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칼럼] 기후금융의 새로운 지평을 연 CTF 모델

    기사입력 2025.10.21 09:45
    • 사진=왼쪽부터 권기정 NH앱솔루트리턴 파트너스 대표 이종현 CTF 자문역,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부회장
      ▲ 사진=왼쪽부터 권기정 NH앱솔루트리턴 파트너스 대표 이종현 CTF 자문역,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부회장

      수많은 펀드와 투자 모델을 지켜봐왔지만, 기후테크펀드(Climate Technopreneurship Fund, 이하 CTF)만큼 혁신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접근법을 보인 사례는 드물다. NH투자증권의 싱가포르 법인인 NH앱솔루트리턴 파트너스(이하 NH ARP)가 조성하는 2억 달러 규모의 이 펀드는 단순한 자금 규모를 넘어, 기후투자의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할 수 있는 중요한 실험이라고 본다.

      블렌디드 파이낸스의 진화된 모델

      CTF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GCF의 8,375만 달러 우선손실 구조이다. 전통적인 블렌디드 파이낸스가 단순히 공적 자금으로 민간 투자의 리스크를 완화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CTF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스마트 블렌딩'을 구현했다.

      기존 피투자대상이 확정된 프로젝트 펀드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된 공적자금 우선손실충당 구조가 블라인드 펀드에 적용되었다는 점이 독특하다. 기존 GCF 우선손실충당 비중이 20-30%가 평균이라면, CTF는 최대 2배 가까이 증가한 약 42%이다. 기후기술 투자에서의 역사적 손실률과 아시아 신흥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이 수준은 민간 투자자에게 충분한 하방 보호를 제공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구조가 단순한 보조금이 아니라 GCF도 펀드 성과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간의 이해관계를 효과적으로 정렬시켰다.

      멀티전략 접근의 탁월함

      CTF의 또 다른 강점은 멀티전략 투자 모델이다. 대출, 메자닌, 지분투자를 병행하는 이 접근법은 기후기술 기업들의 성장 단계별 자금 조달 수요를 종합적으로 충족한다.

      기존 기후기술 투자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펀딩 갭(Funding Gap)'이었다. 초기 기술 개발 단계에서는 그랜트나 소액 투자가 가능하고, 상업 운영 단계에서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가능했지만, 그 사이의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적절한 자금원을 찾기 어려웠다. CTF의 멀티전략 모델은 이러한 펀딩 갭을 효과적으로 메우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또한 이 멀티 전략은 포트폴리오 전체의 리스크-수익 프로파일 최적화에도 기여한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과 담보 가치를 갖고 있는 최선순위 대출 투자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여 민간 투자자의 자금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전략이다. 이 외, 투자 검토 시 기업 또는 프로젝트의 성장 단계 및 자산 유형 등 주요 조건을 유연하게 고려하여 펀드 요구수익률 달성 확률을 최대한 높인다.

      임팩트 측정의 새로운 표준

      CTF가 설정한 임팩트 목표 - 164만 톤 CO₂ 감축과 231만 명 수혜자 창출 - 을 처음 검토했을 때 상당히 놀랐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목표를 제시한 기후펀드는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목표가 단순한 추정치가 아니라 UNFCCC, CDM, IFC 등 국제 표준 방법론을 엄격하게 적용한 결과라는 점이다. 각 투자처별 예상 임팩트를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산출하고, 이를 독립 검증기관의 감사를 통해 확인하는 체계는 임팩트 투자 분야의 새로운 벤치마크가 될 것이다.

      CTF는 이 체계를 통해 기존 임팩트 측정의 한계를 넘어섰다. 기존에는 통일된 방법론이 없고 기업 특성에 맞는 측정법도 부족해 정밀함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CTF는 국제 표준을 적용하고 임팩트 전문가의 전문성을 반영해 기업별 맞춤형 측정 방식을 마련함으로써 한층 더 정교한 측정을 가능케 했다. 특히 투자 기업이 보유한 기후기술을 고려해 임팩트의 대상·범위·결과를 산출하고, 이를 매년 리포트로 공개해 이해관계자에게 성과의 투명성을 보장한다는 점은 CTF의 뚜렷한 강점이다.

