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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새 두 배로 늘어난 청소년 비만…‘약물’보다 균형 잡힌 치료 전략 필요

기사입력 2025.10.27 16:09
동아시아 비만율 1위·80% 성인 비만으로 이행…전문가 “성장기엔 맞춤형 관리가 핵심”
  • 비만을 질환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확산는 가운데, 특히 청소년 비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비만 치료제가 만 12세 이상 청소년에게도 처방 가능해지면서, 성장기에 맞는 올바른 치료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27일 한국 노보 노디스크제약이 주최한 ‘10년 새 두 배로 증가한 청소년 비만, 올바른 치료 로드맵은?’ 미디어 세션에서는 급증하는 청소년 비만의 현실과 사회적 대응 과제가 논의됐다. 행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약물은 치료의 한 축일 뿐, 성장기 비만의 핵심은 여전히 생활 습관 개선과 맞춤형 관리”라며 균형 잡힌 접근을 강조했다.

  • 이영준 고려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부회장)가 청소년 비만 치료의 방향성과 급여화 필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 이영준 고려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부회장)가 청소년 비만 치료의 방향성과 급여화 필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10년 새 두 배로 늘어난 청소년 비만

    이해상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난 10년간 국내 청소년 비만율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며 구체적 수치를 공개했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 연구에 따르면 한국은 동아시아 4개국(한국·중국·일본·대만) 중 청소년 과체중·비만율 1위를 기록했다. 남학생의 43.0%, 여학생의 24.6%가 과체중 또는 비만에 해당하며, 특히 16~18세 연령층에서 27.8%로 가장 높았다. 14세 이후 여학생에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는 점도 주목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기 비만의 약 80%가 성인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조기 개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당뇨병·고혈압 등 대사질환이 20~30대에 일찍 발병할 수 있다”며 “성장기 비만은 단순한 체형 문제가 아니라 지방간·고혈압·당뇨 등 성인기 만성질환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체중 수치만으로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BMI(체질량지수)가 같더라도 성장 단계마다 근육·지방 비율이 달라, 대사 정보·성장률·심리 상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이해상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청소년 비만 현황과 조기 개입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이해상 아주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청소년 비만 현황과 조기 개입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청소년·부모·의료진 간 ‘인식 격차’ 심각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홍용희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보건위원회 간사)는 “청소년 비만을 일시적 현상이나 개인의 책임으로만 보는 시각이 치료 개입 시기를 놓치게 만든다”며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인식하고 건강한 체중 달성을 치료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10개국 청소년·보호자·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ACTION Teens’ 국제 연구의 한국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의 80%가 자신이 비만임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비율은 70%에 그쳤다. 보호자의 경우 62%만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답해 자녀(70%)보다 오히려 낮았다.

    홍 교수는 “이 같은 인식 수준이 청소년 비만이 적극적 치료로 이어지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 국내 청소년 10명 중 8명은 체중 감량을 ‘개인의 책임’으로 여기며, 이러한 자기책임 인식은 스스로 해결하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전문가 진료나 상담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실제로 체중 감량을 시도한 청소년의 80% 가운데, 보호자가 이를 인지한 경우는 60%, 의료진이 파악한 경우는 35%에 불과했다.

    홍 교수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며 “자신의 탓으로만 여기는 인식이 오히려 치료를 늦추고, 결국 장기적 건강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홍용희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보건위원회 간사)가 청소년·부모·의료진 간 인식 격차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홍용희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보건위원회 간사)가 청소년·부모·의료진 간 인식 격차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약물은 ‘하나의 옵션’… 성장은 유지하고 체중은 조절

    전문가들은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성장과 감량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영준 고려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대한소아내분비학회 부회장)는 “청소년은 성장을 유지하면서 체중을 관리해야 하므로 성인과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 습관 교정이 기본이고, 약물은 성장에 필요한 영양 공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약물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오남용 우려…“전문의 처방 원칙 지켜야”

    최근 청소년에게 비만 치료제 처방이 허가되면서 오남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보윤 의원실이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20~2025.8) 미성년자에게 투여가 금지된 의약품이 12만 9,000건 이상 처방됐다. 수면제, 발기부전 치료제, 항우울제 등 소아 투여 금지 약물도 포함됐으며, 특히 고등학생·여학생 중심으로 프로프라놀롤(인데놀)을 ‘시험 대비약’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영준 교수는 “비만 치료제의 오남용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남용만 강조되면 정작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이 약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이 약은 필요한 환자에게는 의미 있는 치료 수단이지만, 전문의의 판단과 국가의 안전관리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약물 남용 우려가 최근 성인을 중심으로 확산된 식욕억제제 과다 처방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마약류 식욕억제제 처방 건수는 연평균 500만 회를 넘었으며, 전체 환자 수는 매년 100만 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소아비만, 국가가 책임져야

    이영준 교수는 “비만은 질환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지만, 다른 보건 이슈에 밀려 급여화 논의가 늘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며 “특히 청소년 비만 치료만이라도 급여가 적용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비만을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보건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홍용희 교수는 “최근 대선 공약에 포함된 ‘소아비만 국가책임제’처럼, 소아·청소년 비만은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질환”이라며 “가정, 학교, 의료계, 지역사회가 함께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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