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유튜브→AI 검색 경로 진화…환자 절반 이상 '판단 혼란' 호소
-
AI 시대, 정보 접근성은 사상 최고 수준이지만 정확한 정보 선별은 오히려 더 어려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종양내과학회는 26일 ‘제8회 항암치료의 날’을 맞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암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암 정보 탐색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암 진단 이후 2년 이내 환자와 보호자 255명이 참여한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53.7%는 암 정보를 찾을 때 “정보가 너무 많아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자신의 병기나 상태를 정확히 몰라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응답도 40.8%에 달했다. 의료진 설명을 들은 뒤에도 83.9%는 다시 정보를 검색했고, 이 중 13.6%는 의료진 설명과 다른 내용을 접해 혼란을 겪었다고 답했다.
암 진단 직후 환자와 보호자가 가장 먼저 알고 싶어한 내용은 ‘암의 예후’(64.3%)와 ‘암의 치료’(56.9%)였다. 치료 정보 중에서는 ‘치료 방법과 효과’(83.9%)에 대한 요구가 특히 높았다. 정보 접근성은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지만, 정작 ‘나에게 맞는 정보’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진 셈이다.
-
정보 접근은 쉬워졌지만, 판단은 오히려 어려워져
조사에서 암 정보 주요 탐색 채널은 인터넷 포털이 62.4%로 가장 많았고, 병원 의료진이 56.1%로 뒤를 이었다. 유튜브(37.6%), 온라인 커뮤니티(31.8%)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가장 신뢰하는 채널로는 병원 의료진이 51.8%로 압도적이었고, 포털(18.0%), 유튜브(8.2%)는 크게 낮았다.
허석재 동아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대한종양내과학회 홍보위원)는 “예전에는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정보 과잉에 가까운 상황”이라며 “정보의 양은 늘었지만, 그 정보를 평가하고 내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능력은 따라오지 못해 환자로서는 판단 부담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홍식 충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대한종양내과학회 홍보위원)는 “의료진 설명이 충분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67.5%였지만 여전히 대부분이 추가 검색을 이어간다”며 “더 많은 사례와 경험, 나와 비슷한 상황을 찾으려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포털→유튜브→AI, 진화할수록 위험도 증가
대한종양내과학회는 암 정보 탐색 방식이 포털 중심에서 유튜브·SNS, 그리고 최근에는 생성형 AI 기반 탐색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정보 검색 방식이 진화할수록 위험 요인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포털 기반 정보는 전문성과 근거 부족이 문제였다. 유튜브·SNS 시대에는 자극적이거나 상업적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통해 빠르게 확산했다. 여기에 AI 시대에는 ‘환각(hallucination)’과 출처 불명 정보 문제가 더해지고 있다.
허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정확성보다 노출 구조가 정보를 결정한다”며 “검색엔진은 광고와 키워드 전략이, 유튜브는 클릭률과 시청 시간이 무엇을 보여줄지를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는 “환자 입장에서는 어떤 정보가 과학적 근거를 가진 것인지, 어떤 정보가 상업적 목적인지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정보의 질’ 아닌 ‘리터러시 격차’
대한종양내과학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드러난 핵심 문제를 ‘정보량’이 아니라 ‘해석과 적용의 격차’, 즉 암 정보 리터러시 문제로 규정했다.
첫 번째는 노출 구조의 편향성이다. 플랫폼 알고리즘은 의료적 정확성보다 클릭 가능성과 체류 시간을 중시하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전문 정보가 뒤로 밀리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전면에 배치되기 쉽다.
두 번째는 질적 불균형이다. 근거 기반 전문 정보, 의료진이 제작한 교육 콘텐츠, 개인 경험담, 상업적 홍보 글이 같은 화면에서 나란히 노출된다. 정보의 무게와 성격은 다르지만, 환자 시야에서는 모두 비슷한 비중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해석·적용의 어려움이다. 같은 암이라도 병기·유전자 변이·동반 질환·이전 치료 이력에 따라 적용 가능한 정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럼에도 환자·보호자 다수는 자신의 상황을 반영해 정보를 걸러내기 어렵다. 허 교수는 “정보 접근성은 높아졌지만, 정보 활용 능력은 제자리”라며 “이 암 정보 리터러시 격차가 환자 안전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진단 초기의 충격과 불안, 예후에 대한 두려움 같은 감정적 요인까지 겹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환자와 보호자는 평소라면 의심했을 ‘완치’, ‘기적의 치료’, ‘○○만 하면 낫는다’ 같은 단정적 메시지 앞에서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AI, 정보 폭은 넓히지만 ‘착시’가 판단 격차 키워
생성형 AI는 환자와 보호자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정보를 접하도록 돕지만, 동시에 판단 착시를 일으킬 위험도 있다.
