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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율주행 기술 발전 막는 규제

기사입력 2025.12.04 09:00
  •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2010년도 중반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자율주행 기술이 가트너사의 하이프 사이클 모델상에서 암울했던 골짜기 단계를 지나 10년만에 사업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살아남은 미국과 중국 기업들은 로봇택시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수익 모델을 만들고 시장 지배력을 높여 가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율주행시대, 한국 택시 서비스의 위기와 혁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의 IT기업들은 각각 14조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 붓고 지난해 약 30억 달러에서 2034년 1900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51.4%씩 성장할 미래 자율주행택시 시장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 국내 자율주행 기술은 해외와 비교해 5년 이상 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시작부터 뒤쳐졌던 건 아니다. 필자가 스누버라는 자율주행차 개발과 도심자율주행에 성공했던 2018년경에는 국내 기술과 해외 기술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정부도 초기에는 각종 법규 개정을 통해 시험 운행을 빠르게 허가하는 등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2020년을 지나며 인공지능(AI)가 자율주행에 적극적으로 도입되는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조속한 사업화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서 민간 투자는 멈췄고 정부 투자는 그나마 맥을 이어 오고 있지만 선택과 집중을 못하고 소액으로 배분되었다. 그 결과 1조원이 넘은 정부 연구비를 지출했음에도 세계 수준에 근접한 기술 개발에 실패했고 상용화도 요원한 상황에 처했다.

    이 와중에 지난 9월 24일 국토교통부 주최로 열린 자율주행 토론회에서 업계와 학계의 일부 토론자들이 2027년까지 해외 자율주행기술 도입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장 개방을 2년간 늦춰 달라는 것이다. 유예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기술 중 하나는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개발한 FSD(Full Self Driving Supervised) 이다. 현재는 법적 책임 문제로 운전자가 안전 운전에 개입하도록 강제하고 있지만 도심을 포함해 자동차가 주행할 수 있는 대부분 지역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첨단 운전자보조 시스템이다. 표현이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지 실제로는 출발지에서 목적지 주소만 입력하면 운전자 개입 없이 자동으로 운전하는 4단계 완전자율주행 기술이다. 필자도 최근 FSD가 장착된 차에 직접 탑승해 해당 기술이 인간 운전자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노련하게 운전함을 경험한 적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법규상 이 같은 최첨단 자율주행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현행 자율주행 레벨 2 첨단조향장치 안전기준에 따르면 도심 내 일반도로 상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조향 장치를 조작해 차선을 변경할 수 없다. 레벨 3 자율주행에 대해서는 지정된 운행 가능 영역에서 지속적 차로 유지에 필요한 성능 기준까지 정하고 있다. 반면 도심 내 자율주행에 대해서는 아직 안전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특례 규정에 따른 시범지구를 제외한 일반 지역에서의 자율주행은 불가하다. 현행 규정에서는 운전석에 안전요원이 탑승해야 시속 10㎞ 초과 주행을 허용하고 있으며 어린이 보호구역이나 공사 구간 내에서는 아예 자율주행을 금지하고 있다.

    여러 안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은 규제를 완화하고 자율주행 서비스 상용화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이 국가핵심산업으로 자율주행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최근 보수적 국가인 일본마저도 해외 자율주행 기술을 적극 도입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하고 미국 웨이모와 테슬라가 상업 서비스를 전국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신속 승인 절차까지 마련했다.

    규제의 뿌리는 깊고 그로 인한 상흔은 넓다. 그 여파는 고스란히 국민에 대한 피해로 돌아온다. 현재 상황에서 2년 유예라는 또 다른 규제를 만든다면 해외 기술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 사이 해외 업체들은 상업 서비스를 통해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기술 수준을 더 높여가는 순환적 학습 프레임워크를 안착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 기술 개발만이 중요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지금은 얼마나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확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2년 유예는 국민들이 신기술을 경험할 기회를 가로막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업 간 건전한 기술 및 사업모델 개발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

    최근 정부도 국책 과제 진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향후 AI 분야에 대해서는 100조 원의 자금을 선택과 집중의 원칙 하에 투자하기로 했다. 학습용 그래픽처리장치(GPU)도 연구팀별로 나눠 갖는 대신 데이터센터 설립을 통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방향을 정했다. 앞으로 신기술 개발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 투자 규모로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단기적으로 자체 개발이 어려운 기술은 문을 걸어 잠그는 갈라파고스식 전략 대신 검증된 해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우선 도입하고 서비스 경쟁력 향상과 기술 국산화를 점진적으로 이뤄가야 한다.

    자율주행은 자동차 분야를 넘어서 로봇, 드론 등 다양한 모빌리티 산업과 직접 관련되며, 제조, 국방, 농업, 광업 등 다양한 산업에도 파급효과가 큰 기술이므로 새로운 정책 방향 수립이 시급하다. 한국은행이 과거 타다 서비스 금지 결정에 대해 “그때의 선택이 현재의 모습을 바꿨다. 규제가 기술 발전을 막고,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다"라고 했던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서승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서울대 지능형자동차 IT연구센터를 이끌며 국내 자율주행 기술 개발 및 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컴퓨터공학과 조교수, 프린스턴대 전기공학과 및 POEM 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지능형 시스템 분야 연구를 이어왔다. 1996년 서울대에 부임한 그는 정보보안, 지능형 자동차, 스마트 모빌리티 등 융합기술 연구해왔다. 현재는 대검찰청 디지털수사 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공공정책과 기술윤리의 접점을 조율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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