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살 빼라’는 말이 치료 막는다”…비만, 인식부터 바꿔야

기사입력 2025.10.24 16:48
비만은 질환인데… 의료 현장에도 남아 있는 편견
김유현 교수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치료는 시작”
  • 청소년 비만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비만율은 2010년 8%대에서 최근 약 15% 수준으로 증가했다. 체중 문제를 넘어 고혈압·당뇨 등 대사질환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늘고 있다.

    김유현 차움건진센터 삼성분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0여 년 전에는 20~30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환자를 보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조기 대사질환이 흔하다”며 “청소년 비만이 성인 질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김유현 차움건진센터 삼성분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비만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 김유현 차움건진센터 삼성분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비만 인식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김정아 기자

    김 교수는 24일 서울 코트야드 메리어트 남대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비만은 질환이지만 여전히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으로 보는 시선이 강하다”며 “이런 편견이 환자를 진료실 밖으로 내몬다”고 지적했다.

    8개월간 35kg 감량의 경험

    김 교수는 자신이 직접 고도비만을 경험한 ‘당사자 전문가’다. 8개월 동안 식단과 운동으로 35kg을 감량했지만, 몇 년이 지나면서 다시 체중이 늘었다.

    그는 “비만은 단순히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생리적·심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성 질환”이라며 “몸은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힘이 강하다. 체중을 줄이면 줄일수록 머릿속은 음식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런 신체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면 환자는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고 했다. “비만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없으면 환자는 ‘내가 의지가 약해서 실패했다’는 생각에 빠진다. 그때 치료의 동력은 완전히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가족의 말, 아이에게 남는 상처

    언어적 상처는 청소년에게 오래 남는다. 김 교수는 가족과 주변의 말이 환자에게 깊은 상처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살 좀 빼라’, ‘정신 차려라’ 같은 말을 쉽게 하지만, 그런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아이들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위축되고 자기혐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비만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면 스트레스가 늘고, 결국 체중 조절은 더 어려워진다. 김 교수는 “비만을 향한 시선이 부정적일수록 환자는 치료 의지를 잃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무조건 달리기를 시키기보다, 잘하는 활동을 찾아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가정이 가장 강력한 치료 환경이 될 수 있다”며 “연구에 따르면 아이만 교육하는 것보다 부모를 교육했을 때 효과가 비슷하거나 더 크다”고 덧붙였다.

  • 김유현 차움건진센터 삼성분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비만은 다그침이 아닌 이해가 필요한 질환”이라며 의료 현장의 인식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김유현 차움건진센터 삼성분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비만은 다그침이 아닌 이해가 필요한 질환”이라며 의료 현장의 인식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의료 현장에 남은 편견

    비만에 대한 편견은 의료 현장에서도 여전하다. 김 교수는 “운동 중 허리를 다쳐 병원에 갔을 때 ‘체중을 줄이세요’라는 말을 먼저 듣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는 그 말을 ‘내가 잘못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진료의 첫 단계에서 체중을 지적하면 환자는 오히려 위축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첫 진료에서 비만 이야기를 바로 꺼내지 않는다. 생활 습관과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먼저 묻고, 신뢰가 쌓인 뒤 체중 이야기를 한다”며 “비만은 다그침이 아닌 이해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점을 의료진부터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의료 체계 안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보건소 비만 관리 프로그램에 참여하려 했는데, 담당자가 ‘비만인은 중간에 포기한다’며 참여를 제한한 사례가 있었다. 이건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라고 말했다.

    예방 중심 정책의 사각지대

    김 교수는 “비만 예방과 비만 관리는 전혀 다른 문제”라며 현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지금의 공공 정책은 예방에만 집중돼 있다. 이미 비만한 사람은 지원받기 어렵고, 제도 안에서도 소외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치료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 건강 악화로 다시 의료비 부담을 안게 된다”며 구조적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최근 비만 치료제가 ‘미용 목적’으로 소비되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비만 치료제는 굶기 위한 약이 아니다. 대사 기능을 조절해 건강 지표를 개선하는 약”이라며 “체중이 많이 줄지 않아도 혈압이나 혈당이 안정되는 사례가 많다. 잘못된 정보가 확산하면 오히려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인식의 전환

    김 교수는 “비만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의 결과”라며 “학교, 가정, 의료기관 모두 인식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질환으로 이해하는 사회가 될 때, 건강한 변화가 시작된다”며 “과거에는 치료법이 없었지만, 이제는 약물과 생활 습관 개선을 병행하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비만을 질환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치료의 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최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