최근 유방암 다학제 사례 362건을 기반으로 AI 답변을 분석한 연구(JCO Clinical Cancer Informatics, 2025)에서는 전문가 권고와 완전히 일치한 답변 비율이 18.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질문을 세 차례 반복했을 때도 답변이 32%만 일관되게 유지됐다. 병기가 높거나, 유전자 검사·항암제 선택처럼 변수가 많은 질문일수록 정확도와 재현성이 떨어졌다.
또 다른 연구(Kim et al., 2025)에서는 의사의 91.8%가 임상에서 AI 환각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잘못된 수치나 근거 없는 문장을 그럴듯한 어조로 제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응답자의 대다수는 이런 환각이 잠재적으로 환자 진료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허 교수는 “AI는 환자 교육이나 정보 정리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환자의 병기·유전자 변이·장기 기능·동반 질환·과거 치료 이력까지 종합해 판단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며 “AI는 유능한 보조자일 수는 있어도 독립적인 치료 결정 주체가 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나에게 맞는 정보’에 도달하기 위한 6대 원칙
대한종양내과학회는 환자·보호자가 디지털 환경에서 암 정보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시대 암 정보 활용 6대 원칙’을 제시했다. 핵심은 모든 정보를 ‘최종 답’이 아니라 의료진과 논의하기 위한 준비 자료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우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정보를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종양내과학회, 국가암정보센터, 대학병원 홈페이지처럼 근거 기반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 자료를 우선 참고하고, 개인 경험담·상업적 콘텐츠는 참고 수준으로 제한하도록 권고했다.
정보의 최신성·근거·전문가 참여 여부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언제 업데이트된 정보인지, 명시된 근거가 있는지, 전문학회나 의료진이 제작에 참여했는지 살펴보는 방식이다.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보다 ‘나에게 맞는 정보’인지가 중요하다. 같은 암이라도 병기·유전자 이상·동반 질환·전신 상태에 따라 치료 적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학회는 최소 두 가지 이상 서로 다른 출처를 조합해 교차 검증하는 전략을 제안했다.
포털에서 검색할 때는 암종 이름 뒤에 기관명을 함께 입력하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폐암 대한종양내과학회’, ‘유방암 국가암정보센터’처럼 검색하고, ‘증상·병기·예후’, ‘2025년’, ‘최신’, ‘가이드라인’, ‘표준 치료’ 같은 키워드를 함께 활용하면 정확성 확보에 유리하다.
유튜브·SNS에서는 공신력 있는 기관·병원·학회 계정 여부를 우선 확인하고, 추천 영상보다 직접 검색 후 최신순·조회순으로 정렬해 비교하는 방법이 권장된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섬네일은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를 사용할 때는 자신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입력하고, 답변의 근거가 되는 가이드라인·논문 출처를 요청하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내용이 내 경우에도 적용되는지”, “내 병기에서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를 재확인하고, 한 번 받은 답변을 그대로 믿기보다 재질문·비교를 통해 검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보는 온라인에서 얻더라도, 치료의 답은 의료진과의 소통에서 나와
김 교수는 “정확한 정보 자체도 중요하지만 내 상황과 맞지 않는 정보는 잘못된 믿음과 치료 지연, 전문의와의 소통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결국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찾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잘 가려냈는가’”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재발 여부, 병기 변화, 유전자 변이, 장기 기능 상태처럼 치료 방침을 좌우하는 변수들은 온라인 정보나 AI만으로는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며 “정보는 온라인에서 얻더라도 최종적인 치료의 답은 의료진과의 직접 소통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박준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대한종양내과학회 이사장)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정확한 암 치료 정보는 더 쉽게 흐려지고, 환자와 보호자는 불확실성 속에서 길을 잃기 쉽다”며 “대한종양내과학회는 이번에 제시한 원칙을 바탕으로 환자를 위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김정아 기자 jungy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