      아시아 시장 전략의 차별성

      수많은 글로벌 펀드가 아시아 시장에서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본 결과, 그 원인은 대부분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적절한 파트너 확보 실패에  있었다. CTF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현지화 전략을 철저히 준비했다. NH그룹의 14개국 37개 거점 네트워크, 글로벌 기업금융(IB) 역량 및 네트워크와 GGGI의 50여개 회원국 채널을 활용한 이중 안전망 구축이 그 핵심이다.

      특히 GGGI와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딜 소싱을 넘어 기술적 타당성 검증, 정책 연계, 사후 관리까지 아우르는 전방위적 협력 체계를 구축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는 많은 글로벌 펀드들이 간과하는 '소프트 인프라'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7대 투자 테마의 전략적 선택

      CTF가 선정한 7대 투자 테마는 단순히 글로벌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아시아 지역의 특수성과 시장 기회 분석에 기반한다.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저장은 당연히 최우선 영역이지만, 농업기술과 수자원 관리를 포함한 결정은 전략적 통찰이었다. 두 분야는 투자자들의 관심에서는 다소 비껴 있었지만, 아시아의 기후변화 적응 측면에서는 핵심 영역이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농업 의존도와 물 부족을 고려하면, 이들 분야에 대한 선제적 투자는 분명한 선발주자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

      폐기물 관리 역시 주목할 분야다.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도시화가 불러온 폐기물 급증은 심각한 사회 문제이자 거대한 비즈니스 기회다. 순환경제 솔루션 투자는 환경 개선과 경제적 수익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윈-윈 모델이다.

      정교한 투자 의사결정

      지금까지 지켜본 기후펀드 중에서도 CTF의 투자의사 결정 프로세스는 가장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다. 특히 GGGI와 NH투자증권을 포함한 파트너사와 외부 전문기관의 검토를 거쳐 투자 대상의 타당성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는 CTF 투자위원회의가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는 탄탄한 의사결정 체계를 보여준다

      경험상 기후기술 투자에서 가장 큰 손실은 기술적 타당성이나 시장성 평가의 오류에서 발생한다. 여러 영역 내 다충적인 경험을 보유한 투자위원의 동의가 있어야만 투자가 실행되는 구조는 이러한 오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이다. 또한 투자 검토안건별로 외부 ESG 전문가와 협력하여 검토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혁신이다. ESG 리스크는 전통적인 재무 분석으로는 포착하기 어렵기에, 이를 별도의 전문가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상당히 진보적인 접근법이다.

      NH ARP의 기존 투자 사례를 보면, NH ARP가 추구하는 투자 철학이 분명히 드러난다. 태양광 및 풍력 중심의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개발·보유·운영을 하는 피투자사 A 가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한국전력으로 일원화 되어 있는 국내 전력공급망 체계와 다르게, 동남아시아 지역 다수 국가는 여러 민간 사업자들이 자체 설비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여 각 전력수요자와의 전력구매계약 체결을 통해 공급한다. 피투자사 A 는 현재까지 누적 1GW 용량의 풍력 및 태양광 발전시설을 상업적으로 운영하며 현재 연간 150만톤의 CO₂감축을 달성하고 동시에 재무적 성장도 빠르게 실현하고 있다.

      한국 금융업계에 던지는 메시지

      CTF의 성공은 한국 금융업계 전체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우선 ESG와 기후투자는 더 이상선택이 아닌 필수 역량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ESG 투자를 핵심 전략으로 삼는 상황에서, 한국 금융기관 역시 이 분야의 전문성을 신속히 축적해야 한다.

      둘째, 아시아 시장은 절호의 기회다. 서구 금융기관보다 아시아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한국 금융기관은 기후기술 투자 붐을 선도할 유리한 위치에 있다. CTF의 성공이 이를 뚜렷이 입증할 것이다.

      셋째는 혁신적 금융 구조 설계 능력의 중요성이다. 단순한 자금 중개를 넘어, 복잡한 이해관계자의 니즈를 조율하며 창의적 금융 솔루션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다.


      권기정 NH앱솔루트리턴 파트너스 대표
      이종현 CTF 자문역,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부회장

      ※ 본 칼럼은 투자 권유가 아닌 일반적 정보 제공을 위한 글입니다. 투자 결과에 대한 책임은 독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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