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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현철 노르마 대표 “한국, 양자컴퓨터 주권 잡아야”

기사입력 2025.11.05 15:44
퍼스트무버와 패스트팔로워 기로에 선 한국
양자컴퓨터 2년 뒤 상용화… ‘소버린 양자’로 기술 선점해야”
노르마, 양자컴퓨터 연결 10개사로 확대… LLM·인프라 개발도
  • 정현철 노르마 대표. /구아현 기자
    ▲ 정현철 노르마 대표. /구아현 기자

    “양자컴퓨터는 국가 안보 자산입니다. 인공지능(AI)처럼 기술 주권을 놓치면 국가 경쟁력이 낮아집니다. 반도체의 넥스트 스텝인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선도하겠습니다.”

    양자컴퓨팅 기업 노르마를 이끌고 있는 정현철 대표의 말이다. 그는 반도체가 가지고 있는 성능과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양자컴퓨터 기술 상용화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7년이면 양자컴퓨터가 본격 상용화되는데 한국은 미국의 양자컴퓨터 운용 허가국 명단에도 없어 핵심 부품을 수입할 때마다 별도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소버린 양자(양자 주권)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와 다른 원리가 작용한다.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값만을 가지는 비트 단위 연산을 수행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양자 중첩’ 원리를 이용해 0과 1을 동시에 적용할 수 있는 큐비트로 작동한다. 각 연산마다 모든 중첩상태가 한꺼번에 계산되기 때문에 획기적으로 연산 회수를 줄여 빠른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에 ‘양자 얽힘’ 원리도 더해진다. 양자 얽힘은 두 개 이상의 큐비트가 서로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도 상태가 긴밀히 연결돼 있는 상태다. 하나의 큐비트 상태 변화가 다른 큐비트의 상태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중첩과 얽힘의 결합이 양자컴퓨터의 폭발적인 병렬 연산 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근 구글은 양자컴퓨터로 슈퍼컴퓨터보다 1만 3000배 빠른 계산에도 성공했다.

    데이터센터 전력 문제가 심각해지는 AI 시대에 양자컴퓨터의 전력 효율성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정 대표는 “같은 연산을 처리하는 데 반도체보다 전력은 수조분의1으로 줄어든다고 예상”며 “AI 학습에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는 반면, 양자컴퓨터는 특정 문제에서 극도로 효율적인 연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반도체보다 성능은 높고 전력은 현저히 적게 들어 반도체 한계를 넘을 기술”이라고 덧붙였다.

  • 노르마는 올해 말까지 연결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6개사에서 10개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노르마
    ▲ 노르마는 올해 말까지 연결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6개사에서 10개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노르마

    ◇ “양자컴퓨터 전문 기업으로”

    노르마는 양자컴퓨터 클라우드 플랫폼 서비스를 시작으로 자체 양자컴퓨터 개발과 양자 전용 대형언어모델(LLM) 구축에 나섰다.

    노르마는 현재 6개사의 양자컴퓨터를 클라우드 환경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산업 현장에서 양자컴퓨팅 활용 경험을 빠르게 확산시키고 있다. 정 대표는 “전 세계에서 실제 양자컴퓨터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는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그리고 노르마 정도뿐”이라며 “제조사 기준으로 따지면 저희가 가장 많은 양자컴퓨터를 연결해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양자컴퓨터는 온프레미스로 자체 구축해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부분 클라우드 기반으로 운영된다. 그는 “양자컴퓨터는 연산 장치만 있기 때문에 클라우드 사용이 필수적”이라며 “국내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과의 연동이 노르마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 정현철 노르마 대표가 양자컴퓨터가 현재 활용되고 있는 산업 분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구아현 기자
    ▲ 정현철 노르마 대표가 양자컴퓨터가 현재 활용되고 있는 산업 분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구아현 기자

    노르마는 올해 말까지 연결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6개사에서 10개사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카카오엔터프라이즈, KT클라우드, 베스핀글로벌 등에 양자 클라우드도 서비스 중이다.

    정 대표는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프리 IPO 단계에서 국내외 기관투자자들과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 상반기 중에 상장 주관사를 확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양자 LLM·인프라 기술 개발

    노르마는 양자 개발자와 연구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양자 LLM을 내년 상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까지 50큐비트급 프로토타입 완성, 2027년 200큐비트 수준의 상용 장비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 대표는 “자체 QPU(Quantum Processing Unit)를 기반으로 냉각 장비, 케이블, 제어 장비를 셋업하고 있다”며 “11월 초부터 12월 초 사이 본격적인 시스템 설치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안 강화를 위한 양자내성암호(PQC, Post-Quantum Cryptography) 기술도 개발 중이다. 그는 “양자컴퓨터는 클라우드에서 직접 연산을 수행하기 때문에 기존보다 보안 위험이 크다”며 “파일럿 시스템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실제 서비스 적용은 연말에서 내년 초 사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경로 최적화에 탁월한 양자컴퓨터

    양자컴퓨터는 신약개발 등 바이오 분야 활용 중심에서 드론·로봇 경로 최적화, 물류·교통 시뮬레이션, 금융 리스크 분석 등 실증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 대표는 “경로 최적화 영역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라며 “로봇 경로, 물류 적재, 에너지 효율 등 복잡한 조합 문제에서 양자컴퓨터가 GPU보다 빠른 해답을 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000큐비트 이상으로 확장되면 GPU 수천 장을 병렬로 연결한 수준의 성능을 단일 장비로 구현할 수 있다”며 “2000큐비트급 유효한 큐비트 확보 시 기존 디지털 머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현재 업계에서는 2027년 전후를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현실적인 시점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양자컴퓨터는 반도체처럼 일정한 성능을 보장하지 않는다. 큐비트 수를 늘리면 병렬 계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지만 ‘양자 오류’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양자컴퓨터 성능을 단순히 큐비트 숫자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비트 수 증가에 따른 오류 문제로 실질적으로 상용화되는 큐비트는 발표 수치보다 훨씬 적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에 일부 큐비트가 오류를 일으키면 전체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안정적으로 활용 가능한 ‘유효 큐비트’는 표면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소버린 양자’ 강화해야”                         

    정 대표는 국내 양자컴퓨팅 산업이 AI 산업 초기와 유사한 ‘추격자’ 위치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AI 산업처럼 뒤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된다”며 “양자 기술은 국가 전략자산으로 안보 자산으로 분류하고 ‘소버린 양자’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미국 정부가 사전 승인한 양자컴퓨터 운용 허가국 명단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그는 “냉각장비·초전도 부품 등 양자컴퓨터 핵심 소재를 수입할 때마다 별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이 같은 구조에서는 기술 상용화 속도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은 양자 기술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기 위해 극도로 보수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며 “한국도 양자 주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AI처럼 주도권을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양자컴퓨터 상장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는 “미국에는 아이온큐(IonQ), 리게티(Rigetti), QCI, 디웨이브(D-Wave) 같은 나스닥 상장기업들이 있고, 비상장 기업 중에도 퀀티늄, 사이퀀텀 등이 대형 투자를 유치하며 급성장하고 있다”며 “엔비디아도 사이퀀텀과 퀀티늄에 직접 투자하면서 GPU–양자 융합 생태계를 구축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국내에서는 아직 양자 관련 상장사나 대규모 투자 사례가 부족하고 정부의 지원도 연구개발(R&D)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이제는 상용화와 산업화 중심의 공격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양자도 반도체처럼 기술주권을 잃으면 산업 경쟁력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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