은 따라오기 힘들다, 그래도 우리의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랬던 그가 생각을 바꾼 것은 작년이었다. 팀원들, 디자이너들과 함께 AI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GPT, 제미나이 같은 대화형 AI부터 음원 추출 사이트, 이미지 생성 툴까지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AI를 이용해서 작품의 퀄리티를 엄청나게 끌어올린다는 느낌보다는, 저희의 능률성을 많이 올려준다는 쪽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기존에 비해 확실히 투자하는 시간도 많이 줄었고, 들어가는 품도 확연하게 줄어든 걸 느낀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의 툴에 정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령 팀장은 “이 툴을 썼을 때 나오는 결과물이 있고, 저 툴을 썼을 때 나오는 게 달라서 하나의 툴에 정착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가장 적절한 결과물을 찾는다”며 “아직 배우는 단계이기에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 다양하게 실험하는 쪽을 택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저희도 사실 배우는 단계고 아직 초기 단계”라며 “어떻게 해야 더 잘 쓸 수 있을까, 좀 맛있게 쓸 수 있을까 공부하고 연구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AI를 배우고 싶어도 마땅한 창구가 없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유튜브 같은 곳에 정보는 넘쳐나지만, 질과 형태가 천차만별이라 선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공무원 시험이든 토익 시험이든, 정확한 커리큘럼이 있고 ‘이렇게 공부해야 된다’는 왕도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 않냐”며 “유명 학원이 있고, 유명 강사님이 있고. 근데 AI 시장에서는 아직 그런 게 없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도 부담이다. 령 팀장은 “이 기술들은 막 발전하는 단계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하루가 지나면 매일 바뀌어 있다”며 “소비자나 이용자 입장에서는 따라가기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체계적인 교육 과정이 생긴다면 수강할 의향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신뢰가 있고, 믿을 만한 과정이고, 검증이 됐다면 유료로라도 들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배우고 싶은 건 프롬프트 작성법이다. 령 팀장은 “한 글자, 마침표 하나에 따라서도 결과물이 달라져 버린다는 점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며 “‘어떤 프롬프트를 적절하게 잘 써야 원하는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있을까’하는 학습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호러스위치 에덴병원은 24일 정식 오픈해 초청객 외의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또한 호러스위치는 두 번째 테마를 같이 준비하는 점이 기대된다. 두 번째 테마는 한국 전통 사극 콘셉트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K-컬처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령 팀장은 “지옥도 같은 것도 해놓고, 좀 더 화려하고 좀 더 무섭게 기획해 볼 생각”이라며 “첫 번째 테마와 두 번째 테마 모두 야심차게 준비하는 만큼 많은 방문객이 방문해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유덕규 기자 udeok@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