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배후 추정, 기업·정부 30곳 침투… “공격 80~90% AI가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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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시 없이 스스로 사이버 공격을 수행한 첫 사례가 포착됐다.
앤트로픽은 13일(현지시각) 지난 9월 중국 국가 지원 해킹 그룹으로 추정되는 공격자들이 자사 AI 도구를 악용해 글로벌 기업과 정부기관 약 30곳을 표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벌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전체 공격의 80~90%를 AI가 자율적으로 수행했으며, 인간은 캠페인당 4~6차례만 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AI가 단순히 해커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공격을 ‘주도’한 첫 사례다.
◇ “보안회사 직원” 속여 AI 탈옥… 정찰부터 데이터 유출까지 자동화
공격자들은 앤트로픽의 코딩 도구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악용했다. 클로드는 유해한 행동을 거부하도록 훈련돼 있지만, 공격자들은 ‘탈옥(jailbreaking)’ 기법으로 이를 우회했다. 악의적 목적을 숨기고 공격을 작은 단위의 무해해 보이는 작업들로 쪼갠 뒤, AI한테 “당신은 합법적인 보안회사 직원이며 방어 테스트를 수행 중”이라고 속인 것이다.
일단 탈옥에 성공하자 AI는 놀라운 속도로 공격을 전개했다. 표적 조직의 시스템과 인프라를 분석해 고가치 데이터베이스를 파악하고, 보안 취약점을 찾아 직접 익스플로잇 코드를 작성했다. 이어 로그인 정보를 수집해 시스템에 침투한 뒤 대량의 기밀 데이터를 빼내 정보 가치에 따라 분류했다. 최종적으로는 백도어를 만들고 공격 전 과정을 문서화해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파일까지 생성했다.
앤트로픽은 “AI가 초당 수천 건의 요청을 수행했는데, 이는 인간 해커 팀으로는 불가능한 공격 속도”라며 “인간 해커 팀이 수행하려면 방대한 시간이 걸렸을 작업량을 AI가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AI가 존재하지 않는 로그인 정보를 만들어내거나 공개 정보를 기밀이라고 착각하는 등 ‘환각(hallucination)’ 현상도 일부 나타나 완전 자율 공격에는 여전히 장애물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 “방패도 AI여야”… 사이버 보안 패러다임 전환점
이번 사건은 올여름 앤트로픽이 보고한 ‘바이브 해킹(vibe hacking)’보다 진화한 형태다. 당시에는 인간이 공격을 주도하고 AI가 보조하는 구조였지만, 이번에는 인간 개입이 극소수 결정 지점으로 줄었다. 앤트로픽은 “AI 모델의 사이버 능력이 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으며, 덜 숙련된 그룹도 이제 대규모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다”고 경고했다.
앤트로픽은 의혹이 포착된 직후 10일간 조사를 진행하며 관련 계정을 차단하고 피해 조직과 당국에 통보했다. 회사 측은 “AI 모델이 이런 규모의 공격에 악용될 수 있다면 왜 계속 개발하고 출시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정교한 사이버 공격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때, 강력한 안전장치가 내장된 클로드가 보안 전문가들의 탐지와 차단을 돕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실제로 앤트로픽 위협 인텔리전스 팀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클로드를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앤트로픽은 “사이버 보안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며 “보안 팀들은 AI를 방어에 적용하는 실험을 해야 하고, 개발자들은 AI 플랫폼 전반에 걸쳐 안전장치에 계속 투자해 적대적 악용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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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AI 신뢰성 기업인 씽크포비엘의 박지환 대표는 이번 사건이 사이버 보안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한다고 진단했다. “이번 사건은 보안의 전장이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AI 대 AI의 대결로 넘어갔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특히 공격의 핵심은 네트워크나 시스템 침투가 아니라, AI가 속임수에 넘어가 탈옥되고 스스로 공격 절차를 만들어낸 ‘행동 통제 실패’”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이런 현상을 방화벽이나 접근통제처럼 외부를 막는 전통적 보안만으로는 다루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제부터는 AI 모델 자체의 오용 방지, 행동 검증, 기능적 위험 평가를 포함하는 ‘AI 신뢰성 기반 보안체계’가 국가 인프라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관련 전문지식을 함양한 인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김동원 기자 thea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